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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린 하늘에 보이는 하나님 (계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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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2장과 3장에서는 사도 요한에게 지상의 교회를 보여 주신 후 4장부터는 하늘의 보좌를 열어 보이셨습니다.

1. 하늘의 문을 여시는 분 계 4:1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라고 기록 했습니다. 문이란 들어가는 길이요, 출입의 허락과 금지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하늘에 열린 문이란 하늘과 땅 사이를 막고 있는 것들을 제하고 하늘의 보좌를 공개하사 하늘나라의 비밀과 진리를 보고 깨닫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이 문이 이미 열렸다고 하였습니다. 이 문을 연 사람은 누구이겠읍니까? 사도 요한은 이 문이 열려 있는 것 을 보았고 거기서 하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요 1:51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주님께서는 하늘 문이 열릴 것을 이미 약속했습니다. 계 3:8,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그리고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하였습니다. 닫혔던 하늘 문을 여시며 하늘 보좌를 볼 수 있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의 비밀, 하늘에 감추인 지식,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 영생을 인도하는 분은 우리 주님 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이 이미 하늘나라의 공개요, 그가 부활하사 하늘에 오르심은 그가 하늘의 문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문이 열려 있을 동 안은 누구나 원하는 자는 들어갈 수 있으나 하늘의 문이 닫힌 때는 들어가 지 못하나니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마 25:10-12에 “미련한 다섯 처녀가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2. “내가 들은바 나팔소리 같은 음성이 가로되 ” (성령 감화로 하 늘 보좌를 보리라) 1절 계속으로 “나팔소리 같은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였습니다. 2절에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하신 말씀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이 하늘 보좌를 본 것은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본 것이 아니라 밧모섬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은 성령의 감동 없이 볼 수 없고 성령으로 감동된 복 있는 눈이 볼 수 있으며, 복 있는 귀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를 보기 원하는 자는 부패한 일에서 떠나 하나님과 온전히 사귀며 하나님을 볼 수 없게 하는 소란에서 떠나고 영적인 세계를 장애하는 육적인 매임에서 자유 얻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상태가 필요한 것입니다.

3. 보이는 것

(1) 영광의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2,3절,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1)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은 심판주 하나님이십니다. 보좌는 권세, 왕좌, 옥좌, 주권이라는 뜻입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보좌 의 원 뜻은 만왕의 왕으로서, 심판주로서의 보좌입니다. 5절 말씀에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라 하여 권위의 보좌로 표현하였습니다. 번쩍 번쩍하는 번개, 천지가 다 떨리는 우뢰는 하나님의 심판의 상징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무서운 천둥 소리가 나면 몸의 자세를 바르게 하며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며 벼락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뇌성과 번개와 음성이 온 우주에 쏟아져 나을 때 떨지 않고 낭패를 당하지 않을 자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자비의 보좌인 동시에 심판의 보좌입니다. 죄인의 구원을 위한 사랑과 용서가 있는 보좌에는 하나님의 질서와 인간의 행복을 수호하기 위한 심판이 있습니다. 합 3장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는 사랑의 완성을 위한 심판이 따르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다고 표현했습니다. 2) 거룩한 하나님으로서, 3절에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라 했습니다. 벽옥은 투명한 보석입니다. 이것을 통해 햇빛이 지나가면 여러 가지 강한 빛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 보석에 비유한 것은 순결하고 완전하고 거룩한 것을 나타냄입니다. 계 21:11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자더라” 하였는데 하나님의 거룩성은 죄인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나 그 거룩하신 보좌에 앉아 계실 수 있는 분이 곧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 길 외에는 거룩하신 보좌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3) 진노의 하나님으로서, 3절에 “하나님의 모양이 홍보석 같더라.” 홍보석은 피와 같이 붉습니다. 홍보석 같다는 말씀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주님의 거룩성을 파괴하는 자를 하나도 남김없이 심판하십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불같습니다. 4) 자비하신 하나님의 모습으로써, 3절에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했는데 무지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언약한 상징입니다(창 9:13). 무지개가 보좌에 둘렸다는 말은 그의 보좌는 자비와 은혜와 사랑의 보좌라는 말씀입니다. 녹보석은 순애와 행복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심판주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진노의 하나님인 동시에 자비와 사랑과 은혜로 둘러싸인 풍성하신 은혜의 하나님인 것을 말씀합니다.

(2) 영광의 교회를 볼 수 있었습니다. 4절,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산고 앉았더라.” 보좌들 위에 앉은 이십 사 장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모시는 천사 장, 또는 구약의 열두 지파 대표와 신약의 열두 사도들을 의미한 온 성도 의 대표, 온 세계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1) 그들이 있는 곳 이십 사 장로들도 여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합니다. 마 19:27에 “베드로가 대답하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좆았사오니 그런 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했습니다. 이십 사 장로는 성도의 대표자로 영광의 권세자인 동시에 심판자와 함께 심판의 배심원과 같은 자리에 있는 자입니다. 2) 그들의 모양 4절에 “흰 옷을 입었으니 ”라 하였으니 주께서 주시는 의의 옷, 하나님 나라 예복을 입은 자로써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썼다고 했습니다. 금 면류관은 계 2:10의 말씀대로 승리하는 자에게 주는 면류관입니다. 벧전 2:9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라 하여 하나님께서 택한 자만이 쓰는 금 면류관입니다. 교회는 드디어 왕과 제사 장이 되어 승리자의 금면류관을 쓰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결 론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서 교회와 함께 이 세상을 심판할 것이요, 이 능력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될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장한 미래 교회의 상속자가 될 수 있도록 깨어 근신하라고 주님은 부탁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잃지 않으려고 그 말씀을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승리하시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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