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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 바울의 무죄성 (행 25: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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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무죄성은 하나님 앞에 무죄하다는 것이 아니라 로마법에 대하여 깨끗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무죄성에 대하여 당시 로마 총독이었던 법관 베스도가 아그립바 왕과의 사석에서 증거한 사실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석에서 베스도가 바울의 무죄성을 증언했습니다.

1. 아그립바 왕과 총독의 대화(13-22절) 아그립바 왕은 야고보를 목베어 죽인 아그립바 1세 (행 12:1-23) 의 아들로 아그립바 2세라고 부릅니다. 아기 예수를 죽이려던 헤롯의 증손이요.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 안디바스의 조카입니다. 아그립바 왕은 유대 인과 로마인과의 조화에 노력하며 황제의 총애를 받은 사람입◎다. 이 헤롯 아그립바 2세는 기원 후 1백년 경 후계자없이 죽어서 헤롯 왕통의 최후 왕이 되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 새 총독 베스도에게 인사하려고 가이사랴에 내려왔을 때 베스도는 바울의 사건 경과를 일러 주었습니다. 로마법이 우수하다는 것을 자랑하고(16절) 전임자 벨릭스가 죄수 한 사람을 감금해 둔 일을 말하면서 (14절) 그 죄수를 인계맡은 자기는 지체하지 않고 재판을 속히 개정하겠다고 자랑하였습니다(17절). 원고들이 바울에 대한 죄목을 늘어 놓았지만 자기가 생각하던 그런 악한 일은 하나도 없고, 그들이 문제 삼는 것은 그들 자신의 종교 문제와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바울이 주장하는 신앙적 논쟁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베스도는 25절 말씀에 “나는 살피건데 죽일 죄를 범한 일을 찾지 못했다”고 바울의 무죄를 증언했습니다. 베스도가 바울을 여러 가지 방면으로 심문해 보았으나 죽일 만한 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원고들의 송장 내용을 검토해 보아도 악행한 사실이 하나도 없고 오직 예수께서 부활하신 일을 바울이 증거한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에 대해 유대인이 고소한 내용은 로마 법에 의하면 결백한 것 뿐이었습니다. 베스도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뇌물도 받고 또한 선임자 벨릭스 총독의 체면을 보아서도 바울을 정죄하고 싶었으나 27절 말씀에 사도 바울은 너무 결백하기 때문에 정죄하지 못하였습니다. 로마 법에 비추어 사도 바울은 결백했습니다. 사실 법은 냉정하며 무자비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차에 걸친 재판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의 무죄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24:22-23에서는 전임 총독 벨릭스가 바울의 무죄를 선언했으며, 18절에 그 후임 베스도가 무죄를 시인했고 그 뿐 아니라 26:32에 아그립바 왕도 바울의 무죄를 인정했습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당당하게 말하기를 “나는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베스도는 예수의 부활의 종교와 유대교가 예수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이 망설이다가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받기를 원하는지 바울에게 물어 보았더니 황제의 판결을 받겠다고 호소하여 가이사에게 보낼 때까지 감금해 두었다고 20-21절에 설명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그립바 왕은 22절에 “나도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아그립바는 조상적부터 예수와 깊은 관계가 있기에 더 흥미를 가진 것입니다. 증조부 헤롯은 아기 예수 때문에 베들레헴 아이들을 학살 하였고 숙부 헤롯 안디바스는 세례 요한을 죽였고 또 예수를 재판했으며 아버지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사도 베드로를 죽인 연례로 예수당에 대해서 대단히 흥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그립 바 왕은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싶다고 하므로 베스도는 “내일 그의 말을 들어보라” 고 대답하였습니 다.

2. 아그립바 왕 앞에 선 바울(23-27절) 아그립바는 당시 수리아 일부를 관할하는 왕이었습니다. 이 아그립바 왕이 다음날 베니게와 함께 위엄있게 차리고 나왔습니다(23절). 천부장과 그도시의 요인들도 동행했습니다. 아버지 아그립바 1세가 가이사랴에서 죽을 때, 신의 소리라고 외칠 만큼 빛난 왕복을 입고 왕좌에 앉아 연설했던 일이 있습니다(행 12:21-22). 그의 아들과 딸이 그때와 같이 위엄있게 많은 귀빈을 거느리고 신문소에 왔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온갖 보석으로 장식한 왕복을 입고 호화찬란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아그립바 왕을 주심으로 단장과 천부장과 고관들이 자리를 정하고 베스도의 정중한 선언으로 공판이 개정되고 바울은 초라한 모습으로 법정에 끌려 왔습니다. 아그립바 왕이 바로 14년 전 사도 야고보를 죽인 아그립바 1세의 아들임을 알았던 바울은 놀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에 놀란 것이 아니라 전도할 기회로 알고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했습니다(26:2). 재판이 개정되자 베스도는 이 사건의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바울을 이 이상 살려두어서는 안된다고 고소하지만 사형을 당할만한 죄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황제께 보내기로 하였으니 상소할 죄목을 발견 못하여 아그립바 왕이 왔음으로 재차 심문하여 상소할 증거자료를 얻으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의 주위에는 고관들이 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 중에 바울은 손에 수갑을 차고 죄수로 나타났으나 그의 말은 청중을 위압하게 피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충분히 그리스도의 사실이나 진리를 진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모든 변명을 듣고 자세히 살펴 본 후 말하기를 26:32에서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고 하며 “이 사람이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않았으면 놓을 수 있을 뻔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가이사에게 호송되었습니다. 그 큰 이유 중 하나는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이 유대인의 암살 음모를 벗어나는 가장 안전한 길이요 둘째는 또한 주님의 지시가 있어 본인이 로마에 가기를 원해서 이 재판은 바울을 로마에 보내기로 결정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사도 바울의 소원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유인으로 로마에 가서 전도하기를 원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죄수의 몸으로라도 로마에 가서 전도하려고 하였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바울의 사명이요 어떤 역경 속에서라도 바울의 전도하려는 의욕은 좌절되지 않았윰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은 무죄하지만 죄인처럼 호송하며 복음을 전파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이니 환란에 참고 소망 중에 즐거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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