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두아디라 교회 (계 02:18-29)

첨부 1


일곱 교회에 보내는 서신 중에 가장 긴 편지가 가장 미미한 교회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졌습니다. 두아디라는 버가모 교회에서 남쪽으로 약 30 리쯤에 있는 도시로 아마 대구에서 경산쯤 떨어졌을 것입니다. 두아디라 도시는 직물과 도기와 피혁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행 16:11-15에 나타난바 바울이 최초의 전도에서 열매 맺은 자주상(紫紬商) “루디아”가 예수 믿고 회개하여 온 가족을 다 주께로 인도하여 그 온 가족이 구원 얻어 고향 두아디라에 가서 복음을 전한 것이 두아디라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한 여자가 구원 얻어 천혜(天惠)의 기쁨과 은혜가 충만할 때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 나와서 가족에게 미치고 시민에게 미침은 두아디라 경우 뿐 아니라, 오늘날도 많이 있는 예입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의 은혜는 어디까지 미치고 있읍니까? 가족으로부터 친척까지, 그리고 친구, 사회에까지 미치고 있읍니까? 루디아를 구원하신 주님의 목적은 그 생명뿐 아니라 가족, 친척, 시민에게까지 미치어 두아디라 교회를 건설코자 함에 있었던 것 같이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목적은 우리를 통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 하여 은혜 충만히 주시기 위함인줄 믿습니다. 「두아디라」란 뜻은 여자의 존귀한 뜻이니 루디아의 수고는 루디아만이 아니라 온 여성이 귀함을 받은 것입니다. 두아디라는 정치적 도시도 아니 요, 종교적 도시도 아니요 상업, 공업의 도시로 아무런 변동없이 모두 잘 사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 도시에는 공동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예가 있는데 공식적으로 그들의 우상 신전에서 종종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어 우 상의 제물을 먹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또한 우상 제사에 대한 그들 의 풍기는 매우 문란하여 두아디라 교회는 이런 모임에 참석해야 하느냐 안 해야 하느냐에 그들대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두말 할 것 없이 참석을 안 해야 되는 것은 정한 이치겠으나 사업하는 교인들은 사업에 지장을 가져오므로 이 직업 단체에서 빠질 이유가 무엇 인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부활하신 주님 의 대답은 계 2:19-23에 나타나 있습니다.

1.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나신 거룩한 모습 18절,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 이 가라사대 ”란 말씀 가운데 첫째로 주님은 그 눈이 불꽃 같으신 이로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의 눈은 한 편으로는 비둘기같이 아름다운 눈으로 어린이들도 기뻐하며 가까이 하고, 또 그 눈은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눈물을 흘리신 동정으로 충만하신 눈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불꽃같은 눈”이라 하였습니다. 이 표현은 구약 단 10:6에 천사의 모습으로 “그 얼굴은 번개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라 했습니다. 본문에 불꽂 같은 눈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즉 불꽃 같은 눈은 부활하신 주님의 눈에 있는 죄에 대한 불꽃 튀기는 분노일 것입니다. 그리고 가면을 벗겨 버리고 사람의 심령 깊은 곳까지 뚫어 보시는 눈초리 입니 다. 저 로마의 영웅 “시이저 ”를 위대케 한 특색의 하나는 그가 “불꽃 같은 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시이저가 한 번 눈을 흘겨 보면 가면을 쓴 위선자도 위축되었다고 합니다. 시이저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 주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두아디라 교회를 투시하여 보셨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우리 각자의 심장을 수탐(搜探)하사 마음 밑바닥에 숨어 있는 비밀까지 뚫어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제 이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신 주 앞에 겸손히 벌거벗은 몸으로 나가서 마음 깊은 모퉁이까지 잘 살펴 지극히 적은 죄와 허물까지라도 씻어 깨끗함을 입어 성결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두번째로 그의 발은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죄악과 더러운 것을 밟아 태우시는 주님의 위력을 말합니다. 그 영의 빛은 사람이 보고 견딜 수 없을만큼 강력한 것입니다. 즉 빛난 주 석 같은 발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확고 부동의 힘과 능력을 뜻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주님은 이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시고 죄를 찾아내어 주석 같은 발로 이것을 심판하십니다. 우리들도 이런 주님 앞에 있음을 기억하고 경건하게 살도록 힘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 첫째 계 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라 했습니다. 이 두아디라 교회는 빈민과 병자들에게 자애를 베풀고, 또 개인과 사회에 대하여 봉사의 정신이 풍부함으로 주 앞에 칭찬 받은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두아디라 교회에서 많은 선교사, 교사를 배출하여 역대 초대 교회 확장에 큰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오늘 이 교회에서 다미엔, 리빙스톤 같은 선교사가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두번째로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두아디라 교회는 빈민과 병자에게 자 애를 베풀고 개인이나 사회아 봉사의 정신이 풍부하여 칭찬 받음이 많았으나 일반 세속적 교회처럼 그 결국에 세속주의로, 또한 악한 인물들을 용납케 되어 교회는 순수성을, 순결성을 잃게 되어 마치 정절없는 여자와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20절,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했습니다. 이세벨이란 사람은 기독교 신자로 하여금 행음케 하는 죄를 짓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여 범죄 하도록 하는 적당주의로서 교회를 어지럽히던 자였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고기 문제입니다. 모든 고기는 우상 앞에 제사를 반드시 드리고 분배되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 우상의 제물된 고기를 먹을 수 있느냐는 것이 당시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고전 8-30장에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물로 드리는 고기는 좋은 것이고 나쁜 고기는 우상 제물로 드리지 아니하고 정육점에 팔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행 15:29에 우상의 제물인 고기는 먹어서는 안되나 좋지 않은 고기나 정결한 고기를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사회적 직업 단체가 모두 우상과 집결되었던바 기독교 안에 이세벨이 들어와 생업에 몰락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여 이방인의 생활 풍습을 받는다고 하여 우리 신앙에 무엇이 해로울 것이 있느냐고 주장하여 교회와 세상과 실무적 타협을 하여야 한다고 열을 올렸던 것입니다. 이세벨은 자기 자신의 사업에 수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교회의 규범을 다 버리도록 운동을 한 것입니다. 이세벨은 구약의 아합 왕의 왕비이며 바알신의 보호자인 이세벨도 있으나 본문은 초대 교회 이단자 이세벨을 말합니다. 또한 이세벨은 성도들로 하여금 행음케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키지 못함을 간음이라고 표현합니다. 렘 3:20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라” 하였으며, 고후 11장, 엡 5장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라” 하였습니다. 구약의 신 31장에 “알지 못하는 신을 따라 감은 음란한 것 이라” 하였으며, 신약에 마 13:39, 막 8:38에 불성실한 세대를 가리 켜 “악하고 음란한 세대 ”라 하였습니다. 이방인에게 타협, 경배하는 신앙은 하나님 앞에 간음 죄가 되는 것이요, 계 2:22, 23에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란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 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는 정반대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단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처음 사랑을 잃었고, 두아디라 교회는 신앙과 사랑에 있어서는 열심이었으나 정통 교리에 있어서는 두려운 이단을 허용하여 교회를 어지럽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에베소 교회처럼 이단을 허용치 않음을 배우고 두아디라 교회처럼 사랑과 뜨거운 신앙을 배워야 할 것업니다.

3. 약 속 26-28절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하였습니다.

(1) 시 2:8,9에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는 메시야 임재를 약속하시었고, 과거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선교사들이 고생을 하면서도 이 말씀으로 위로를 받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주의 일에 수고하는 종들에게 주신 사랑의 약속입니다.

(2) 또한 “새벽 별을 주리라” 하셨습니다. 단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을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하였습니다. 계 22:16, 주님은 “나는 다윗의 뿌리요, 광명한 새벽 별 ”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새벽 별을 주겠다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말 4:2, 주님 재림시 먼저 새벽 별이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는 경건함으로 우리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롬 13:11-14에, 1) 경성할 것, 즉 주님 재림의 연월일시를 알지 못하니 경성하여야 할 것이요 2) 암흑의 일을 벗어버려야 할 것이요 3) 광명한 잠옷을 입어야 할 것이며 4) 낮에 행함 같이 단정할 것이며 5) 그리스도를 옷입듯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새벽 별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사모하는 성도들이여! 경성하여 암흑한 일을 버리고 광명한 갑옷을 입고 단정히 걸으며, 그리스도를 옷입듯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끝으로 계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 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음소서.”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