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축복받는 비결 (히 06:13-18)

첨부 1


16절에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제 나름대로의 꿈과 이상이 있지마는 욕망의 궁극적 목표는 축복에 대한 열망으로 촛점이 모아집니다. 복 있는 생애, 복 받는 삶을 거부 할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으며 오히려 축복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에든지 불사하는 맹렬함을 본능적으로 지닌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한 인간의 가치와 승패를 가늠할 때 그가 누리고 있는 축복의 양상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면 축복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축복, 완전한 축복은 물질과 정신과 영적인 축복이 다함께 충족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의 배후에는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는 비결이 있습니다. 상 받은 자는 남다른 그 무엇을 뛰어 넘고 극복하고 감수하는 비법이 있었기 때문에 상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도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시하시고 요구하시는 원칙과 비결을 준행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은 첫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고자 하심이요. 둘째, 복음 증거의 목적이요. 셋째, 축복 주시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믿지 않는 자 앞에서, 자녀들 앞에서 성도의 귀함을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축복을 받는 세 가지의 원칙

(1) 하나님에 대한 순종입니다. 신 28:26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성서를 통해 32,500가지의 축복을 약속했습니다만 아무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이라는 조건을 내세워 순종하는 자에게만 허락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단지 책으로 인쇄된 역사적 사건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생명력으로 발휘되는 믿음의 문, 순종의 문으로 여겨 믿고 순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2)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엡 6:2-3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첫 번째 계명은 부모 공경입니다. 부모님의 고통은 내 고통이요, 부모님의 기쁨은 내 기쁨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부모에게 불효한다면 곧 내 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그들의 눈에서 눈물나게 하는 것은 곧 내 눈의 눈물을 뽑아내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내 자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첫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그리하면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고 장수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교역자를 선대해야 합니다. 히 13:17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교역자는 일생동안 교인들의 영혼의 문제, 가정의 문제, 자손의 문제, 성공의 문제를 놓고 눈물어린 간구를 그치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짊어진 사소한 짐, 사소한 고통까지 마치 자신이 회계할 자인 것 같이 여겨 경성하는 것이 교역자의 심정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교인들을 향한 교역자의 헌신을 즐거움으로 하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교역자에게 근심 위에 근심을 주고 상처를 주고 짐을 가중시킨다면 성도의 특권으로써 하나님께 받아야 할 하등의 상급도 유익도 없는 것입니다. 렘애 4:16에 “여호와께서 노하여 흩으시고 다시 권고치 아니 하시리니 저희가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 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은 오늘날 목사인데 목사를 높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노하시사 우리의 생의 모든 문제를 흩어 버리시고 다시 권고치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생활과 영혼의 문제를 위하여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처럼 그 짐을 다 짊어지고 나아가는 교역자를 최선을 다해서 받들고 동역하는 마음이 있어야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상 받으려는 자가 상 주시는 자의 뜻에 부합되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교역자를 선대하는 것은 축복을 받는 원칙인 것입니다.

2. 선진들의 축복받는 비결

(1) 아브라함이 축복받은 비결. 1) 물질에 대해서 청렴결백했습니다. 창 14:21-23에 “소돔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전쟁포로로 붙잡혀 간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아브람이 자기 종을 400여명 거느리고 나가 싸워 승전하여 그 포로들과 빼앗긴 재물을 다 찾아오자 소돔성과 그 왕이 기뻐하여 획득한 재물을 다 아브람에게 주려하자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물질을 받기를 거절한 내용입니다. 소돔왕 때문에 거부가 되었다는 말을 듣기를 원치 않았던 것은 인간의 어느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치부하고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로만 축복을 받고자 하는 신실한 믿음 때문인 것입니다. 창 14:20에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고 했습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요 주님을 상징합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브람이 축복을 받은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2) 사람에게 너그러웠습니다. 창 13:8-9에 “우리는 한 골육이나 너나 나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 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말했습니다. 형제간에, 친척 간에, 대인관계에서 서로 화목하기 위해 너그럽게 양보할줄 아는 아브라함과 같은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양보하는 마음에 하나님을 부끄러움 없이 만날 수 있고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가) 떠나라-거룩한 땅으로 향함. 창 12:1에 고향 친척 본토를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에 가라 하실 때 순종하고 떠났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을 믿고 떠났습니다. (나) 내어 쫓으라-거룩한 가정을 이룸. 창 21:10에 “하갈 여종과 그 아들을 내 쫓으라 종의 아들은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정의 거룩함을 유지하라는 이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다) 드리라. 창 22:2에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에 대한 아브라함의 사랑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아들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정을 포기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최대의 믿음을 실천했습니다. 일생을 통해 ‘예’만 있었던 용감한 순종은 마침내 하늘의 축복, 땅의 축복, 영혼의 축복, 육신의 축복, 현재와 미래의 축복, 자손만대의 축복을 송두리째 받은 축복의 조상으로 되었던 것입니다.

(2) 이삭이 받은 축복 1) 축복받은 아버지와 동행하였습니다. 2) 부친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였습니다. 창 22:6에 “아브라함이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돌행하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죽음의 길이었으나 하나님의 계획으로 보면 생명의 길, 축복의 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릴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 희생의 제단, 순종의 제단은 이삭의 생명은 물론 아브라함 그 자신의 생명까지도 불살라지는 제단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의 생명을 포기함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제단 쌓던 이삭은 비로소 자신이 번제임을 알았습니다. 늙고 힘없는 아버지를 물리치고 그 자리를 뜰 수 있었으나 이삭은 아버지의 명령이요 하나님의 명령인줄 알고 순종했습니다. 어린양처럼 순순히 붙잡혀 결박당하여 번제물로 제단 위에 놓여졌습니다. 아브라함 믿음도 장하였으나 오직 사랑과 축복 속에서 자란 어린 이삭의 순종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삭은 아브라함 못지않게 축복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크고 어려운 시험들을 우리들에게 명령하실 때 그 배후에 예비해 놓으신 크신 축복을 바라보고 어찌하든지 순종하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기쁨으로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3) 야곱이 축복받은 비결 1) 장자의 명분을 존중히 여겼습니다. 창 25:33에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자기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았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솔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경솔히 여긴 장자권을 야곱은 귀중히 여긴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장자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의 이름을 나의 생활 속에 직접적으로 주입시킬 때 모든 것의 축복을 상속하게 됩니다. 2) 별미를 드리는 것입니다. 창세기 27장에 야곱이 별미를 드리다가 온갖 축복을 다 받는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별미는 늘 먹는 음식이 아닙니다.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의미로 맛있고 값있게 만드는 음식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별미를 원하십니다. 별미에는 영혼의 별미, 육신의 별미, 물질의 별미가 있습니다. 영혼의 별미는 원수의 사랑, 눈물어린 간구, 말씀의 순종, 기쁨의 찬송 등을 말합니다. 육신의 별미는 주님의 성업을 위해 내 육신을 헌신하는 산제사를 드리는 생활입니다. 물질의 별미는 인색함 없이 드리는 감사의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실 때는 축복을 주시려고 택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교역자를 선대하므로 많은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생애를 통한 축복의 비결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재현되어 각각 각자가 크신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