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환란 중에 즐거워하라 (롬 05:1-5)

첨부 1


저는 때때로 기독교인에게도 환란과 고통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보통으로 신앙인은 환란과 고통은 아무 관계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란은 누구나 예외 없이 다 받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싫어하고 복 받기를 원하는 것이 동서고금 동일한 인간의 상정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지난 후에야 복이 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고진감래라는 말은 만고의 불변입니다. 비바람이 지나면 밝은 햇빛이 나는 벌입니다.

1. 고난은 인내의 복을 가져다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참고 나가면 복을 받게 됩니다. 퇴계 선생의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퇴계 선생의 훌륭한 명성을 듣고 선생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부인은 부엌에서 바가지를 긁고 있었습니다. 방문하였던 손님은 나가서 말하기를 퇴계 선생은 제가하지 못한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퇴계는 말차기를 부인이 안에서 바가지 긁는 소리를 듣거든 남편은 가만히 있는 것이 제가의 법이요 남편이 북소리를 낼 때는 부인이 미소를 띄우는 것이 제가의 법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소크라데스가 하루는 제자들과 담화를 하는데 부인이 야단치며 바가지를 긁었습니다. 그래도 담화만 하니 답답해서 응답 없는 남편 머리에 물 한바가지를 갖다 부었다고 합니다. 그때 소크라테스의 말이 뇌성이 나면 소낙비가 쏟아지는 법이니 내 그럴 줄 알았다며 툭툭 물을 털고 갔다 합니다. 환란은 인내를 낳게 합니다. 흔히 사람을 그릇에다 비합니다. 마음이 큰 사람은 큰 그릇, 마음이 작은 사람은 작은 그릇에 비유합니다. 마음이 큰 사람은 큰일을 해낼 수 있고 마음이 작은 사람은 그릇이 작아서 평범한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사람의 마음 그릇을 측정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인내하는 마음입니다. 선천적으로 인내하는 힘을 가진 자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후천적으로 그릇을 크게 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환란과 절망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크게 하며 인내하는 힘을 길러주는 용광로는 환란과 절망입니다. 그러므로 그릇이 큰 사람은 환란과 절망에 대한 경력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지옥 같은 환란과 절망을 참고 견디고 이기는 힘을 기르는 사람만이 큰 그릇이 되어져서 강력한 인생을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환란 없이 인내의 사람으로 훈련 될 수 없고 인내력이 없는 사람은 큰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몇 십년 전 한 미국인 부부가 인형. 같이 예쁜 세 딸을 데리고 성지 순례를 떠났습니다. 대서양을 건너는 중 불행스럽게도 배가 암초에 부딪혀 파선을 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왔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겨우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세 딸은 모두 물속에 영원히 잠겨 버렸습니다. 슬픔에 잠겨서 간장이 녹아나는 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인이었기에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부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졌습니다. 부모 잃은 고아들을 돌아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두 부부는 상의 끝에 잃어버린 세 딸을 생각해서 부모 잃은 고아들을 자신들이 친자녀들처럼 돌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성지에 가서 아메리칸 캐롤이란 고아원을 설립하여 그 설립자가 된 것입니다. 환란이나 절망을 소화시키는 신앙의 능력이 그들을 위대한 사회사업가로 만든 것입니다역사 속에서 유대인만큼 환란과 절망을 많이 겪어온 민족도 없습니다. 2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나라 없이 방황하며 유락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환란과 절망으로 수모와 고통을 당하면서도 수많은 석학, 박학들을 배출했습니다. 아인슈타인, 케네디, 존슨, 아이젠하워, 키신저, 모두 유태계 미국인입니다. 성서에 나타난 인물들도 환란과 절망의 용광로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을 떠나서 하나님을 믿고 수많은 환란과 절망을 극복하며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도 20년간 고난의 댓가를 치루고 거부가 된 것입니다. 요셉도 30년이란 기간 동안 절망을 주식으로 삼다가 대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도 40년이란 긴 세월 광야의 환란과 절망의 늪에서 헤메다가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루터는 말하기를 환란은 축복을 가져다 줄 지름길이라고 했습니다. 키케로는 환란은 영광과 정비례 한다고 했습니다. 페스타로치는 환란과 눈물이 나를 높은 예지로 이끌었다고 했습니다.

2. 고난은 소망의 복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사랑의 매를 들어 연단시킵니다. 예화,고양이를 몹시 사랑하는 주인이 하루는 자기 무릎 위에 누워 잠자는 고양이에게 가위를 들고 그 아름다운 털을 이리저리 볼모양 없이 베어 버렸습니다. 깜짝 놀라 깬 고양이는 자기의 흉한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 슬피 울며 주인을 원망했습니다. 혀로 털을 핥으면서 너무도 안타까워 주인을 쳐다보며 울었습니다. 다시는 주인에게 가지 않고 방구석에 누워 신음하였습니다. 그 집 굴뚝이 있는 서쪽 구멍에는 날마다 동네 고양이들이 몰려와서 석양 햇빛을 받아가며 놀고 있었습니다. 이 고양이는 그후부터 동무들에게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날이 추워올수록 고양이 수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고양이는 친구들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밥도 먹지 못하고 수심에 몸이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하루 주인은 고양이를 데리고 모물점(毛物店)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널판장 위에 고양이 가죽을 많이 붙여 놓고 있었습니다. 이 고양이는 그것을 보고는 긴장하여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그때 주인은 그 가죽을 하나씩 지적하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검정 가죽은 앞집에 있는 네 동무 바둑이요 이 흰것 가죽은 네 동무 살찐이요 이 누런 가죽은 친구 누렁이가 아니냐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사람들이 예쁜 고양이를 잡아 그 가죽을 벗겨서 판다고 했습니다. 내가 네 털을 깍은 것은 네 털을 보잘 것 없이 보이게 하여 너를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란 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내가 네 털을 벤 것은 너를 결코 미워해서 한 것이 아니란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살리기 위해서 털을 깍은 것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후 고양이는 크게 깨닫고 주인의 사랑에 감격하여 주인을 따랐다 합니다. 우리 인생이 당하는 모든 환란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속뜻을 알면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를 올릴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를 팔아먹은 형들을 원망하지 않고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하셨다”(창 50:20)고 하였습니다. 갈 6:9에 이르기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 피곤하지 아니하면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연단은 소망을 낳습니다. 고난과 환란을 당하는 우리 민족과 교회와고난을 당하는 여러분 앞에 새로운 축복과 소망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