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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의 열매 (고후 0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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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아는 것과 같이 성도들의 신앙도 성도들이 맺는 열매를 보아서 알게 됩니다. 죄인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면 그 심령은 소생하고 그 생활이 경건해지나 그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죄는 점점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은 나단 선지자의 충고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으므로 용서함 받고 유대의 현군이 되었으며, 헤롯은 세례 요한의 충고를 듣지 않고 회개치 않아 악한 임금이 된 것입니다.

1. 회개의 귀중성 사람마다 “내가 잘하였노라”고 말하기는 좋아해도 “나는 잘못하였노라”고 하는 자는 별로 없습니다. 요새는 명예 박사나 명예 학장이 있듯이 명예 회개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불명예를 각오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그것은 가치있는 일이며 과거의 많은 죄악도 도말시키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상 주의 일을 담당했던 자들은 크게 회개하였던 자들입니다. 어거스틴도 뜨거운 회개 운동으로부터 시작했고, 1907년 우리 나라의 대부흥 운동도 길 선주의 회개로부터 시작하여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

2. 회개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1) 회개하면 사죄를 받아 구원에 이르고(행 2:36)

(2) 회개하면 성령을 받으니 구원에 이릅니다(행 2:36).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는 회개한 그 즉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얼마든지 구원하여 주십니다. 탕자 비유를 보면 탕자가 돌아올 때 그의 아버지가 멀리서 보고 마중 나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본래부터 범죄한 일이 없는 의인을 구원한다면 감사하는 일이 없을 것이나 죄인을 회개시켜 구원을 베풀면 감사가 있게 됩니다. 복음은 이렇게 오묘한 것입니다. 딤전 1:15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3. 회개하는 자는 신중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귀한 회개를 등한히 여길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최대의 성의를 다하여 회개를 하여야만 됩니다. 회개를 무성의하게 취급하는 것은 회개의 중대성을 모르는 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성경에서는 회개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회개를 아주 쉽게 말씀하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인들이 회개할 때에 자신들의 어떠한 공로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물로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받게 할 공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자는 자기의 힘으로 구원을 이룩하려는 무용한 수고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다만 죄악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며, 바울이 고후 7:11에서 말한 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회개를 얻기 위한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회개를 통해 구원받은 자의 생활 속에 자연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1) 간절한 마음 간절이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감화를 받아 죄를 깨닫고 그 죄를 제거하려고 급속히 활동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죄인들은 죄를 깨달으면 시일을 보낼 것 없이 급속히 180도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품에 안기운 것은 그가 자기의 죄를 깨닫고 곧 일어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유대 경전에는「아직 젊고 힘이 있을 때에 죄를 회개하는 사람은 복되니라. 빛이 아직 사라지기 전에 기름을 부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생각날 때 지체하지 말고 간절한 마음으로 회개하여 새로운 인격을 이룩해야 합니다.

(2) 변명함 변명은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자기의 부족을 빠짐없이 하나님께 낱낱이 고백하여 용서를 얻고자 함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숨길 것이 없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행한 것을 그대로 직고해야 할 것입니다. 세리가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기도를 하자 예수님은 그 사람을 가리켜서 의롭다 하시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을 때와 같이 기쁘고 즐거운 때는 다시 없습니다.

(3) 분하게 함 자기의 범죄한 것을 분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기의 죄를 미워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라의 김 유신 장군은 어머니의 간곡한 권면을 듣고 회개한 후 다시는 기생 천관의 집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에 어느 날, 김 유신은 훈련을 받고 피곤하여 말을 탄 채 졸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말이 그전에 가던 습관으로 기생집에 이르른 것을 알자 김 유신 장군은 너무 분해서 자기가 사랑하는 말의 목을 베어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과오가 없어야 하겠지만은 만일 범죄한 바가 있으면 이것을 분하게 여겨 곧 회개하여야 합니다. 죄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만일 손과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온 몸이 성하여 지옥에 들어가는 것 보다 나으니라” 하였습니다.

(4) 두렵게 함 자기가 지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곳에서 부자(父子)가 남의 과수원으로 능금을 도적질하러 갔습니다. 아버지가 아들더러 하는 말이 나는 능금나무에 올라가서 능금을 딸 터이니 너는 이곳에서 망을 보다가 사람이 오면 “아함” 하고 기침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가 손을 들어 능금을 따려고 하면 “아함” 하고 기침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잠시 멈추었다 다시 능금을 따려 하면 “아함” 하고 기침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상해서 아들에게 “사람이 오는가?”물은즉 “아니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십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진실로 사람은 하나님을 이렇게 두려워해야 합니다.

(5) 사모함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시인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6) 영 접 롬 12:11에 보면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것도 열심히 하고, 봉사하는 것도 열심히 하고, 일하는 것도 열심히 해야 할 것입니다. (7) 벌하게 함 교회는 죄인을 징계해야 합니다. 이것은 죄인이 미워서가 아니라 교회를 좀 더 거룩케 하고 신성케 하자는 것입니다. 죄를 용납하면 개인의 심령은 죽고, 단체는 무력해지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은 점령했으나 아간의 범죄함으로 하나님은 아이성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패하게 한 것입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깨닫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죄를 벌하여 개인의 심령을 소생케 하고 교회를 신성케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선벌악하시니 우리는 의롭고 선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깨끗해야 할 것이요 교회는 거룩해야 할 것입니다. 진실로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권면을 듣고 회개하여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회개의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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