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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멘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계 03: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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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 14절에 주님께서 자신을 표현한 말씀 가운데서 “아멘 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본문 「아멘」은 진실하다는 뜻으로 원어에는 「오 아멘」 이라고 진실 자체라는 명사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아멘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겠습니다. 사람들은 기독교를 영생의 종교, 생명의 종교, 아멘의 종교라고 말하는데 아멘은 첫째 자신의 진술을 확증 할 때 (왕상 1:16), 둘째 서약을 허락할 때 (민 5:22), 셋째 설교와 기도에 동의의 뜻으로 내 신앙고백의 응답으로(고전 14:16) 강조할 때 아멘. 아멘 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서에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는 말이 25 회나 기록되었는데 원어에 “아멘, 아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 했습니다. 여기 진실이라는 뜻을 아멘으로 표현했습니다. 이같이 신자의 생활과 아멘은 끊을 수 없는 큰 관계로 놓여 있습니다. 여기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서로 양상이 다릅니다. 첫째, 에베소 교회는 사랑이 결핍한 교회이기 때문에 주께서 장중에 붙잡아 일곱 교회와 일곱 교회 사자를 붙들어 주시는 주께서 에베소 교회 가 운데 다니시는 사랑의 주님으로 나타나시었습니다. 둘째, 서머나 교회는 순교자를 많이 낸 교회이므로 부활의 소망이신 부 활의 주님으로 나타나시었습니다. 세째, 버가모 교회는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교회이므로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을 가지신 말씀의 주님으로 나타나시었습니다. 네째, 두아디라 교회는 심판을 받아야 할 교회이므로 불꽃같은 눈과 빛나는 주석의 발을 가지신 심판의 주로 나타나시었습니다. 다섯째, 사데 교회는 살았다는 이름뿐이요, 실상은 죽은 상태에 있는 교회이므로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여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로 나타나시었습니다. 여섯째, 빌라델비아 교회는 믿음, 구원의 확신에 서야 할 교회이기에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 나타났습니다. 끝으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진실이 있어야 하였고, 아멘이 있어야 할 교회이기 때문에 아멘이 한 번이 아니요, 거듭 거듭 아멘의 주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이 아멘의 종교를 믿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 아멘을 상실하였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덥지도 차지도 않은 그 신앙의 원인은 진실 되지 못한 신앙 때문이요, 아멘이 없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갚을 수 없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요, 내 생 전체를 희생의 제물로 바친다고 할찌라도 오히려 부족한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미지근함이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1. 하나님은 아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 65:16에 “아멘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 하는 자는 하나님으로 맹세하라”고 했으며, 고후 1:20에 하나님의 약속은 예만 있고 아니오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멘, 곧 진실하사 모든 약속을 다 이루십니다. 100세 된 아브라함이 약속대로 이삭을 낳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손 에게 주기로 약속한 가나안 땅을 500년 후에 그 자손에게 주었으며, 노아를 통해서 예언하신대로 120년 후에 홍수의 심판이 있었으며,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한대로 나라 없이 유리방황한 이스라엘 민족이 되지 않았읍니까? 주님의 예언, 무화과나무가 다시 잎이 연하여지면 여름이 가까웠다고 예언하신 말씀대로 말세를 당한 이 때, 이스라엘의 독립은 아랍국가간의 중동 전쟁에서 심각한 힘의 대결로 이스라엘이 독립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다 선지자를 통한 예언의 성취요, 또 나아가 아브라함에 게 약속한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한 말씀의 성취입니다.

2. 예수님은 아멘이십니다 예수의 탄생, 생애, 고난, 부활, 승천이 아멘이시었으며 재림도 아멘이 십니다. 마 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의 말씀대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천지는 변해도 예수님의 말씀은 변치 않습니다.

3. 우리 자신이 아멘이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제일 되는 보배는 진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아멘이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자기 자신의 인식이 잘못되었습니다. 저들은 가난하면서도 스스로 부한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눈이 멀었는데도 잘 보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벌거벗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들은 그 진실성을 잃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교만하였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기 부족이 없다는 교만에 빠졌습니다. 스스로 부한 줄 알고 부족한 줄 모르는 자, 스스로 눈이 밝은 줄 아는 자, 스스로 의로운 줄 아는 자들은 모두가 자기를 잃은 진실을 떠난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자리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참 주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있는 줄 알고, 스스로 된 줄 알 고, 스스로 부한 줄 아는 자가 아니요, 자기 자신의 영적인 그 빈곤과 그 가련한 것과 그 눈 먼 실상을 발견한 자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상담을 하거나 가정 방문을 하게 될 때 “저는 부족합니다. 죄가 많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이들을 봅니다. 그때 저는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 부족한 가운데서 주님을 따라 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부족한 종인 줄 아는 것은 감사한 일이요, 부족을 아는 데서 신앙은 성장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참 주님을 만난 자는 자기의 부족을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 뵈었을 때 “저는 죄인이로소이다”라 하였고, 삭 개오가 주님을 만났을 때 “뉘 것이나 남의 것을 토색한 것에 대하여 네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자요 입술이 부정한 자”임을 발견했으며,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수절하고 있는 과부로 보였습니다만 주님을 만났을 때 자기의 진상이 드러나 죄인 됨을 고백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구에게 있어서도 주님을 만나야 참 자신, 아멘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할 때 그는 진실에서 떠난 자요, 아멘이 없는 가련한 자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자는 주님을 영접하는 자요, 주님을 만나는 자는 그 운명의 변화가 일어나는 자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사랑의 권면이 있습니다. 첫째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시련에서도 넘어지지 않는 시련을 통해 연단된 신앙을 의미합니다. 둘째로, 흰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우라 하셨습니다. 자기 의로 가리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수치를 가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째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안약은 성령의 역사를 말하며 영의 눈이 뜨여지게 하는 영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적 세례에 관한 것은 성령의 감화하시는 역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멘이 되어야 하겠고 이웃에 대하여 아멘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일본 동경 제대 모 교수가 독일 베를린 대학 세미나에서 학술을 발표하고 동경에 돌아왔는데 일주일 후에 독일 그 대학에서 소포가 왔습니다. 받아보니 자기의 만년필이었습니다. 독일 대학생들이 사인을 해 달라고 해서 사인하고 만년필을 학생에게 맡기고 그냥 잊어버리고 돌아 온 것인데 그 만년필을 받은 학생은 이 만년필을 가지면 나라의 신용을 손상시킬까봐 이 만년필을 우체국에 부치고 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생명과 바꾼 만년필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의 짧은 글과 함께 만년필의 소포가 온 것입니다. 독일 대학생 은 신용이란 현실 위에 생을 바친 것입니다. 마 13장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아서 너무 비싸기 때문에 자기의 것을 몽땅 팔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 비싼 값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얻기 위해 자기 것을 다 팔았느냐 하는 것만이 문제입니다. 자기의 것을 다 팔아야 살 수 있는 것이 천국 보화입니다. 금보다 귀한 신앙, 주님의 보혈로 씻은 흰 옷, 성령의 역사로 눈 뜨미 는 성령의 안약은 자기의 소유, 자기의 모든 것을 몽땅 팔아가지고 얻을 수 있는 보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려는 자에게는 먼저 자기 것을 처분 하여야 하는 자기 부정이 요청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을 깍는, 자기 부정이 없이는 참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멘 의 하나님, 아멘의 예수, 아멘의 성령님을 소유하며, 그 뜻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의 약속, 불변의 허락이십니다. 우리가 아멘하여 그리스도의 아멘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놀라운 영광 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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