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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버가모 교회 (계 0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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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 교회는 기독교의 박해 때 서머나 교회의 시기는 끝나고 평온하고 오히려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는 큰 세력 있는 위치에 놓여 있어서 교회가 오히려 타락의 길을 밟게 된 것입니다. 그 중에는 결신자와 순교자도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은 돈에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우상의 재물과 행음으로 이스라엘을 타락시킨 발람의 교훈을 따르며, 니골라당의 교훈을 받아 교계를 어지럽히는 것이 당시 버가모 교회의 실정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이단과 미신으로 교회의 진리는 매몰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성서의 계시의 말씀을 잘 배워 버가모 교회처럼 타락되는 성도가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 버가모 교회에 나타나신 그리스도 버가모는 서머나 교회보다 북쪽에 위치한 당시 아시아의 정치, 문예의 중심지인 고대 도시입니다. 버가모는 세 가지 큰 관광이 있습니다. 첫째로 큰 저택들이 많고 둘째, 아름다운 궁전이 있고 셋째, 20만권이 넘게 비치된 도서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버가모 지방 사람은 벼슬을 가진 사람들은 교만해서 하나님을 안 믿고, 지식층 사람들은 지식 때문에 못 믿고 무식층은 우상 승배 때문에 하나님을 못 믿었습니다. 이런 버가모 교회에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즉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이라 함은 히 4:12,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또 요 12:48, 한편 날은 심령을 찔러 죄를 자각하게 하여 회개를 이루고 또 한편 날은 완고하며 회개치 않는 것을 심판하는 날선 검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버가모 교회에 날선 검을 가지신 주님께서 나타나심은 버가모 교회로 하여금 성결케 하여 심판을 면하게 하시려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종창(腫脹)도 작은 것은 고약으로 그 독소를 뽑을 수 있으나, 종창의 뿌리가 깊게, 혹 악성으로 곪았을 때는 그것은 고약으로는 안되고 메스(수술칼)로 째서 치료를 해야 되듯이, 우리의 죄도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을 때 외면에 나타나는 것만 회개하고, 즉 죄의 상처를 겉으로만 치료(평안치 않으면서 ‘평안하다,’ ‘평안하다’함)하고 그대로 둔다면 그 죄의 무서운 독(毒)은 더 깊숙이 스며들어 후에는 무서운 결과만 가져오게 되는 것 입니다. 주님은 이런 상태에서 방황하는 우리를 향하여 지금도 구원의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시 139:23, 24에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 했습니다. 우리는 죄악의 질병을 고치지 않으면 먼 훗날 우리의 귀중한 생명을 원수 마귀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무서운 죄의 병은 처음에는 피부에서 외관상 썩게 되나, 후에는 혈액 속으로 더러운 죄의 병균이 침투하여 그것을 치료하지 않으면 병균은 위장을 통하고 골수까지 들어가 아무 소망 없이 죄악의 병으로 육신의 생명은 물론이요, 영혼의 생명도 빼앗아 가고 맙니다. 그러므로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먼저 심령을 수술 받아 깨끗함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의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 버가모 교회에 대한 칭찬화 책망

(1) 칭 찬 13절,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 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 버리지 아니 하였도다”라 했는데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사단이 거하는 곳 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하였으니 여기 사탄의 위가 있는 곳은 버가모 지방 의 기독교인들이 부르는 지명의 별명으로 버가모 지방이 뱀 모양을 한 우 상을 맡이 섬김으로 뱀을 사탄으로 간주하여 사탄의 위가 있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버가모는 죄악과 우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우상이 우 글거리는 곳에서 주의 이름을 붙잡고 신앙생활 하였다는 것을 칭찬한 말씀입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 자란 나무는 그 뿌리가 깊이 박혀 있는 것처럼 사탄의 박해가 많은 지역의 성도들은 그 신앙의 뿌리가 깊어 늘 하나님 앞에 영광의 빛을 드러낸다는 말씀입니다. 안디바는 유명한 헬라 학자로서 안디바의 뜻은 박학(博學)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여기 본문에 안디바를 “내 충성된 증인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한 마디 말씀이야말로 세상과 사람들이 주는 천만 가지 어떤 칭찬의 말보다 더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내 증인 ”이라는 귀한 사명을 옛 성도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이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들에게도 주신 사명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 을 버리신 주님의 마지막 부탁의 말씀, 곧 마 28:19, 행 1:4-8,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성령을 받아 권능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2) 책 망 “너희 중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가 있고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하였습니다. 1) 발람의 교훈 민 22:1-20에 발람미라는 선지자는 발락 왕의 뇌물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 범죄케 할 올무를 놓아 유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으로 우상들의 여제사장 성녀들과 혼음케 하여 하루에 23,000명이나 성병으로 죽게 하고 우상에게 예배드리게 함으로 타락케 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케 함으로 하나님의 나귀를 통해 책망을 받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의 교훈은 우상 숭배를 정당화시킨 죄악입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을 때 일본 기독교는 일본의 “신사참배 ” 는 종교의 행위가 아니라 국가의 의식이라 하여 타락케 했습니다. 그 일 본 기독교야말로 발람의 교훈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버가모 교회 신자처럼 세상과 짝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신앙이 아닌가 염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제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주님 앞에 나아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살 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곪았으면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주님의 말씀으로 수술 받아 성별되는 은혜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 니골라당의 교훈 초대교회 일곱 집사의 한 사람으로서 믿음있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그 개인의 신앙적 차이로, 즉 육신은 원래 악하므로 육신으로 구원얻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영혼이 구원얻으니 그리스도만 믿으면 육신의 죄. 물질적 죄는 아무리 지어도 영혼의 구원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함으로 한 교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동기는 당시 델라 철학 사상에서 비롯 된 것으로 그노시스주의가 성행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교회까지 침투하게 된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에서 배척받은 이 교파가 여기 버가모 교회에 다시 꽃을 피우게 되었던 것 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정말 행함을 무시한 입출로만의 신앙이 아닙니까? 다시 한 번 살았고 능력있는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하여 보시기틀 바랍니다. 약 2:26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습니다.

3. 주님의 권면 16절에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네게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 들과 싸우리라” 하셨는데 검을 가지시고 임하심은 어떻게 하든지 회개케 하기 위한 사랑의 목적에서입니다. 주님은 오히려 “은혜의 날, 구원의 날” 등을 열거하시고 한 영혼도 멸망치 않고 구원 얻기를 원하셔서 천년을 하 루같이 참으시고 계십니다. 이때야말로 회개할 가장 귀한 때입니다. 지금은 주님께서 오실 가장 가까운 때요, 마지막 은혜의 때입니다. 그러므로 결성하고 회개하여야 할 것이며, 마지막 은혜의 때가 지나면 심판의 날이 오므로 깨어 있어야 할 때입니다. 눅 13:5,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도 회개치 않으면 이같이 망하리라” 하신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주님의 약속 17절 말씀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 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흰 들을 줄터인데 그 돌 위 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 하였습니다. 감추인 만나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만나는 옛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간 하나님께서 양육하신 양식인데 감추인 만나라 함은 모세가 후세 에 증거하기 위하여 한 호멜 만나를 항아리에 넣어 법궤 가운데 두어 보 존한 만나를 말함인데 이 만나는 예수님의 모형이니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 6:31-35에 “자신을 가리켜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 하였습니다.

(1) 즉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옴 같이 주님께서 하늘에서 인간의 육신 을 입고 오셔서 생명의 떡으로 주린 인간들의 영혼을 배부르게 채워 주셨 습니다.

(2) 만나의 모양이 작은 것처럼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는 위대한 인물로 오시지 아니하시고 지극히 비천한 층에 그것도 베들레헴 외양간에서 탄생하셨던 것입니다. 보기에는 그리스도께서 작은 자, 평범한 자 같았으나 저는 생명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인의 구주이었습니다.

(3) 만나는 원어로 “둥글다, 둥근 것 ”이란 뜻인데 만나는 모가 나지 않고 둥근 것 같이 주님은 진실로 원만하신 분이십니다. 누구에게든지 두루 만족을 주는 분이십니다.

(4) 만나는 흰색입니다. 만나는 붉지도 않고 검지도 않고 흰색이니 순결성을 말합니다. 이것 역시 그리스도의 본성을 뜻하는 것으로 순결하tu서 먹보다 더 검은 죄, 피보다 더 붉은 죄를 흰 눈보다, 횐 양털보다 더 희게 하시는 성결한 분이십니다.

(5) 값 없이 주신 만나입니다. 광야에서 헤매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 쌍히 여기사 값 없이 만나를 주셔서 많은 백성을 구원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죄악이 편만(遍滿)한 세상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등을 불쌍히 여기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값 없이 주사, 우리의 생명의 떡으로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어 재림시까지 숨기신 생명의 떡을, 다시 오실 때 우리고 하여금 거룩한 몸으로 부활을 허락하여 숨겨 두신 만나를 먹게 하시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수 있게 하셨으니 이 은혜 어찌 만 입 이 있은들 다 찬송할 수 있겠읍니까? 이것은 감추어진 만나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 우리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중도에서 낙오됨이 없도록 끝까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다 달린 후 믿음을 지켜서 이 숨은 만나를 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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