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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후에도 구원받을 기회가 있는가 ? (연옥설) (벧전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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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라도 만일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천주교에서 믿고 가르치는 소위 연옥설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있는 동안 아직 회개치 못한 죄라든가 또는 불완전한 심령을 가졌던 신자는 죽어서 낙원에 거하기 전에 중간 상태에 있어서 형벌적 순화적 고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연옥설은 대체로 3세기 경부터 시작된 것인데 플레멘트나 오리게네스가 말하기를 바울이나 베드로 같은 이도 그 모든 죄에서 깨끗함을 받기 위하여 이 불 가운데로 통과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중 중세기 신학자들은 연옥의 불은 물질적이라는 등의 여러 가지 설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연옥설은 기독교에서는 비성서적인 교리로 이해합니다. 15세기의 암흑시대는 이 설이 퍽 숭배를 받았었습니다. 그 당시 천주교에서는 이러한 교리를 말하여 속죄증서를 발매하면서 사람을 무수히 우롱했습니다. 이승에서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죄는 사후의 영혼이 연옥이란 곳에 가서 얼마동안 성결함을 얻어야 한다고 하여 독일 수도사 텟젤이 속죄증서를 팔러 다녔습니다. 그는 “궤 속에 돈이 들어가면서 쩔렁할 때는 조상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당으로 올라간다”고 하면서 수많은 무리들이 자기의 선조나 친족, 친구의 죽은 영혼을 위하여 그 속죄증서를 사게 되었으니 전도하여 구원 얻은 영혼이 더 많다고 합니다. 이런 교리서는 성경의 교리가 아니요 거짓된 교리이며 비성서적입니다. 천주교는 신자들을 미신으로 인도하며 여러 가지 거짓 교리를 가르쳤던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죽은 후에 회개하여 구원 받을 기회가 있다는 교리가 전파되면 전파될수록 사회는 흑암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여전히 도적질 할 것이며 음행하는 자는 여전히 음행할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원죄가 있어 죄인입니다.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악한데 연옥설이 있다면 누가 세상에서 예수 믿고 올바로 살겠습니까? 원죄로부터 죄인인 인간이 어찌 회개를 기뻐하며 회개하겠습니까? 만일 사람의 영원한 생명이 자기 생전에 결정되지 아니한다면 사람들은 생전에 자기의 삶에 충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생전의 삶으로 영원한 삶이 결정된다면 사람마다 생전에 아무쪼록 회개하여 영원한 생에 운명을 결정코자 할 것입니다. 만일 사후에도 회개할 기회가 있다면 죄의 노예요 죄의 본성을 지닌 인간으로서는 누구든지 죄 그대로 살면서 죄 그대로 향락하다가 사후에 연옥에서 회개하겠다는 것이 심리상 필연의 결정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신교에도 이런 교리를 말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습니다. 인도의 선다싱도 이 학설을 주장했고 일본의 다께모도 목사도 이 설을 주장했습니다. 다께모도의 저서 “문 밖에서 두드리는 주”라는 책 중에 이러한 학설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믿지 않고 죽었는데 그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는 이가 더러 있습니다. 이것은 주의 뜻대로 드린 기도가 되지 못합니다. 대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의 결정은 그 죽는 순간에 벌써 결정되고 마는 것이라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낙원 혹은 음부에 가는 것은 신, 불신으로 좌우되는 것인데 이것은 그의 임종 순간의 상태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기사가 나옵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죽어 음부에서 고통 중에 있다고 하였으니(눅 16:22-23), 의로운 거지 나사로는 죽자 곧 평안한 처소에 간 것이며, 악인 부자는 죽자 바로 고통의 처소(24-25)에 간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여기에서는 연옥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최후 심판의 비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은 심판을 받자 곧 영원한 불 가운데 들어갔고 오른편에 있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갔습니다. 이와 같이 이 본문에서도 연옥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회개하는 강도에 대하여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3)고 하였으니 예수님 자신도 연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 행 1:25에서도 가룟 유다가 자살하는 날 연옥이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계시록에도 구원 얻은 144,000 성도가 천국에 있고 우상 숭배한 자, 거짓말하고 죄지은 자, 사탄의 인 맞은 자는 영원한 불에 던지우리라 했으니 연옥은 고려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중간옥(연옥)에서 다시 순화를 받기 원하는 자의 심리는 어떠합니까? 이는 아직 죄악의 생애에서 근본적 분리를 하지 않은 자들의 망상이며 또는 죄 아래서 신음하면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즉 중생의 체험이 없는 자들입니다. 아무래도 인간은 약합니다. 세상은 죄악이 관영하여 육체를 가지고 사는 동안은 도저히 깨끗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말이 나오기 쉬우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만 너무 치우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약점도 알고 세상이 죄악인 것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무궁하신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권능이 우리로 하여금 능히 현세에서 정결케 하며 강컨케 하며 주의 영화로운 날에 흠과 책망이 없이 그 앞에 서게 할 것을 믿습니다. 현세에서 주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완전케 속죄하여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연옥의 신학은 중세기의 암흑시대의 신학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내일 이나 내세로 미룰 것이 아니라 오늘 있는 동안에 주님에게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고후 6:2, 히 3:13). 만일 우리가 마땅히 회개할 것을 회개치 않고 죽으면 사후에는 구원의 기회가 없는 것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성결의 시간도 주님의 재림 전입니다(살전 3:13). 우리는 모든 죄와 불의를 떠나서 지금 곧 살아있는 동안에 성결케 하여 내세의 준비를 완전히 하는 동시에 현세에서도 빛과 소금의 직분을 완전히 이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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