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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로 연단한 믿음 (벧전 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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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는 보잘것없이 보이나 늙은 할아버지께는 가장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보잘것없는 것 같이 보일지 모르겠으나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이며 성도들에게 유일한 생명이요, 힘이요, 길입니다. 실로 십자가의 종선은 하늘에서 땅에 닿았고, 횡선은 동에서 서에까지 닿았으니 세계 인류는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성도들이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은 가장 귀한 보배이니 주님 오실 때까지 이 믿음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1. 금보다 더 귀한 믿음 6-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였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구원은 믿음으로서 받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받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시험과 연단으로 받는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평안할 때에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녀들이 무능한 자녀가 되지 않고 뜻있게 깨닫고 알아 감사하게 하기 위하여 그 백성 그 자녀들을 특별히 연단시키고 훈련시킴을 통해 구원을 선사합니다. 히 12:8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 아들이기 때문에 징계하시고 연단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로 보면 연단을 오히려 기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약 1:2-3에 “시험을 기쁘게 여길 까닭은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오는 환란에 대비하려면 인내의 힘을 길러야 할 터인데 이 인내는 시련 중에서 생기는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받아 가지고 끝까지 지속해 나아가려면 이 연단에서 오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 24:13에는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하셨고, 눅 18:8에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셨으니 마지막 때에 믿는 것이 어렵고 또 믿는 자가 희귀한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자가 시련을 당하는 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하나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마 3:12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을 불에 태우시리라” 하신 말씀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가을의 오곡백과도 여름의 뜨거운 폭양을 견디고 비바람과 찬 이슬을 다 견디고 나서야 결실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실 된 믿음도 여러 가지 시련을 통해서 연단을 받은 후에야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7절 하반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여 우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불 속에서 연단 받는 금보다도 더 귀한 연단을 받아서 장차 오실 주님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아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2. 보지 못하고 믿는 자 복이 있도다 8-9절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했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 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역사적인 주님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지 못하는 가운데 믿음을 지키는 자는 더욱 복이 있을 것입니다(요 20:29, 히 11:1, 27). 그것은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그들에게 구원의 복을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성도의 영혼은 믿음으로 벌써 구원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혼의 구원이 우리 성도들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육신의 모든 축복은 부차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구원은 신자가 다 받아야 하고 기본적으로 받아야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는 사람을 영, 혼, 및 몸으로 삼분하고 있습니다(살전 5:23, 고전 15:45-46). 이것은 당시의 헬라계 사람들이 삼분설하여 몸을 이해했기에 바울은 이 입장에서 헬라계 사람에게 편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라틴계 사람들은 사람을 이분화하여 몸과 영혼으로 이해하였는데 베드로 전서가 라틴계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말씀이므로 몸과 영혼의 이분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청중들에게 썩어질 육체의 영광보다는 영원한 영혼의 영광을 추구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육신의 주님을 보진 못했으나 주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육안으로는 주 예수를 보지 못했으나 신앙의 눈으로 주님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이때 영혼의 구원을 하나님은 선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도마에게 요 20:29에 기록되었듯이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보고 만져보고 믿는 신앙보다 보지 아니하고 믿는 신앙을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3:12에서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참고 견디면 실제로 눈으로 볼 날이 올 것입니다.

3. 고난과 영광 10-11절에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 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사람들에게 전해준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예견한 메시야에 관한 그들의 꿈과 환상을 모두 성취시킬 임마누엘이 언제인가 그날에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선지자의 영광스런 메시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룬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중생의 역사를 우리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요 3:3에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 하느니라”고 천국에 향하는 길을 일러 주셨고 거듭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리신 것은 뭇사람을 사망에서 구속하려 하심이니 곧 생명의 본원이신 하나님께서 끊어져 그 심령 상태가 마치 원류에서 끊어져 버린 지류같이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수를 주어 생명을 얻고 또 풍성하게 하시려는 목적입니다.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일, 중생에 관한 일은 선지자뿐만 아니라 천사들도 알기 원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가장 측근자이지만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는 우리 성도들에게만 계시하신 것이므로 성도들의 특권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도들이 고난과 시험 속에서도 크게 기뻐할 이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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