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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 (계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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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절에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독수리의 외침인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의 선포대로 세 천사의 나팔 재앙은 말세의 경종으로 심한 환란을 가져 올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영혼은 환란 중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금을 연단하여 뜨거운 풀무불에 넣음은 정금을 얻기 위함이요, 금강석을 연단함은 금강석의 광채를 빛나게 함입니다. 행 14:22에서와 같이 천국 에 들어가려면 환란을 많이 겪어야 합니다.

1. 말세에 있을 환란 여섯째 천사의 나팔 재앙은 과거 어느 재앙보다 더욱 무서운 환란입니다. 이 무서운 환란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 즉 타락한 천사 적그리스도가 이 환란의 주동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재앙이었는지 연기를 올라오게 하여 해와 공기를 어둡게 하고 황충이 그 연기 가운데로부터 나와 전갈의 권세를 가지고 땅의 풀이나 수목과 온 성도들을 해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사자를 통하여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만 해하라고 하여 이 무서운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은 성 도의 생명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해와 공기는 모든 생명을 새롭게 하며 소생케 하는 것이므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연기가 올라와서 해와 공기와 같은 복음을 어둡게 한다는 말은 곧 연기가 복음을 흐리게 하고 비진리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어둡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흐리게 하는 것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언제든지 기독교 의 적입니다. 곡식 밭에 가라지와 곡식이 있듯이, 농부가 추수 때까지 두었다가 추수 때에 알곡은 곡간에, 가라지는 불에 사르듯이 주님 재림시에는 진리와 비진리를 가려낼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에 어떤 환란이 오더라도 우리는 주님 재림을 위하여 환란을 참으며 기도하며 기다릴 것입니다. 때가 이르매 우리 주님은 심판주로 오시어 악한 자와 의인을 산양과 면양 가르듯이 할 것입니다.

2. 사탄의 활동 제한 큰 풀무의 연기와 황충의 세력은 푸른 풀과 각종 수목과 성도의 영혼까지 다 해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사 각종 수목과 풀은 해하지 말 고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만 해하라 명하시매 그들은 사람들을 죽이지는 못하고 마치 전갈에게 쏘여서 괴로운 것처럼 다섯달 동안 괴롭게 하였습니다. 그때에는 사람이 죽기를 구하고 죽고 싶으나 오히려 죽음이 저희를 피하여 갔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주관에 있고 사탄의 역사도 하 나님의 허락 밑에서 움직입니다. 욥에 대하여 시험하는 사탄도 욥의 생명 을 빼앗고 싶었으나 하나님의 허락을 받지 못하였듯이 성도에게 어떠한 환란과 고통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성도의 생명은 결코 빼앗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문제는 당하는 환란과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진리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가 알아 보아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복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3. 인 맞지 않은 자의 고통 그러나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에게는 사탄의 활동은 제한받지 아니 하고 사탄의 종으로서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1) 어두움의 고통 우리는 어둠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다는 것을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탄광에 깊이 들어간 광부가 머리에 찬 플래쉬(전등)가 전지약(밧데리)이 떨어졌을 때 예비적인 전지약을 준비 못하였다면 그는 어둠에서 헤매면서 나올 수가 없음을 깨달아 사람 살리라는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겠읍니까! 결국 그 어둠 속에서 나오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다행히 그 소리를 듣고 다른 광굴에 있던 동료들이 와서 구원 하여 줌으로 구원 얻는 예가 흔히 있습니다. 1) 어두운 가운데서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 얻지 못한 자를 가리켜 마 22:13에서 “바깥 어둔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했습니다. 2) 어두운 가운데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 9:4에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런 동작을 할 수 없으면 죽은거나 같습니다. 사람이 마귀로 말미암아 그 마음이 어두워지면 이렇게 괴롭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어둠 속에 살면 아무 소망도 없어지고 또한 참된 생명의 동작도 할 수 없으니 어두움의 고통은 죽음의 고통입니다.

(2) 죄악의 고통 죄악의 고통은 사람이 흔히 느끼지 못하는 고통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5절의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쓸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는 말씀대로 전갈의 독침이 쏘는 것 같이 쏘는 고통입니다. 고전 15:56에서 말하기를 “사망의 쏘는 것은 죄라”고 하였습니다. 죄악의 고통을 왜 “쏘는 것 ”이라고 일컬었겠읍니까? 그 이유는 죄는 불유쾌한 것으로 심령 속에 그 흔적을 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 51:3에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라고 한 말씀이 그 뜻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할 때마다 그 범한 죄악은 그의 양심을 찔러서 서지 못하게 합니다. 시 130:3에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찐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라고 한 말씀이 바로 그것을 가리킵니다.

(3) 죽어지지 않는 고통 지옥의 고통을 당하는 영혼은 없어지기를 원해도 그대로 죽어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한 지옥에서 꺼지지 않는 풀무보다 더 뜨거운 불덩이 속에 서 계속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죽음보다도 홍한 비애가 있으니 그것은 죄악의 고통입니다. 그처럼 저 세상에서는 죄 악의 고통의 결실로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이 영원한 지옥 불에서 고통을 당하니 이보다 더 슬프고 괴로운 일은 다시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 리 성도들은 죽음을 당하기까지라도 죄악을 피하여 그런 비애를 피하여만 하는 것입니다. 1) 히 12:4에 그들은 피 흘리기까지 죄를 대적하라고 하였으며, 2) 욥 13:15에 욥과 같이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찌라도 나는 그를 의지 하리라. 3) 베드로의 신앙처럼 “육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고 몸과 영을 죽이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는 그 신앙이 우리의 신앙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의 고통, 죄악의 고통, 죽어지지 않는 지옥의 고통 에서 하나님의 인 맞은 주님의 선택한 144,000명의 축복된 성도들을 구원하여 주실 것이며 세상 말세에 당한 환란 중에서도 마귀에게 인 맞은 자들의 영혼을 손상 입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여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하나님 은혜를 지키며 하나님의 종들로서 생활하시기에 합당한 여러분과 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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