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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빚진 자 (롬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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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는 창립 75주년을 맞이하면서 선교사 한 사람을 파송키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선교사 파송에 대해서 퍽 부정적입니다. 그런 분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우리나라도 다 복음화하지 못했는데 한달에 최하 천불 이상의 맡은 비용을 들여가면서 해외 선교를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자기 나라부터 복음화해야지” 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것도 일리는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국내 복음화도 해야 하고 해외 선교사업도 해야 할 것입니다. 백년 전에 우리나라에 미국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때 미국은 독립한지 백년 남짓밖에 안되는 어린 나라였습니다. 그때도 미국 사람들이 모두 예수를 믿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릎 쓰고 이 땅에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 한국교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만일에 그들이 그 당시 미국의 복음화도 시급한데 선교사가 무엇이냐고 했다면 한국에 어떻게 복음이 들어왔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너무 감사합니다. 한국인은 머리가 좋습니다. 재간이 특출한 민족입니다. 무엇보다도 종교성이 강한 민족입니다. 한국인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습니다. 마치 유태인과도 같습니다. 한국인 이십명만 모이는 한국인 교회가 있습니다. 목사가 없으면 평신도들이 모입니다. 한국에서 목사님들이 설교한 것을 녹음해서 카셋트를 가져다가 들으며 예배드립니다. 인류의 오랜 역사 가운데 우리 한국 사람은 특별한 축복을 받은 민족이라고 믿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할 줄 압니다. 토론토에 있는 poop]es Church에서는 한 교회에서 백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복음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의 생애는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바쳐졌습니다. 그는 세상의 부를 구한 것도 아니요 세상의 명예나 권세를 구하고자 로마에 간 것도 아닙니다. 땅 끝까지 구원의 복음생명의 복음 능력의 복음 영원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일생을 부단히 활동하고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복음을 위해 세상에 왔고 복음을 전파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것 같은 심정으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주님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큰 사명들을 받았습니다.

1. 하나님에게 빚진 우리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자연 속에서 살게 하시고 시시때때로 맑은 공기를 호흡하게 하시며 밝은 태양 빛을 받아 살게 하십니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빚진 자인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과오와 우리의 불신앙 불복종에도 불구하시고 심판의 날을 연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빚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는 빚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래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 “대신”이란 말을 여러분은 이해해야합니다. 내가 죽을 죽음을 주님께서 대신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내가 사형장에서 사형을 받아야 할 죄수인데 나 대신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죄인 된 내가 예수의 죽으심으로 즉 그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피 공로에 대하여 빚진 자들입니다.

3. 우리는 각기 자신에 대하여 빚진 자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부족을 느끼며 자신의 향상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을 못다 한 아쉬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가수가 텔레비젼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회자가 그에게 칭찬을 하자, 그는 “아닙니다. 화면을 통해 내가 부른 노래를 듣고 실망했습니다. 이제는 은회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가 가수로써 그와 같은 자기반성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경의를 표했습니다. 자기 일을 살핀다는 것은 자기들의 일들 중에서 참과 거짓을 구별하고 자기반성의 노력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참으로 사랑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참으로 미워할 대상은 오직 나 자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빚진 것을 절감한 사람의 말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배울 때 우리는 빚진 자신을 느끼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나의 두뇌는 아직 30 %밖에 개발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공부하고 또한 일반상식도 항상 공부해야겠습니다. 그렇게 공부하지 못한데 대해서 빚진 자임을 알아야겠습니다.

4. 자신의 일에 대해서 빚진 자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요즘 미국으로 이민가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미국에 가면 무조건 잘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노동법이 있습니다. 하루에 8시간 일하며 5일을 일해야 합니다. 그들은 정말 충실하고도 분주하게 일합니다. 잠시라도 쉬지 않고 일하는데 그 양은 같은 시간에 우리의 일하는 양의 몇 배가 될 듯합니다. 대부분이 가정에서는 부부가 같이 일하고 아이들도 자라서 고등학교에 다닐 정도가 되면 다 나가서 일합니다. 물론 우리의 경우는 취직이 어려워 일할 곳이 없다는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근로정신이 결핍한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인부들이 일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만 일하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일을 열심히 하는데 공적인 일보다 자신의 사욕을 위해 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에 대하여 빚진 자임을 깨닫는 자는 일하면서 배울 것입니다. 그리고 일하는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입니다.

5. 사람에 대해서 사랑의 빚진 자임을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모두 다르게 지었습니다. 그리하여 서로 교류하는 중에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게 만드셨습니다. 옛말에 소부재근, 대부재천(小富在勤, 大富在天)이라 하였습니다. 특별히 잘사는 부자는 하늘이 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 덕분으로 사는 것이지 혼자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을 얻으면 다시 공공복지를 위해 재물을 돌릴 줄 알아야 됩니다. 톨스토이가 한번은 여행을 하다가 어떤 집에 들렸습니다. 그 집의 어린소녀가 톨스토이가 가진 가방을 보고 탐이 나서 어머니에게 저런 가방을 사달라고 졸랐고 어머니는 다음에 사주마라고 달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톨스토이는 지금은 여행 중임으로 줄 수 없고 돌아오는 길에 그 집에 다시 틀려 가방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돌아와서 가방을 그 소녀에게 주려고 했을 때 그 소녀는 벌써 죽어 장례를 지낸 후였습니다. 놀란 톨스토이는 그 가방을 소녀의 무덤에 갖다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연기하지 말라.” 우리들은 이웃 사람에게 사랑의 빚진 자임을 깨닫고 갚도륵 힘써야 합니다. 기독교의 근본 의무는 사랑을 주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갚아야 할 사랑을 사람에게 갚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고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이는 형제도 사랑치 못하면 보이지 않으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1서 4:20). 사랑하라는 것은 사랑할 수도 있고 없고 하는 상대적인 계명이 아니라 크리스찬의 기본적인 의무요, 그리스도외 명령이십니다. 사랑해야만 하는 당위의 과제가 사랑의 빚을 지라고 하신 사도 바울의 본래적인 뜻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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