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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형제의 우애 (요일 0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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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사도 요한은 모든 믿는 형제들에게 주님께서 주신 형제 사랑의 계명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요 13:34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신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여기서도 특별히 형제간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벧후 1:5 이하에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더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경건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옳은 관계를 말하는 것이요 형제우애는 형제와 형제 사이의 옳은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형제 우애는 흔한 것이면서도 실로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 인간 사회에서 발생한 첫 살인 사건은 형제간에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형제간에 우애가 없으므로 가인은 아벨을 죽였으며 야곱의 아들 들은 요셉을 애굽에 팔았습니다.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도 형제간에 우애가 없어 일어난 비극은 많이 있습니다. 고구려 시대에 연개소문의 아들인 남생, 남건, 남산이 있었습니다. 연개소문은 죽으면서 형제간에 서로 도와 나라를 잘 다스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가 죽고 큰아들 남생이 재상이 되자 두 동생들이 시기하여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당나라의 앞잡이가 되어 고구려를 망하게 하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형제간의 불화가 나라를 망하게 한 것입니다. 6·25 사변도 형제간의 사랑이 없는 결과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전쟁의 결과 우리 동포들끼리 싸우고 죽이고 하여 수많은 피해를 내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형제간의 불화는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싸움 가운데 가장 추한 싸움은 형제간의 싸움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형제에 대해 욕하는 것도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형제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도 먼저 형제간에 사랑을 하라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며 형제를 미워하며 이는 거짓말하는 것이라 하면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미움이나 질투와 함께 거할 수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해야 함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를 닮는 생활이므로 그의 사랑도 우리가 닳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형제 된 우리는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또 형제 사랑은 예배를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예배를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가서 사죄하고 화목하게 한 다음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드리는 예배는 거짓되고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화목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예배가 되는 것이요 화목한 교회생활은 자연적인 전도인 것입니다. 서로 사랑을 하는 교회는 이상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사랑이 요구되는 이 세상이기에 더욱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초대교회가 서로 유무상통하고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사랑에 힘써 복음이 자연히 전파되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우리를 조롱하고 비방하는 안 믿는 자들과 마귀권세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믿는 자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면 이들의 비난거리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비난받는 이유는 형제간에 서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또 형제를 사랑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시기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시기하여 죽였으며 요셉의 형들도 요셉을 시기하여서 팔아 버리고 부모를 속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언제나 시기와 질투가 우리를 시험하려고 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가서 축복해 주고 자신도 노력하여 땅을 살 수 있도록 해야지 시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밟고서 높아지려 하지 말고 남을 도와가며 함께 높아지려 해야 합니다. 형제간에 빠지기 쉬운 것이 시기하는 죄입니다. 둘째는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요셉은 그의 형제들을 용서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자손만대에 이르도록 받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형제를 얼마나 용서해야 되느냐고 묻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란 많이 하면 할수록 은혜로운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한한 죄를 용서하심 같이 우리도 형제의 죄를, 잘못을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 6:14에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 하시리라” 하십니다. 셋째는 양보의 덕입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함께 거하였으나 두 사람의 양떼가 너무 많아 도저히 함께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둘은 서로 갈라지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좋은 땅을 택하지 않고 먼저 조카 롯에게 장소를 정하도록 양보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롯의 눈에 보기 아름다운 땅을 선택하여 나갔지만 아브라함은 양보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더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양보의 미덕을 배워야 합니다. 특히 재물에 얽힌 문제일 때 더 양보하여 형제간에 수치가 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서로 양보하는 미덕은 축복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나라에서부터 시작합시다. 믿는 사람끼리는 더욱 화평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한마음 한 뜻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임하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화목하고 사랑하는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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