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 (고후 11:1-2)

첨부 1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이요 교회는 그의 신부인 것을 성경(요 3:29, 계 19:7, 엡 5:27-32)은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란 보이는 성전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곧 성도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와처럼 간교한 뱀에게 미혹을 받아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부패할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을 정결한 처녀의 몸으로 그리스도께 드리고자 중매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신부된 위치에서 정결한 처녀 같은 몸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신랑되신 주님은 음녀같은 부정한 교치를 원하지 않고 정결한 처녀 같은 교회를 기뻐하십니다.

1. 진실한 신앙으로 진실은 신앙의 생명입니다. 성도가 진실하면 신앙은 살고 진실치 못하면 신앙은 생명을 잃게 될 뿐더러 주님께 버림을 받게 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 형제의 제사드림에 어찌하여 가인의 제사는 열납치 않고 아벨의 제사는 제물과 함께 열납하셨습니까? 아벨의 제물은 신앙 중심이요, 가인은 불신앙으로 진실치 못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범죄는 하나님 앞에 신실치 못함에 기인된 것으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신실하여져 죄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진실치 못하여 거짓이 많으니 거짓 경찰관, 거짓 군인, 거짓 정치가, 거짓 교사가 있더니 교계에서도 거짓 목사, 거짓 장로, 거짓 전도사들이 있어서 교회의 신성을 유린하고 복음의 진리를 그르치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자로 가장하고,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나팔을 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들은 여기에 속지 말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여 진실하시기 바랍니다. 진실한 신앙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진실한 신앙만이 구원이요, 생명입니다. 예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진실한 믿음뿐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진실한 믿음의 소유자가 적을 것을 탄식하여「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신 것입니다.

2. 깨끗한 사랑으로 부부는 피차에 사랑을 요구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사랑을 요구하고,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부부는 피차에 사랑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는 사랑이 참된 사랑이요 즐거운 것입니다. 우리의 신랑 예수는 우리에게 사랑을 주었습니다. 당신의 점도 없고, 흠도 없고, 티도 없는 보혈을 흘리시어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선행적 사랑이요, 무조건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에게 빚진 자입니다. 우리는 이 빚을 갚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깨끗한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깨끗한 사랑이란 신랑되신 주님만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부정한 간부가 아닌 남편만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나 우리는 돈보다 주님을 사랑하며,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나 우리는 주님을 더 사랑하며, 사람들은 쾌락을 사랑하나 우리는 주님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남편만을 사랑하는 것 이상 더 귀한 선물은 없습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으면 남편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한 여인이 두 남편을 섬기면 이것은 깨끗치 못한 사랑으로 남편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흠도 없고 티도 없는 깨끗한 사랑으로 주님만을 위해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을 독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영원히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3. 영원한 소망으로 하나님의 열심으로 우리를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사도 바울은 교회를 향하여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하였습니다. 그런즉 성도들은 그리스도만을 영원히 바랄 것이요 세상 허영에 소망을 빼앗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소망은 재림의 주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의 환경에서 우리의 소망을 빼앗고자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하기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 하였습니다. 옛날 신라에 설이라는 미녀가 있었습니다. 때마침 전쟁이 일어나 설의 아버지가 징용으로 징집을 받았습니다. 설의 아버지는 집을 떠나려 하니 도저히 발길이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데 그 동리에 사는 가실이라는 청년이 찾아와서 설의 아버지 대신으로 출전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설의 아버지는 너무 감사하여 자기 딸을 주기로 하고 가실과 설을 약혼시켰고, 그 후에 가실은 전쟁터에 대신 가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틀러 어언간 3년이란 기한이 찼으나 가실은 돌아오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기 딸을 다른 곳으로 출가시키고자 하나 딸은 끝까지 거절하였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강제로 딸을 다른 곳으로 출가시키고자 하나 또 끝까지 거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강제로 딸을 다른 남자와 약혼을 시켰고 결혼식 일자까지 정했습니다. 딸은 할 수 없이 결혼식 바로 전날에 가실이가 준 말을 타고 가출하여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때마침 앞으로부터 한 청년이 오는 것을 자세히 보니 낭군 가실이었습니다. 어찌 기뼜든지 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반가이 맞아 가실이와 결혼식을 거행했고, 그 일생을 행복하게 살았다 합니다. 이같이 우리도 어떤 핍박과 환란과 시험이 있다 하더라도 소망의 변절이 없이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만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 신랑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나타나실 때에 우리는 그로 말미암아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