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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카르네아데스의 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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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고대 희랍의 철학자 카르네아데스가 제자들에게 이런 문제를 던졌다. '배가 난파해서 사람들이 모두 바닷물 속에 빠졌다. 한 남자가 용케 물 위에 떠있는 판자에 매달려서 헤엄치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그 판자에 같이 매달리려 했다. 그러나 그 판자는 한 사람의 무게밖에 감당할 수 없었다. 이런 때 나중에 온 사람이 먼저 판자에 매달리고 있던 사람을 떠다밀고 자기가 판자에 올라타도 좋은가?'.

오늘의 법 이론으로 이 문제를 푼다면 나중에 판자에 매달리는 사람이 먼저 탄 사람을 판자 밖으로 떠밀어 죽게 하고 자기만 살아남는다 해도 형벌을 받지는 않는다. 이른바 '긴급피난'에 해당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란다. 반대로 먼저 사람이 살기 위해 나중에 판자에 올라타려는 사람을 떠밀어낸다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정당방위'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이 문제에는 법률적인 면만이 아니 라 윤리적인 면도 있다. 불교의 자비론에 의해 이 문제를 푼다면 이렇게 된다.

곧 먼저 판자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에게 판자를 양보 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게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다. 나중에 판자 에 매달리려던 사람도 자기가 판자를 붙잡으면 둘이 같이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자기가 포기하는 것도 부처의 뜻을 따르는 길이다. 그러나 현실론에 입각한다면 한 사람만이라도 살아남는 게 현명한 길이다. 또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남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한다는 것 은 실제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봉급생활자들이 볼 때 정부가 펴나가겠다는 국민보험제도란 카르네아 데스의 판자와도 같다. 그것은 퇴직 후의 험난한 바다에서 그나마 직장 인들이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구명대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매 달 꼬박꼬박 알량한 봉급에서 돈을 떼내는 것이다. 그런 구명대에 매달 릴 수 있는 권리는 자기가 번 만큼의 돈을 성실하게 물어나가는 사람들 만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권리를 자기네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버 는 변호사다 의사다 자영업자들이 자기네보다 돈을 덜 내고, 그리고도 카르네아데스의 판자에 똑같이 매달리게 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여 긴다.

정말로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를 필요로 하는 것은 쥐꼬리만큼이라도 상속증여세를 물 만한 재산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또 국민연금의 당 초의 목적도 그런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에 정부가 마련하겠다는 카르네아데스의 판자가 모든 사람을 다 태워도 까딱도 안할 만 큼 널찍하고 단단한 것이라면 또 모른다. 문제는 정부가 마련한다는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란 한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불안한 것이다.

카르네아데스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해답을 내렸었다. 판 자에 먼저 매달려 있는 사람이 그 선취득권을 포기한다는 것처럼 어리석 은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혹은 그 엉성한 판자가 두사람을 다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잖느냐고 요행을 믿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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