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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 믿음, 구원 (계 0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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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우리 주님께서 소아시아 여러 교회 가운데서 특별히 라오디게아 교회에 편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여기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 책망 한 몇 가지의 말씀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그들의 신앙이 차지도 덥지도 아니하고 미지근하다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또 그 다음에 하신 말씀으로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우리는 부요해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만 주님께서 들여다 보실 때는 헐벗고 굶주리고 참혹한 형편에 있는 상태였으니 책망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한 권면이 있습니다. 열심으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20절 에 이와 같이 간절히 권면한 것을 볼 때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은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실상은 예수를 자기 문 밖에 세워 두기만 한 것을 우리 가 알 수 있습니다. 엘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렇게 기록한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은혜로 인해서,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은혜, 믿음, 그 다음에 구원이 옵니다.

1. 먼저 여기에 세 마디가 있는데 첫번 말씀은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라 했습니다 여기 문은 인간의 마음 문을 가리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 문 밖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 인간의 마음 문을 두드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 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그 하나님, 전능하신 그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가까이 오셔서 인간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 곧 축복인 것 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세상에 있는 모든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여러 가지 있지만은 특별히 이 점이 다릅니다. 세상의 모든 다른 종교는 사람이 신(神)을 찾으려 애쓰는 종교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신(神)을 바로 찾아서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그것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 것이 기독교 이외 모든 종교의 특색입니다. 그리하여 묵상을 통해서 흑은 고행 생활을 통해서 신(神)을 찾을 수 있다고, 혹은 독경, 경전을 읽음으로 신(神) 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사람이 신(神)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이 세상 종교의 특색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세상 종교는 자기 자신을 구원키 위하여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와는 반대입니다. 그런 진리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인간 죄악 가운데에서 인간을 구원해 주십니다. 사람이 자기를 스스로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우리 인간을 찾으시고 우리 마음을 두드리신다는 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모든 성경이 이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창 3장에 「아담」,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이후 하나님이 무서 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숨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서 에덴동산에 찾아 오셔서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찾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담을 다시 찾으셨습니다. 이 진리는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을 찾으시고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네 친척과 고향을 떠나서 내가 장차 보일 나라로 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찾으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를 불러 리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큰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죄악에서 구원하려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세계 만민의 죄를 구속하셨습니다. 성경 눅 1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잃은 양을 찾는 비유, 여 자가 잃은 은전을 찾는 비유, 아버지가 탕자를 환영하는 비유입니다. 잃은 양이 목자를 찾은 것이 아닙니다. 목자가 아흔 아홉 마리 양을 집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산과 들을 헤매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잃은 죄인을 찾으시는 모습입니다. 잃어버린 은전이 여자를 찾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잃은 은전을 찾기 위해 불을 켜서 방을 쓸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인을 찾으려고 애쓰시는 모습입니다. 탕자가 다시 멀리서 찾아 오는 것을 보시고 아버지는 버선 발로 뛰어 나가서 탕자를 영접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인을 영접하시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옛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그러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면으로 우리를 찾으십니다. 양심을 통해서, 이성을 통 해서, 친구를 통해서, 부흥회를 통해서, 질병을 통해서, 슬픔을 통해서, 혹은 실패와 성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감화시키시며 구원하시기를 애쓰십니다.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야 하겠다고 해서 믿음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벌써 우리 마음 속에 오셔서 우리 마음을 감동시켜서 우리 마음 가운데에 예수님께서 믿음의 마음이 일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무슨 공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서 오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 주십니다.

2. 다음에 하신 말씀은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이성을 통해서, 양심을 통해서 주님 음성을 들으면 우리로서 한 가지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물론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께서 억지로 문을 열면 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억지로 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기계적인 인간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인격이 있다는 말은 자유 의지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기계는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인격을 가진 자유 의지가 있는 존 재입니다. 그러나 이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여는 것은 나의 할 일입니다. 이 문을 여는 것을 성경의 말씀으로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속에서 문을 열고 주를 영접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요, 이것이 곧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대한 인간의 “예” 라고 하는 믿음입니다. “예 ”라고 대답하고 문을 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맡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 ”라는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예 ”라는 대답과 마음 문을 열어 놓고 하나님을 영접하여 나의 의지를 영원히 그 앞에 항복하고 그의 뜻대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에 모시고 영접하게 된다면 자연히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귀한 손님을 영접할 때 우리의 방을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삭개오가 주님을 영접할 때 그 심령의 죄를 다 고백했습니다.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마음 속에 영접 할 때에 그 속에 있던 일곱 귀신이 나갔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죄악이 다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하여 영원한 “예 ”라는 대답을 하고 주님을 내 마음 속에 영접한다고 하는 것은 죄를 회개한다는 의미입니다. 회개와 믿음은 이와 같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나의 믿음의 대답이 있을 때에 오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문을 열라,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 얻은 생활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구원을 얻은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온전히 우리 마음 가운데에 영접해서 예수님과 매일 매일 같이 사는 것, 같이 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최후로 하신 말씀 “세상 끝까지 너 회와 항상 함께 하리라” 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의 역사, 하나님이 함께 하 시는 생을 같이 하겠다 하셨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이같이 주님과 같이 있으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마지막에 승천을 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 리 하나 하나가 참된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얻은 생활은 무엇을 하든지 나 혼자 하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하는 생활입니다. 참으로 구원을 얻은 자는 걸어가도 하나님과 함께 걷고, 살림을 해도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장사를 해도 하나님과 같이 합니다. 구원 얻은 사람은, 즉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동 거 동사합니다. 몇 달 전 어떤 분이 공장을 차렸는데 “나의 이 공장이 잘 돌아가는 중인데 아예 여기서 나오는 것은 온전히 십일조를 내놓고 전도를 하려고 합니다.”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동거하는 신앙 생활이 있어야 축복받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그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잔치를 의미합니다. 사실 구원을 받아서 주님을 마음 가운데에 영접하고 사는 사람은 매일 매일의 심령 상태가 곧 연회(잔치)를 하는 사람의 형편과 같다고 하는 말입니다. 항상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이 충만하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시 편 23편에 “원수 앞에서도 상을 베푸시니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항상 즐거워하라 주 안에서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를 영접해서 주와 동거 동락하는 생활은 언제든지 잔치를 베푼 생활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먼저 은혜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으로 주를 영접하여 야 합니다. 주를 영접해서 우리 마음 가운데에 주를 모시고 동거하며 동 행하며 동락하는 것이 참된 신앙 생활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온다고 다 주님을 모시는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닌 줄 믿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나 그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주를 문 밖에 세워둔 사람들이 맡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마음 가운데에 주님을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예”라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모든 성도들이 다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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