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축도에 대한 소고

첨부 1


다시 '축복'에 대해 몇 마디 해 보고 싶군요.
잘 알다시피, '축복'이란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내가 누군가를 위해 복을비는' 일이지요. 보기를 들자면, 아브라함이 야곱을 (위해 하나님께) 축복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축복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어떻게 되는 일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보다 더 큰 어떤 존재에게 간청하는 결과가 되는데, 말이 됩니까? 말이 되지 않지요. 그러니 그럴 때에는 이렇게 말을 해야 겠지요. '하나님, 저희에게 복을 주십시오.' 또는 '하나님, 저희를 복 주사...'어떤 분들은, 그냥 '복'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치 미신적인 것처럼 들린다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이거나 아니면, 잘못된 시각이겠지요. 해방 전에 번역된 우리의 한글 성경에는 분명히 '복'과 '축복'이 바르게 구별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방 이후 영어의 영향으로(영어 단어 bless) 우리 기독교 계에서는 '축복'이라는 말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몇 년 전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축도'의 문제가 장로교 계통에서 논란이 된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어떤 목사님들은 이 둘을 분명히 구별하여 쓰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많은 분들이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안 하고 있습니다.
축도의 문제는 이렇습니다. 바울의 서신에 나타나는 그 말씀들이 과연 하나님의 '복 선포권'을 바울이 대신 받아서 행하는 것이냐? 아니면 성도들을 위해 바울이 하나님께 복을 비는(축복하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언어적인 지식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언어학을 전공한 문학박사입니다. 그래서 이 쪽은 조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어의 일방적인 영향으로 서양말의 'volitive'나 'imperative'를 모두 '명령법'이라 번역하고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후자는 '명령법'이라 옮겨도 좋겠으나, 전자는 제대로 하자면, '소망법'(원망법, 희망법)이라 옮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말을 하는 사람'이 '그 월의 주어'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에 쓰는 서법입니다. 그러니 일방적인 명령과는 다른 것입니다. 영어에서는 2인칭 명령법만 나타나고, 1인칭이나 3인칭의 소망법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많은 말들에는 이러한 소망법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명령은 '2인칭'에서나 나타나는 일이지요. '1인칭'이나 '3인칭'에서는 명령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문제가 되는 바울의 말씀도 바로 이러한 소망법인 것입니다. 그 월의 주어는 2인칭이 아니고 3인칭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성령님의 보살핌' 등이 모두 3인칭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일방적인 명령법이 결코 아닙니다. 말하는 자인 바울이 그 월의 주어로 나타나는 그 세 가지가 성도들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축도'라는 말 자체에서도 우리는 이것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축도'의 '도'자는 '기도'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분명 기도라면, 인간이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 축복하는 것이지요. 마치 아브라함이 야곱을 위해 하나님께 축복하듯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어떻게 기도합니까? 사실, 문제는 목사의 '축복권'(?)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목사에게 과연 '축복권'(?)이 있는가? 당연히 있지요. 순수한 의미에서의 '축복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내가 내 아들을 위해 축복할 수 있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친구를 위해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계에서 오해하는 대로의 '축복권'(사실 이것은 축복권이 아니고, '복선포권'입니다.)은 목사에게 있는가? 이것은, 평신도인 제가 뭐라 판단할 수 없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만, 우리 모두가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바에 따르자면,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되시지요. 그러면,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가 축도를 할 때에는 하나님을 대신한다구요. 그렇다면, 축도라는 용어는 틀렸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럴 경우에는 '축도'라 하지 말고, '복선포'라 해야 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예전에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성경을 처음 번역하고, 축도라는 일을 처음 시작하던 때에, 복의 선포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순수한 의미에서 '축도'를 한 것이지요. 그런데, 해방 이후부터인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의 목회자들이 '축도'를 '복선포'로 바꾸어 버린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