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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죄의 은총 (히 09: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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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하나님께서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가운데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혼돈에서 질서를 주셨고 공허에는 내용 곧 충실을, 흑암에는 광명을 주어서 창조하셨습니다. 혼돈, 공허, 흑암이 마귀의 것이라면 질서와 내용과 광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공허한 동산에 충실한 내용을 갖추시고 광명을 비취어 모든 동산을 질서 있게 하셨습니다. 동산 가운데는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만들려고 그 주위에는 생명과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질서를 법으로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마귀의 궤계를 받아 이 법을 어김으로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롬 5:12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라는 말씀처럼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던 것입니다. 즉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같이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고 사망이 들어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 때문이었습니다. 시민은 시민으로서 지킬 법을 지키고, 교인은 교회의 법을 지키고, 자연계는 자연법에 순응하고, 천체는 자연법칙에 의해서 운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는 인간이 지켜야 할 마땅한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이 법칙을 어기면 인간에게는 탈이 생깁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고 사망이 들어오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롬 3:10에 “이 땅에는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아담의 후손은 다 죄인입니다. 롬 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선언되어 있습니다. 죄의 값은 고통과 공존하였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는 범죄 후에 숨었습니다. 그리고 하와에게는 해산의 고통을 주셨고 땅은 저주를 받았으며 아담은 이마에서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하늘 끝까지 날개를 펴고 도망가 숨을 찌라도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쫓긴 아담과 하와는 절망적이었으며 앞이 캄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이 상황을 롬 6:23에는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고, 겔 18:20에는 “죄진 영혼은 죽으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죄진 인간을 그대로 두시지 않으시고 공의대로 심판하십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도 이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무화과나무로 수치를 가려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도 인간의 수치를 가리려고 이런 방법으로 나무 옷을 지어 입으려 노력합니다. 과거 천주교에서는 성지를 순례하며 돈을 뿌렸습니다. 그래야 죄가 없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심지어 면죄부를 사면 죽은 부모의 죄까지도 용서함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돈이 연보궤에 떨어지는 순간 죽은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간다고 하면서 죄에 대한 용서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만 성서는 사죄 받는 길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인간이 때때로 무화과 나뭇잎을 입고 도덕과 윤리에 대치하기도 하지만 햇볕이 비추이면 다 말라 버려서 수치가 들어 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서 무화과 나뭇잎을 벗기고 양의 가죽 옷을 해 입혔습니다(창 3:21). 이렇게 짐승의 피를 흘리고 그 짐승의 가죽을 입혀서 인간의 수치를 가리워 준 것같이 기독교의 놀라운 속죄의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심과 그를 믿음으로 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이 은총은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신 사건입니다. 즉 하나님이 먼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게 하셔서 우리 죄를 담당케 하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용서함을 받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미 이러한 선행적 은총을 받은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엡 1:7에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밝히고 있고, 또 히 9:22에서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 옛 제사법에 의하면 우리가 죄 속함을 받는 길은 짐승의 피 흘림을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레 17:11에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한 사실은 바로 이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약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모든 죄인이 속죄함을 받을 때 양, 소, 비둘기 등을 잡아서 피를 흘리게 하는 일을 대제사장들이 담당했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위하여 흠과 티가 없이 단번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 피는 두 번 세 번 흘릴 필요도 없는 일회적인 피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과거의 모든 제사법이 완성되었고 이 십자가를 통한 인류의 구속함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적인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히 9:26에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려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단번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모든 제사를 완성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양이나 소, 비둘기의 피 흘리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죄 사함을 얻고 우리의 예배가 응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사 53:5-6에서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서사시적인 표현을 감격스럽게 했던 것입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독생자를 죽여서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셨겠습니까?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십자가는 공의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공의의 교회가 되어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분명히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힘입어 우리가 구원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행적인 은총이요, 무조건적인 사랑인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나를 사랑하시는 표시로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사죄의 객관적인 은총이라면 곧 회개하고 믿는 것은 사죄의 주관적인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혀 피 흘려 죽어주셨건만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면 사죄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죄를 어떻게 회개할 것입니까? 첫째, 지적인 요소로써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가 병든 것을 깨닫지 못하면 병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누구나 자 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정적인 요소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18장의 주님의 비유에 바리새인과 세리의 대조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 의를 나타내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듣지 아니했습니다. 반대로 세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죄를 통회 자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롭다하여 그 세리의 기도를 열납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의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원리는 죄인의 원리입니다. 죄 없는 사람은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죄 없는 사람은 사실 교회에 나올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 때에 부끄러워하고 슬퍼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부흥사는 죄지은 것이 뭐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영웅이나 되는 것처럼 뻔뻔스럽게 자랑합니다. 죄는 부끄러운 것이요 슬픈 것입니다. 죄짓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째, 의지적인 요소입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내가 죄를 토설치 아니하였을 때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고 했고, 또한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라고 자신을 고백했습니다. 자기 의지를 다해 그는 자신의 죄를 고백한 것입니다. 사 55:7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와 정과 의를 갖고 하나님께 회개할 때 이렇게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성도여러분! 회개한다는 말은 방향 전환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아직도 석연치 않은 죄가 있습니까? 오래 지체하지 마십시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서 회개하고 완전히 방향 전환을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으므로 안위와 평강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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