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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인생의 다음장은 (계 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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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에는 일곱 인의 재앙,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 대접의 재앙이 있어서 일곱 번씩 세 차례 반복되고 있습니다. 7은 완전 수요 3도 완전 수 이므로 이렇게 심판이 빈틈없이 완전하게 수행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심판의 완전한 수행이란 다만 그 범위, 내용 및 정도에서 완전한 것 뿐만 아니라 그 수행의 방법에도 또한 완전함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주의할 것은 심판이 반복되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 나님은 일제히 인류의 역사를 종식시키지 않고 몇 번이나 심판을 반복하면서 역사를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이해에 따라 경륜하시며 또 믿는 자의 신앙을 더 한층 깊고 굳세게 하시려 함이요, 다시 완악한 자의 마음에 대하여는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하며 또한 그렇지 않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발생하는 사건으로 봐서 역사는 항상 새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 사의 원리에는 새로운 것이 없고 동일한 원리가 각각 다른 사건을 통하여 진행되는 것입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은 개개의 사건으로 모 두가 새로운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표현되는 심판의 원리는 동일합니다. 이렇게 동일한 원리는 반복되면서 인류의 역사는 지상에서의 하나님 나 라 성려라는 종국 목적을 향하여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관(史觀)을 해석하지 않을 때 인류의 역사는 실망을 안 겨다 주지만 신앙의 안목으로 볼 때 이 역사 진행의 상태, 그 자체 안에 하나님의 지혜와 긍휼과 정의와 희망과 감사를 더욱 깊게 해줍니다. 본문 1절에서 일곱째 인봉을 열었을 때 약 반시간 동안 하늘에는 침묵이 있었다고 기록하였는데 “반시간” 동안이란 한 시간의 반으로써 극히 짧은 시간을 말합니다. 일곱째 인봉과 일곱 나팔의 사이에 반시간이란 침묵의 시간이 있었던 것 은 일편의 심판이 끝나고 다른 일편의 심판이 개시되는 중간으로써 단기간의 정지가 있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본래 긴 전쟁과 긴 전쟁 중간에 짧은 평화의 기간이 끼어지면서 진행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짧은 평화의 기간이 하늘에 침묵이 있었던 반시간 동안인 것입니다. 일곱째 인의 개봉이 일곱 나팔의 재앙을 끌어 낸 것으로 그 자체에는 아무런 내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일곱째 나팔 즉 계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 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또 일곱째 대접, 즉 계 16:17에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각 그 일련의 재앙에 절정의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일곱째 인봉의 내용이 없는 것도 아니요, 또 그의 심판이 가벼운 것도 아닙니다. 일곱 나팔의 기점이 되는 것, 그 자체가 일곱째 인의 내용으로써 겨우 반시간 동안의 기간에서 격렬한 심판의 과정이 재개되는 그 자체가 그 내용의 심각함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마치 제 1차 대전이 제 2차 대전을 낳았고 제 2차 세계 대전이 제 3차 세계 대전을 잉태하는 것처럼 재앙은 인류를 계속 때리고 있습니다. 그런 데 하나님은 그 사이에 침묵의 고요한 반시간을 끼워 인간들로 하여금 숨 을 돌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반시간 동안 사람들을 쉬게 합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잠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과 자각과 회개를 촉구하는 시간입니다. 주어진 반시간 동안이란 지극히 귀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지극히 짧은 것입니다. 신자는 이 주어진 기회를 허송하지 말고 힘써 땀흘리며 복음을 선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는 것을 게을리한 자는 이 기회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봉사 하지 않고 전도하지 않은 자는 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진실로 이 반시간 동안이란 심판의 중간에 삽입된 은혜의 기간이요, 긍휼함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중에서 인류의 역사가 보다 빨리 그 종국에 도달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지상에 실현되는 날을 대망하여 온 성도들은 새롭게 일련의 심판 의 과정이 개시되어 희망의 성취가 미래로 미루어짐을 보고 더욱 인내를 거듭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저들은 큰 소리로 계 6:10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시지 않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의 기도를 반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곱 나팔의 개시에 앞서서 금향로의 환상이 계시된 것은 이들 성도들을 위한 격려의 뜻입니다. 향로에 넘치는 많은 향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또한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다고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성령의 기도라고 함이 적당할 것입니다. 성령의 기도가 성도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으로 올라갈 때 이 성도들의 기도는 응답이 되어 그 결과로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불을 가득히 채워 땅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천둥과 요란한 소리와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눅 12:49-51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성도를 위하여 예수의 기도는 하늘에 올라가고 심판을 위하여 예수의 심판의 불은 땅에 쏟아집니다. 눅 3:16-17에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고 타 작 마당을 깨끗이 하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울 것이라고 세례 요한은 말하였습니다. 여기에 성도의 안심이 있고 세상의 전율이 있습니다. 하늘이 침묵하는 반시간 동안에 회개치 않은 자에 대하여 지금 막 일곱 천사는 심판의 나팔을 불 준비를 갖춘 것입니다. 일곱 나팔은 일곱 인과 똑같이 처음의 4와 나중의 3의 2부로 나누어 전자는 자연계에 대한 타격이요, 후자는 직접 인간 사회에 관한 심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재앙이 땅과 바다와 강과 천체의 1/3에 그쳤다는 것은 네 번째의 인에 의한 사망이 땅의 1/4을 지배한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극한 상태로 압축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회개를 위해 아직 여지를 남기심을 암시합니다. 계 6:8에 “네째 인을 떼실 때에 ‥‥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고 했습니다. 심판의 3/4 여지를 남기심은 심판 중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성서가 예언하는 붉은 용을 경계해야 합니다. 붉은 용은 공산주의를 말하며, 또한 검은 용도 경계해야 하는데 검은 용은 자본주의를 말 합니다. 우리는 민주를 옹호하되 자유와 방종을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나라가 정치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크게 요청되는 것은 니느웨 성의 상하 국민의 회개,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은 국제적으로 무슨 놀라운 사건이 펼쳐질 것만 같은 꼭 시한 폭탄의 한계점에 직면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삶, 내일의 역사가 펼쳐질 장은 승리의 장입니까? 실패 의 장입니까? 구원의 장입니까? 재앙의 장입니까? 국가적으로도 내일의 승리의 장, 우리 인생 삶에 있어서는 다음 인생은 구원과 승리의 장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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