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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의 신앙 (히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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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와 야곱은 쌍둥이긴 하지만 그 성격과 생활 태도에 있어서 아주 대조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형 에서는 성격이 우락부락하고 야성적이며 대범한 인물임에 비하여, 동생 야곱은 그 성격이 여성처럼 유약하고 그 생활 태도가 매우 영리하고 교활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에서는 아버지 이삭의 사랑을 받았고, 야곱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생각한다면 에서는 확실히 야곱보다 활발하고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누구나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성격의 소지자였습니다. 그는 어떤 면에서 솔직하고, 정직하며, 호탕하고, 관대하기조차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소심하고, 유약하며, 교활하고 이기적인 야곱이 그 위대한 아브라함의 신앙적 유산을 계승하고, 에서는 도리어 이스라엘 정신사에 있어서 보잘것없는 에돔족속의 조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까? 그 이유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야곱은 멀리 바라보는 신앙에서 사는 사람인 반면에, 에서는 현실적인 것만을 위해 사는 유물적인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인간성 여부보다도 그 사람이 표방하고 있는 삶의 이상과 목적 여부가 그 사람의 생애를 결정짓는데 있어서 보다 근본적인 요소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 아무리 훌륭한 바탕과 좋은 성격과 존경받을만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찌라도 그 사람의 삶의 이상과 목표가 천박하고 낮은데 있다고 하면 그는 하잘것없는 무가치한 삶을 살게 되고 마는 것이요, 반면에 그 인간성에 다소 부족과 결함이 있다 할찌라도 삶의 이상을 고결하고 높은데 목적을 두고 사는 사람이면 마침내 그는 보람 있고 축복받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관심과 목적은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의 구속사의 주인공이 될 장자의 명분을 취득하는데 있었습니다. 실로 그 위대한 이상과 믿음이 인간적으로는 결함이 많고 교활하게 보이는 야곱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택하신 유일한 이유였던 것입니다. 에서의 경우에는 장자의 명분 따윈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는 사내답게 계곡 사이를 말을 달려 산 짐승을 사냥하며 잡아온 짐승의 고기를 안주삼아 대접으로 술을 들이키는 생활 속에서만 만족과 희열과 생의 보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에서가 사냥에서 배고파 돌아왔을 때 바로 눈앞에서 야곱이 끓이고 있는 붉은 팥죽이 그의 식욕을 못 견디게 북돋우어 놓은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그 죽을 좀 달라고 청했습니다. 교묘하고 수단 좋은 야곱이 이 틈을 놓칠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평생의 희망인 장자의 명분을 자기에게 넘겨주면 팥죽을 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에서는 장자권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지라 “내가 굶어 죽게 되었는데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라고 하면서 줄 것을 맹세하고 한 그릇의 팥죽을 받아먹었습니다. 에서는 너무나 헐값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넘겼고, 야곱은 너무나도 쉽게 장자권을 소유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에서는 다만 순간적인 욕망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에서로 하여금 에돔족의 족장으로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약점이요,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은 4, 500년 전에 살던 에서와 야곱만이 부딪친 문제가 아니라 20세기 하반기에 처해 있는 오늘의 생활에서 당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장자의 명분이란 피상적으로 보면 만져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당장에 무슨 효험이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배고플 때에 주린 창자를 채워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만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귀한 것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의 참뜻은 아브라함의 축복을 계승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구원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장자의 명분은 귀한 것입니다. 야곱은 오늘 우리들의 그림자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육의 야곱과 영의 야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육의 야곱은 우리의 믿기 전의 상태를 보여주고, 영의 야곱은 회개 후의 거듭난 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1. 육에 속한 야곱

(1) 거짓되고 이기적인 야곱 야곱은 태어날 때 에서가 먼저 태어나는 것이 못 마땅한 듯 에서의 발 뒤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했습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를 유혹하여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까지 속여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남을 속이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남으로부터 속임 받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즉 외삼촌 라반에게 열 번이나 품삯을 사기 당했고, 자기 아들들에게 속아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은 고통을 10여년 간이나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그의 마음은 늘 죄의식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야곱은 환영하러 나온 에서를 두려워하여 밤새껏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2) 조건적인 야곱의 신앙 믿음이란 사랑과도 같은 것이어서 믿음이 조건적이 될 때 신앙은 타락하게 됩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가다가 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때 야곱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서원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 가는 이 길을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1/10을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창 28:20-22). 나에게 이러 이러한 것들을 해주시면 내가 하나님을 믿겠나이다라는 것이 야곱이 하나님께 한 서약으로 면면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과 축복을 흥정하고 있는 야곱에게서 우리는 육에 속한 야곱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3) 자신만을 위한 야곱 형과 아버지를 떠나 살던 야곱의 생활에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돌보심이 없었다면 한 순간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한 순간도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 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외삼촌 라반 집에서도 14년은 아내를 얻기 위해서 살았고, 나머지 6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 그의 재산은 무척 많았지만 야곱은 그 중의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위해서는 써 본 일이 없이 자기만을 위하여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2. 영에 속한 야곱 거짓되고 이기적이며 조건적인 육의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첫째,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둘째, 약점 있는 야곱이지만 신앙인이었기 때문입니다.

(1) 투철한 하나님의 의식이 있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야곱은 하나님 없이는 못 사는 줄 알았습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에서에게 장자권을 샀던 일이나, 아버지 이삭을 속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자 함도 다 그런 배경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못 사는 줄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이 신앙을 귀하게 보십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훌륭해도 하나님을 우습게 여겨 장자권을 소홀히 여기면 하나님은 싫어합니다. 구원은 선을 행하는 도덕과 양심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고 믿는 신앙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에서가 아무리 야곱보다 인간적으로 낫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똑 같은 죄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2) 끈기 있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밤이 늦도록 그물질하는 끈기가 있어서 어부 시몬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고, 38년 동안 베데스다 못가에 누워 병 고침을 받으려는 끈기가 있어서 그 병자는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은 끈기를 요구합니다. 야곱은 절박한 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과 씨름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환도 뼈가 부러진 후에도 하나님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중에 우리는 환도 뼈가 부러지는 것과 같은 환난과 시험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이럴 때 끈기 없는 자는 실패합니다. 야곱은 밤을 새워 씨름을 했으며 뼈가 부러지기까지 하나님께 매어 달리는 끈기를 보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천국은 야곱과 같이 끈기 있는 자의 것입니다.

(3)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이었습니다. 얍복강을 건넌 야곱은 형 에서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으며 그 길로 가나안 땅 세겜성으로 들어가 밭 하나를 은 백개로 사서 그곳에다가 단을 세우고 그 단 이름을 “벧엘로헤 이스라엘”이라고 했는데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평생 자기만을 위해 살던 야곱이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에서 단의 이름을 “벧엘로헤 이스라엘”이라고 불렀던 이 사건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께 대한 야곱의 감사가 감격스럽게 숨겨져 있습니다. 이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감사 속에,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이 진실한 고백 속에 야곱의 신앙은 숨겨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육에 속한 야곱처림 허물 많고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질그릇과 같은 야곱 속에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신앙이 보배처럼 담기워져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질그릇과 같은 우리도 야곱의 신앙과 같은 보배를 간직하면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이 될 수 있습니다. 야곱과 같은 신앙을 지니고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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