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계 03:19-20)

첨부 1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태도에서 죄인을 사랑하시고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구원성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심령이 혼미하여져서 자기가 어떤 위치에 처하였는가를 종종 잊어버리고 예수님께서 만민을 불쌍히 여기시며 부단히 노력하시므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사랑을 잘 알지 못하는 때가 적지 않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 중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1. 문은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께서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신다는 이 문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권위와 신자 사이에 관계된 문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구원의 문이 있으니 이것은 요 10:9에 의하면 예수 자신이 문 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 꼴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의 유일한 문입니다. 바울도, 성 어거스틴도 다 이 문을 통하여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천주교에서 이 문은 마리아의 문을 통과해야 하고, 교황의 문을 통해야 한다고 하나, 마리아도 교황도 이 문을 통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행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2) 신앙의 문, 회개의 문이니 인간의 심령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여 인간의 심령의 문이 열려 있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신령한 교제가 자유로 왔습니다. 그러나 범죄 한 인간에게는 영교의 심령 문이 닫혀져 있으므로 예수님은 이 문을 두드리십니 다.

2. 문이 닫혀진 이유

(1) 범죄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무소불능이십니다. 그러나 범죄 한 심령으로는 교제할 수 없습니다. 태산이나 심해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막을 수 없으되 인간이 범한 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막 습니다. 본래 인간의 심령에는 하나님을 알만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롬 1:19 말씀처럼 일반 계시를 통하여, 그러나 범죄 후 사람의 마음이 우둔 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피조물을 조물주처럼 숭배하게 되어 각종 미신과 종교가 일어난 것입니다. 범죄는 인간을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합니다. 원수 된 사이에는 친밀한 교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심령이 어두워서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죄악상을 절실히 느끼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고통의 심회는 십자가에서 한때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가 끊어질 때 견딜 수 없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쳤습니다. 교제의 문이 닫혀 진다는 것은 실로 뼈아픈 일입니다. 여행객이 괴로운 여로에서 심신이 피로하여지도록 여행하여 해가 저물고, 흑암의 장막이 땅을 덮을 때 목적하고 온 집에 사람이 없든지, 흑 어떤 이유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할 때의 그 심정은 심히 쓸쓸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병들어 죽어갈 때, 그 아들을 품에 안고 애타게 부르는 어머니의 소리를 듣는 듯, 못 듣는 듯 대답이 없는 그때 그 애절한 심정이 어떠하겠읍니까? 사랑하는 이가 자기의 마음을 몰라주고, 만나기를 거절하고, 의사소통의 길이 막혔을 때 그 슬픔이 어떠하겠습니까? 그것은,

(2) 회개치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회개로부터 시작합니다. 기독교는 범죄 여하의 어떠함을 추궁하는 세상 법정과 같은 종교가 아니라, 회개 여하를 추궁하는 종교입니다. 회개는 단순한 도덕적 개념이나 개과천선의 생활 개선이 아닙니다. 그러한 개선은 기독교 외에 얼마든지 있으니 이는 진심으로 하는 회개가 아닙니다. 세상에 나쁜 일로 방탕하다 새 사람 되어 선한 사람되는 예가 얼마나 많이 있읍니까? 그러나 그들이 비록 선한 사람이 되었다고는 하나 그들은 모두 죄와 더불어 죽어 갔습니다. 왜냐하면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회개는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자기 감 정, 자기중심, 인간 중심에서 예수 중심의 생활로 변화를 받을 때 회개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회개를 막는 요소가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1) 그것은 외식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외식 때문에 회개가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계 3:IT에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하도다”라 했는데 그 외식은 주로 대인 관계에서 가지는 범죄입니다. 외식은 이중 생활, 간사한 생활을 내놓게 됩니다. 2) 차지도 덥지도 않은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결단성, 지속성이 없는 성품을 말합니다. 결단성, 지속성이 없으면 결실을 못 봅니다. 결단성이 없으면 기회주의, 무관심주의로 흐릅니다. 왕 상 18:21에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였으나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약 1:6-8에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진리와 함께 움직이기를 작정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진리를 외치고 듣는 자는 많으나 진리를 따라 행동에 나서는 자는 적습니다.

3.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 문을 두드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오래 참는 사랑을 표시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그릇된 교회였습니다. 다른 여섯 교회 가운데 서머나와 빌라델비아의 두 교회는 칭찬만 받았으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만 받은 교회입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찾아 오셔서 권면하시며, 책망하시는 것은 죄인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범죄 한 것은 불행한 일이나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셔 서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도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그릇된 자리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의 마음 은 단순하지 못합니다. 선조들의 단순한 신앙에 비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진실을 쓸고 표리부동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도 문 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는 바로 일제시대 에서 광복의 8.15와 공산 침략의

6.25 등을 통한 은혜의 하나님이시면서 개인의 여러 어려웠던 문제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우리 위해 오래 참으사 사랑으로 기다리시어 문을 두드리신 결과입니다.

(2) 재림을 표시합니다. 문을 두드리시는 것은 점차적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시는 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문을 두드리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다음 장차 하나님의 잔치가 시작될 준비로써 두드리십니다. 즉 성경에 천국 잔치에 비유한 여러 곳이 있습니다. 마 26:29 최후의 만찬석에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을 마실 때까지 마시지 않겠다” 하였으며, 마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서 혼인잔치를 말씀하셨으며, 눅 12:36에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주인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 주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4. 주님의 권고는 인간에게 축복입니다 왕상 19 ; 1-8에 엘리야가 로뎀 나무 아래 쓰러져 있을 때 하나님의 권 고로 엘리야는 재기하였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폭풍 속에서 죽음의 공포 에 떨고 있을 때 제자들에게 찾아 가서, 마 14:27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었으며, 상여 속에서 공동묘지로 향하던 과부의 독자 시체에 예수님께서 앞에 서시고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니 청년은 살아나고 통곡하던 과부의 눈물이 변하여 기쁨과 행복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권고는 새 삶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됩니다. 이 축복이 우리 교우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