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안심하라 (행 27:22)

첨부 1


22절에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이사야는 말하기를 사 48:22에서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느니라”괴 하였습니다. 바울이 난항에서 표류한 것은 마치 온 세상을 휩쓰는 거친 세파와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 사도 바울은 주의 환상과 격려하심으로 그 중에서도 안심했고 그 배에 같이 탄 276명의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 위로의 필요

(1) 예수님 자신이 위로자이십니다. 주님은 능력으로 언제나 남을 도와주셨지. 남을 해롭게 하신 일이 없었습니다. 마 12:20에서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별세 시기가 가까왔을 때 그의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보혜사 성령이라는 말은 위로자 성령이란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위로의 사람이었습니다. 고후 1:3-6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아버지시며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우리가 환란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흑 위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며 우리가 받는 것같은 고난을 너희로 견디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위로의 필요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때로는 낙심하고 넘어지므로 실패하고 맙니다. 위로는 낙심하는 자들을 구출하는 양약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M. Luther)는 종교개혁 당시 때로는 낙심하여 기쁨을 잃었습니다. 하루는 그의 아내 캐더린 본 보라(Katherine Von Bora)가 상복을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루터 (M. Luther)는 “누가 죽었느냐”고 물어 보았윰니다. 부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죽었기에 루터 (Luther)가 낙심합니다.” 그래서 상복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루터는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왜 죽느냐, 하나님은 죽는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얻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입니다. 빌 2:19에서 바울이 맡하기를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램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살전 4:18에서는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환란 중에 있으나 위로는 교회가 힘을 얻는 원천입니다.

2. 참 위로는 어디서 옵니까? 바울은 ‘안심하라’는 말을 22절과 25절에서 두 번이나 하였습니다. 그는 그런 환란 중에서 화신을 가지고 배 가운데 사람들을 위로하였습니다. 그 위로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생사의 틈바구니에서 퍼중을 향하여 하는 말이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었다” 하셨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네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존중히 하며 그 권위를 신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 ’이란 말은 그런 의미를 가집니다. 바울은 하나님 말씀에 의하여 그 뱃사람의 소망을 확실히 내어다 보고 기도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덕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고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3. 바울에게 초자연적으로 안심시키는 힘을 주신 하나님께서 불안에 싸인 이 겨레에게도 이와 같은 능력을 주실 것을 믿고 성서의 몇 곳을 찾아 보겠습니다

(1) 사죄함에 안심하라 하십니다(마 9:1-2). 중풍병으로 고생당한 친구를 리 친구가 매고 갔습니다. 주님께서 저들의 신앙을 보시고 죄 사함을 허락하여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2) 병중에서 “딸아 네 병에서 구원하였다” (마 9:22)고 하셨습니다. 주님 사업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소경을 보게 하며 앉은뱅이를 걷게 하며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머거리가 듣게 되며 여러 병자들을 고치었습니다. 영혼의 구원에는 육신의 병을 고침이 필요합니다. 십이년간이나 혈루병으로 고통받은 여인을 고침에는 당시 유대인의 치료법대로 한다면 이리의 해골, 사슴 뿔, 물소의 머리, 거위의 눈, 개구리의 간장, 독사의 살, 메뚜기와 박쥐를 구워먹어야 만병통치약으로 복용 되었습니다. 그저 이런 약으로 효력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치시며 단지 “구원이 이르렀으니 안심하라”고 하셨습니다.

(3) 풍파 중에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마 14:27). 우리는 항구에 있는 것이 아니요. 대양에 떠 있는 항해자입니다. 그러므로 풍파가 몰아치는 것을 면치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와 함께 하므로 안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 항로에 인내로써 선구를 삼고 희망의 닻을 달고 신앙의 키를 잡고 성서를 해로로 삼고 그리스도를 선장으로 모시고 성령의 기운을 충만하게 할 때 어떠한 풍랑에도 안심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 저 천국까지 무사히 도착합니다.

(4) 환란 중에서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 16:33). 주님이 세상을 이기신 것같이 우리에게도 이길 힘을 주십니다. 롬 8:36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했고, 시 46에서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참으로 노아의 방주, 곧 오늘의 교회가 황막한 바다 가운데서도 용감하게 소망을 가지고 가는 위대한 본보기를 발견하며 이런 모습이 교회의 참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이런 절망 속에서도 그러한 위대한 믿음과 소망을 간직하는 우리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