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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입맞춤으로 문안하라 (벧전 0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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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의 충실한 조수
12절에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 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실루아노라는 형제는 바울의 동행자로서 행 15:22, 17:10, 18:5에 기록되어 있는 실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후 1:19, 살전 1:1, 살후 1:1에서도 출현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실루아노라는 말은 대필자라는 뜻이며 편지 쓰는 기구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편지를 실루아노가 대필했다는 것입니다. 실라, 즉 실루아노는 초대 교회의 지도자이며 기둥 같은 인물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행 15:22-27에 유다와 실루아노는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회의에서 이방인 전도의 문을 연 안디옥에 파송되었으며 그들은 단순히 편지 배달의 사명 정도가 아닌 전도자로서 설교자로서 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최초 전도여행에서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두고 밤빌리아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2차전도 여행을 준비할 때에 바울은 마가를 다시 데려갈 것을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바나바는 마가를, 바울은 실루아노를 동반자로 택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실루아노, 즉 실라는 오랫동안 바울의 오른팔이 되어왔던 것입니다. 그는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듯이 바울과 함께 옥중에도 들어가기까지 했습니다. 실루아노는 바울과 함께 이렇게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전후서에서는 바울과 디모데와 함께 실루아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실루아노는 이와 같이 초대교회의 유력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실루아노가 베드로의 편지를 쓸 때 대서인 이상으로 보좌하여 기록해 드린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내용은 사도 베드로의 전도 내용이 담겨져 있으나 그 용어는 유달리 헬라 원어의 깊은 조리 있는 말이 특별히 많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실루아노가 대필하면서 훌륭한 용어로 기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루아노는 숨어 봉사하되 바울의 조수만으로 만족하였고 베드로의 필기자로 만족하여 그의 이름이 잠간 나오는 것으로 족하게 여긴 것입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교회는 실루아노처럼 봉사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 같이는 될 수 없어도 바울과 베드로가 실라 없이는 일할 수 없었던 것 같이 그런 충실한 성도들이 필요합니다.

2. 인사말 13절에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고 문안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안부를 전했습니까? 함께 택함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은 애굽을 가리키기도 하며 동방의 바벨론을 가리키기도 하고 로마 혹은 타락한 세속사회의 세상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세상에 흩어져 있는 세상 사회를 말한다고 보입니다. 바벨론에 있는 교회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로마를 가리킨 것으로 로마에 흩어져 있는 교회를 말합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 사정을 바울과 베드로에게 늘 연락한 사람이 마가와 실루아노였던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 “내 아들 마가” 라고 하였습니다. 마가와 베드로는 어떤 관계이겠습니까? 마가는 누구입니까? 골 4:10에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행 1:13, 12:12에 마가의 어머니는 마리아요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부유층이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는 예수의 열두제자 속에는 들지 못했으나 70제자의 한 사람으로 마가복음을 기록하여 4복음서 중 제일먼저 예수의 생을 기록하였습니다. 마태, 누가, 요한은 마가복음의 기록을 보고, 예수를 보고 체험한 사실을 더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마가의 일생에 실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전도여행 중에 전도생활에 피곤을 느껴 집에 돌아가 버린 것으로 바나바와 바울 사이에 불화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바나바가 자기의 생질의 잘못을 두둔함으로 결국 바나바와 바울은 전도 중 헤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마가는 부유한 집에서 성장하였으므로 유약한 청년이매 고된 전도의 고통생활에 이기지 못하고 처음인 전도생활을 포기하여 사도 바울의 가슴에 상처를 준 청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 여행을 마치고 바울이 옥중에 갇히어 사형 언도를 받은 후에 마가는 뜨거운 충격을 느껴 다시 바울을 찾아와 그를 도왔습니다. 딤후 4:11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마가는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할 정도로 그는 열심히 봉사했던 것입니다. 마가와 관련된 사도 중에는 베드로가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마가를 아들이라 불렀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가 마가에게 세례를 주었고 예수님 생존시 예루살렘의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집에 들르면서 친분이 두텁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승천한 후에 120문도가 마가의 집 다락에서 기도함으로 오순절 세례를 받고 교회가 마가 다락방에서 시작되었으며 베드로가 초대교회로 창설된 마가 다락방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베드로와 마가는 친밀했다는 것을 상상하기에는 어렵지 않습니다. 후에 마가는 바울을 따라 조수하면서 그의 신학과 견문이 넓어져 훌륭한 사도가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마가를 탄생시켰다면 바울이 마가를 교육시킨 것입니다. 마가는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 후 애굽에 건너가서 알렉산드리아 시에 교회를 세우고 거기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감독이 되었다가 그의 여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마가는 이같이 베드로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베드로전서 결론에서 내 아들 마가라고 서슴없이 소개받을 만한 훌륭한 제자였습니다.

3.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14절에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입맞춤이라는 것은 당시의 교회에 집회가 있을 때 사용된 의식이었습니다. 기도한 후에 남자들끼리 입 맞추고 여자들끼리 입맞춤으로 사랑과 우정을 표시했습니다. 또 새로운 성도가 한사람 교회에 나오게 되면 교회 감독인 장로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그 성도와 입 맞추었던 것입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제자가 랍비에게 인사드릴 때 입을 맞춥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룟 유다가 예수에게 입맞춤으로 팔았다고 하는 것은 유대의 풍습인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선 입 맞추는 것이 기도 순서 다음에 있는 예배 의식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배드릴 때마다 성찬식을 베풀었습니다. 기도 후 입맞추고 그 후에 성찬식에 들어갔습니다. 즉 거짓 없는 사랑의 은사 시간으로 입맞춤이 예행되었던 것입니다. 원래는 이것이 이렇게 예배의 한 순서였으나 남용이 너무 많아 남녀간에 입맞춤이 시작되었고 점점 젊은이들의 육적인 사랑의 표시로 변화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알렉산더 클레멘트 교부가 예배의식의 입맞춤을 뺏던 것입니다. 이는 교회의 평화와 사랑의 교제가 그 진실을 잃어 그 예식을 그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세속화 되고 타락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그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멘.”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 라는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평강이 있을 수 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평강과 은혜가 여러분에게 계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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