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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자의 3 대덕 (살전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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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의 역사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면 한시도 살 수 없는 사회입니다. 이용원에서 이용사를 믿지 못한다면 어찌 시퍼런 면도날로 수염을 밀어달라고 내 목을 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식당을 믿지 못하면 어찌 식사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서로 믿지 못한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부부가 의심하면 그 가정은 잘 될 수 없고, 사회의 성원들이 의심하면 그 민족은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서로 믿은 후에 협동과 단결이 있고 협동이 있은 후에야 사업이 진행하는 것 이어늘 오늘의 우리나라는 백성이 정부를 못 믿고, 정부가 백성을 못 믿으며 사람끼리도 서로 못 믿는 백성들이 된 것 같아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더욱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앙하지 아니하고서야 거룩한 일을 어찌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 사람이 사람을 믿는 힘도 크다 할진대 사람으로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세계 만국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앙하면 어찌 능치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신앙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행함이 있어야만 합니다. 행함이 없는 것은 신앙이 없는 표시입니다. 이발 업자를 믿지 못하고서는 면도라는 행위를 못할 것이요 부부가 서로 의심하면 가정에는 파괴의 행위가 나타날 것입니다. 국민이 서로 신용하지 못하면 국가와 사회가 망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요, 사람이 하나님을 신앙하지 못하여서는 영혼이 황폐한 모양으로 나타날 것 입니 다. 사람에게 믿음처럼 귀하고 더 위대한 것이 없나니 믿고 행하는 것은 신자의 첫째 덕이라 하겠습니다.

2. 사랑의 수고현대인에게는 사랑에 대한 개념이 근본적으로 그릇되이 인식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사랑을 마치 하나의 '즐거움이요, 취미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초대하여 잘 먹고 지내는 것이 사랑인줄 알고 걸인에게 몇 푼 던져주는 것이 사랑인줄 알며 가난한 자, 소외당하는 자들과 악수 몇 번 하는 것이 인류애인줄 아는 현대인의 사회관은 너무나 천박한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바로 수고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안락만이 아니며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수고가 없는 사랑은 무실한 꿈이요, 관념적 유회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함에는 그 수고가 실로 막대한 것입니다. 이것이기독교의 사랑입니다. 사실 참다운 사랑은 그 정도가 크면 클수록 더욱더 많은 수고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진정 사랑하였기에 십자가라는 엄청난 수고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각각 얼마만한 사랑을 행하려 합니까? 그만한 수고를 담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자기만 먹고 자기만이 살면 그만 이라는 이기주의적인 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만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남을 위하여 수고할줄 모르는 백성은 망할 백성이요, 자기만 잘 믿으면 그만 이라는 자기중심의 신앙도 넘어질 것입니다. 신앙은 서로 붙들고 돕는 중에서 향상되는 것입니다. 교인은 목사를 위하여 목사는 교인을 위하여 서로 수고하여야 할 것입니다. 신앙이 큰 자는 신앙이 어린 자를 위하여, 강건한 자는 병약한 자를 위하여 수고하여야 할 것이며 일치 협력하여 주를 위하고 교회를 위하여 다함께 수고를 담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름답고 위대한 사랑의 수고는 이 신자의 덕 중에 둘째요, 가장 큰 것입니다.

3. 소망의 인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라 한 것은 첫째는 예수재림하시기를 소망하는 것이요, 둘째는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서 예수를 모시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와 그 천국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망에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농부에게는 추수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일년이라는 기간의 인내가 필요하고 과수원 업자에게는 과실을 얻을 소망이 있기 때문에 십년의 인내가 필요한 것이고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학업 대성의 소망이 있나니 평생의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경제가에게는 사업 성공의 소망이 있기에 전심전력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소망이 크면 클수록 인내도 크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천국을 믿으려는 신자의 소망이야말로 최대의 소망이므로 또한 최대의 인내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 모계 혈통 계승자인 콜롬부스가 1492년 미국 대륙을 찾아내어 대 발견을 이룩해 놓았습니다. 콜롬부스는 일찍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신하고 대서양을 건너가면 인도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태리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때 서반아 여왕 이사벨리가 어느 목사의 소개로 콜롬부스와 대변했고 여왕은 영토를 확장하고픈 욕심에 그에게 자금을 대어주며 이 모험을 감행하게 하였습니다. 콜롬부스는 확신을 가지고 떠났으나 하루, 일주일, 십일, 한달이 지나도 청파만경 파도만 높아지니 선부들은 콜롬부스를 청파에 던지고 귀향하기를 도모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콜롬부스는 저들을 달래고 계속 전진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신대륙을 발견케 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일개 대륙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요, 천하를 도모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영원무궁한 하늘나라를 믿으려 하니 소망도 지대하려니와 고난도 많을 것이요. 따라서 인내도 커야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도 참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면서 천국을 얻으려는 우리도 십자가의 수고를 인내하여야 할 것입니다. 고전 13장 13절 말씀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 세 가지를 말하였으니, 이 세 가지는 우리 기독교의 3대 강령이라고 할 만합니다. 성경 66권 어느 곳이든지 이 믿음, 소망, 사랑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특히 데살로니가 교회에 살전 1:4에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교훈도 되고 기도의 제목도 되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에 따르는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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