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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전한 믿음 (히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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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태도를 두 가지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먼저 참 마음의 터전이 필요하며 거기에서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교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시대에 주시는 귀한 교훈인 줄 압니다. 이 비정상적인 시대에 발걸음과 이상한 심리작용이 각 곳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허탈한 정신세계를 그럴 듯한 꾸밈수로 점령하려는 현대의 마술사들이 날뛰고 있으며, 교회 안에도 가지각색의 주장과 단체들이 날뛰고 있고 교우들을 현혹하고 교회를 망쳐놓는 비극이 곳곳에서 속출되고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 주님의 말씀, “인자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볼 수 있겠느냐?”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한국의 교인이 900만에 돌파하는데, 온전히 바로 믿는 성도들이 얼마나 있겠느냐하신 말씀인 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문제 많은 고린도교회에 두 번째 편지를 보낼 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5)고 했습니다. 우리는 온전한 믿음 안에 있어야 하는데 온전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1.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구원이 그리스도에게 있으니 믿음의 주인은 예수님이란 말씀입니다. 즉 인간 심령의 지성소는 예수의 보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요일서 5:1절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자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히 12:2절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권면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믿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이 주인의 뜻대로 우리 믿음이 자라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러야 되겠습니다. 오늘 조용히 겸손하게 우리 신앙생활을 따져 본다면 주님의 귀하신 뜻보다 내 뜻이 더 큰 작용을 하고, 내 편의 뜻이 더 큰 결정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인간의 뜻으로 형성되어 가는 것도 눈에 띱니다. 어떤 교회에서 “그 교회는 목사의 말이면 다 된다”, “그 교회는 ××× 장로의 말이면 다 된다”하는 말이 있는 것도 일종의 인간의 뜻이 우세한 교회일 것입니다. 이 말은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말을 앞세우는 것보다 어느 한 사람의 뜻을 앞세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뜻을 어떻게 살리느냐 하는 것이 믿음의 과제요,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믿음의 태도일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목적은 오직 그의 뜻을 기쁘게 하고 높이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뜻을 내 몸에서 이루어 드림으로 그를 기쁘시게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들은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랴”고 자신에게 항상 물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서는 사람에게 인심을 잃어도, 욕을 먹어도, 박해를 받아도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데서 믿음의 빛이 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믿음의 왕이 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는 모든 것보다 높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보좌는 그리스도께서 점령하셔야 되겠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모든 것보다 높다는 것은 믿음의 주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있다는 데서 존경을 받고 귀애함도 받아야겠습니다. 절대로 높은 보좌에 우리가 앉아서 그리스도를 문 밖에 세워 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보좌에 앉은 사람이 있으면 어서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 자리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대상은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을 보고서 어찌 믿음이 설 수 있겠습니까? 혹자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불상사와 믿음에 합당치 못한 일을 보고 분개하고 믿음을 포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의분과 정의감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 믿음의 대상을 사건과 인간에 두었다는 데에 대해서는 잘못임을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고, 그에게서 완성되는 것임을 철저히 인식하고 나가야겠습니다.

2. 어떤 믿음이 온전합니까? 그것은 성서를 중심한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여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구원의 도리를 밝힌 책입니다. 성경에서 예수의 진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진리가 믿음의 키가 됩니다. 끝 날이 가까워올수록 이야기는 많아지고 주장은 각각 달라집니다. 이때 우리 믿음의 방향을 정해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오늘의 신앙, 오늘의 교회는 방향을 잃고 있지나 않는지요? 그래서 이 세대에 소금의 역할은커녕 오히려 스스로의 문제로 고질이 들지 않았습니까? 좌우에 날쌘 검 같은 말씀으로 이 시대를 분석하고 진리의 빛인 말씀으로 이 시대를 빛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 신앙의 양식이 됩니다. 우리가 하루에 세끼의 식사를 필요로 하는 것 같이 믿음이 지속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날마다 먹어야 하고 소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소극적인 성서론을 변론하자는 것도 아니고, 해석론을 토의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주신 말씀을 먼저 기도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를 받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내리 읽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경을 살지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지 않고는 믿음이 바로 자라날 수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가서 듣는 목사의 설교와 성경공부로써는 너무 빈약합니다. 부흥회만 따라 다니는 성경공부는 변덕이 많아 싫증이 납니다. 말씀의 양식을 내 생활에서 떼지 않도록 힘써야 되겠습니다. 성경을 바로 읽으면 모든 말씀이 틀림없는 하나님 말씀으로 믿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칙으로 삼고 그 위에 믿음의 집을 건설하면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도 요동치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 배에 채워서 교회와 인격의 무게를 보여주기 바랍니다. 살아있는 증거는 말씀에 굳게 설 때에만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한국교회는 말씀을 가장 사랑하는 교회로, 말씀에 서서 승리한 역사적인 교회로 자랑할 만 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이 면류관을 뺏기지 않기 위하여 힘써야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온전한 믿음은 성경을 놓지 않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유지되고 자랄 것입니다.

3. 온전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연합하는 믿음입니다. 이 연합은 합동을 의미함은 아닙니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졌고, 다른 성격을 가졌고, 다른 주장을 가졌으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에서 서로 이해하며 교제하자는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처럼 저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교우인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어찌 내가 미워하겠는가 하는 마음을 품고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자는 것입니다. 내 교회와, 남의 교회, 내 교파와 남의 교파가 특성은 다를찌언정 다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시인하고 “너희가 하나 되라”고 하시던 주님의 분부를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하나가 되는 데는 십자가를 질 때 큰 사람이 손해 보는 것처럼 잘 믿는 사람에게도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어야지, 나는 많고 크니 자만하고, 잘 믿으니 교만하여 갈라서면 그만큼 약해지고 주님과 그 교회에 손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결론 어떤 것이 온전한 신앙입니까? 십자가를 지는 믿음입니다. 우리 주님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습니다. 발 벗고 믿음의 일터에 뛰어드는 실천가가 바른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어느 때보다도 오늘,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나라에서 온전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예수 중심, 성경 중심, 연합과 교제, 사명의 실천을 힘쓰는 믿음을 다시 찾고 그것으로 나를 살리고 교회를 새롭게 하고 바로 잡는데 이바지 해야겠고 그것으로 궁극에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는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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