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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 0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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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4절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신 말씀은 간단하면서도 매우 깊은 의미를 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한다는 말씀은 문자 그대로 배움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때는 참으라, 혹은 기다리라 하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담긴 뜻을 찾아 은혜 안에 거해야 하겠습니다.

1. 배우라 말씀 그대로 그리스도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에는 매우 다양한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겸손과 사랑의 정신을 배우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지기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멍에는 쉬게 하고 화평을 줍니다. 온유와 겸손을 배우게 하십니다. 겸손은 인간의 인격에 있어서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은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 갑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가짐에 있어서 겸손하였으며,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사랑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변함없는 정신이며,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태도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때도 먼저 기도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다. 기도를 앞세우지 않으면 실수가 많습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인간들은 행동을 한 다음에 일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생각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십자가의 승리가 바로 좋은 예입니다. 이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이미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또 우리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순수하게 신앙을 지켜온 선배들에게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들의 신앙을 지켰으며, 아울러 전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순교를 통하여 오늘날 이 땅에 수백만의 성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대 교회의 문제는 물질이나 사랑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많은 교인들과 물질이 있어 외형적으로 풍부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있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겸손이 부족합니다. 주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이 부족합니다. 사랑이 식어 있습니다. 우리는 초대 교회의 적극적인 사랑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교회들은 소극적으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고, 또 자기를 사랑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을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를 버리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배움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을 가진 인생들은 누구나 다 배워야 합니다. 배우는 것도 옳게 배워야 하며, 그 위에다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배워야 할까요?

(1) 환경 교육 한국인은 한국적인 것을, 미국인은 미국적일 것을.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프리카적인 것을 배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 민족 나름대로의 전통 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고, 횡적으로 시대적 산물인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최선의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의 환경 속에서 올바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며, 그 속에서 믿음으로 극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신앙 교육 배우는 인생은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전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경험을 통하여 지식이 되고, 믿음을 성숙하기 위한 배움을 통하여 믿음이 전달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교인이 그의 교회 목사가 하는 설교를 믿지 못한다면 그에게는 아무런 배움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학생의 경우에 있어서도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을 믿을 수 없다면 그는 아무런 지식도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나 선생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하고 그의 설교나 강의를 믿게 된다면 그의 신앙은 더욱 성숙 하게 되고, 지식도 강건하여질 것입니다. 이처럼 배움이라는 것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 믿음이 없다면 배우는 생활은 목표가 없는 배와 같고 풍랑이 부는 대로 떠다닐 것이며, 이 사회는 무질서와 부조리로 만연될 것입니다.

(3) 성경 교육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에 더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성경을 배우는 사람은 오늘날 세상에 대하여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배움과 믿음이 깊어질수록 성경에 증언 한 사람들과 같은 신앙고백을 하게 되며, 진리를 외치게 될 것입니다 . 성경 외에 어떠한 인간의 권위도 이것을 대신할 수는 어떤 교리적 권위도 성경의 권위와 능력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확신하라 종교적 사상에 대하여 인간이 지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믿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박약한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성격의 문제를 굳이 적은 지식으로 해부하고 해결해 보고자 한다면 많은 문제점과 회의를 일으킬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확신입니다. 확신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보람과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성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울러 다른 사람들의 삶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그들의 인격을 존중해 줍니다. 옛날에 시인은 노래하길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나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하였습니다. 정치인은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정치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농부는 농사에 대한 지식과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교육가는 교육하는 일 에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무엇을 하든지 사람에게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세익스피어가 하루는 어느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 광경을 밖에서 보고 있던 청소부가 비를 들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것을 본 세익스피어가 그 청소부에게 가서 "당신은 왜 그렇게 한숨을 짓습니까? "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청소부는 "나도 남자인데 선생은 그렇게 대접을 받고 나는 비를 들고 마당만 쓸고 밥 먹는 신세이기에 가련해서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에 세익스피어는 "한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대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계의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하는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대가 이 책임을 감당하지 못 한다면 하나님이 지으신 이 지구 한 모퉁이가 더러워질 것이요"라고 위로를 하였답니다. 그렇습니다.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확신을 가진 사람은 기쁨으로 해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억지로 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3. 증거하라 고려 말기의 정몽주 선생이 현실과 타협하여 바른 것을 지키지 않았다면 선죽교에서 죽음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잠시 동안의 생명 연장을 위해 거짓을 말하지 않고 자신이 확신하고 있던 바를 담대하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는 죽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이름과 업적은 살아서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져 오고 있을 뿐더러 계속 전해질 것입니다. 이처럼 확신에 찬 사람들은 자신의 믿는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확신을 가지고 증거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와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우리를 사랑으로 지켜 주시며, 장차 재림의 주로 이 땅에 오셔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 해야 합니다. 이러한 증거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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