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주 안에서 죽는 자의 복(다섯째 환상) (계 14:13)

첨부 1


이 말씀은 가장 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꿀송이보다 더 달고 금보 다, 정금보다 더 고귀한 말씀입니다. 13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라는 참 이 말씀은 우리 머리 속에, 가슴 속에 기록해 둘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기록 하라.” 이 말씀이 우리 인생을 장엄하게 만들고 또 모든 허망한 것들에 미혹되는 데서 지켜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서운 사망에서 어두운 분묘 속을 광명으로 밝히고 초상집 에서 참된 소망과 승리를 우리에게 약속해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시간 우리 마음 속에 깊이 새겨 기억하십시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 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복 이 있도다.” 세상은 사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요? 이 세상은 감각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하나님은 사물을 그 본질로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은 산 강아지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죽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러면 잠시 생각해 볼만하지 않습니까? 하늘에서 나는 소리가 옳을까 요, 땅에서 나는 소리가 옳을까요? 하나님이 옳을까요, 세상이 옳을까요?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어느 말을 청종해야 옳겠읍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죽는 자가 복 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신령한 마음의 귀를 열어 하나님 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 믿는 자에게 복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다른게 아니라 “주 안에서 ”라고 제한을 한 것입니다.

1.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계 10:1의 음성은 힘센 천사의 소리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성취 와 심판을 선언한 그는 복음 때문에 악마의 손에서 죽음을 당한 자들이 복 이 있다 하시는 천사의 음성입니다. 이 복은 영원한 평화의 기쁨, 원기있는 생명의 안정으로 13장에 기록된 모든 박해와 고통을 참으면서 죽음으로 복음을 외친 자들에게 내릴 복입니다. 이런 복을 받을 자에게 선고하는 천사의 음성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2.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13절 상단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라고 했습니다. 계 1:11에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라”는 말씀이 있으니 계시록의 말씀 중에 특별히 고조되는 의미에서 기록하라는 천래(天來)의 명령이 붙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기록하라는 말은 무엇을 강조합니까? 그것은 그 말씀 내용의 불변성을 고조하는 동시에 신자들이 그 말씀을 굳게 불잡아야 할 것과 그것에 대하여 확신해야 할 것을 고조 하고 있습니다.

3. 자금 이후로 13절 중단에 “자금 이후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금 이후로”라는 말은 무슨 말이겠읍니까? 말세에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물론 그때 사람들과 비교할 때는 복이 있는 사람들이겠으나 말세 이전에도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고 순교자들이 많으니 “자금 이후로”라는 이 번역은 말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를 위한 전도 투쟁이 어려웠고 신자들은 예수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그때부터라고 해석함이 옳을 것으로 압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박해 받고 주님의 이름으로 죽은 자들이 복이 있고 하늘나라의 칭찬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4.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의 복 살전 4:14에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예수 안 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부활하리라.” 여 기서 “주 안엔서”라는 원어는(디아투) “예수로 말미암아”란 뜻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란 뜻은 곧 예수님께서 신자들을 평안히 세상을 뜨도록 도와 주심과 장차 부활에서는 깨워 주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을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다는 말은 마지 막 생명이 다할 때 그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로 융합된다는 뜻입니다. 지상의 행복은 죽을 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와 셀 수 없이 녹아 서 하나가 되고, 그들이 사랑의 주요 구주이신 그 분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게 하나가 되고자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복이 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에게는 어떤 복이 옵니까?

(1) 주 안에서 죽는 것은 소망있는 죽음입니다. 마 9:24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자는 죽음을 비애로 대하지 않고 부활 할 소망과 또는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는 소망으로 대합니다. 성도가 죽을 때 하나님께서 간섭하십니다. 스데반이 죽을 패 행 6:15에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하였으며, 행 7:55에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라고 하였습니다. 눅 12:20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 하신 말씀을 보면 분명히 사람이 별세할 때에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특수 간섭이 있음을 확증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별세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간섭하시며 처분하신다는 것은 저 스스로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를 옮겨 가신 것입니다. 히 11:5에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신 34:6, 유 1:9 하나님께서 모세의 시체를 간섭하여 감추신 것을 보아도 그 개인의 별세에 대하여 무관심하시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성도는 사후에 복된 세상에 들어갑니다. 13절 중반에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 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맹목적인 투쟁에서 여기 저기 헤매고 낭비하며 성취한 것 없이 차디찬 무덤에 던져집니다. 그래서 지구상의 탑은 사람들은 이 죽음 에 대해서 무서워 공포에 떱니다. 뭇솔리니 (2차 대전시 이태리 수상)는 사형 형장에 끌려가면셔 잠시 동안 머물러 달라고 세 번이나 애원을 했으며, 악귀 스탈린도 임종시에 두려워 떨며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그 영혼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확고한 신뢰와 보호 속에서 영원히 평안한 안식과 기쁜 생명 상태로 옮겨간 것입니다. 진리를 위한 생은 괴롭고 슬프고 힘이 들어 세상의 소득은 적을지 몰라도 절대로 무의미 하지 않은 생입니다. 그러한 자의 미래는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영혼이 푹 쉰다는 말은 세상의 수고, 가족에 대한 수고, 교회에 대한 수 고, 국가에 대한 육신적, 정신적 수고를 이제 하나님 나라에서 푹 쉬어 평안히 쉰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기서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쉰다는 말은 죄악으로 오는 세상의 고통과 근심에서 쉰다는 말입니다. 무거운 죄 짐으로 죄에 속박된 것에서 자유 얻어 쉼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마 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안식, 쉬리라는 말은 하나님 과 동행함으로 하나님과 한 몸이 될 때 오는 평화, 기쁨, 안식을 말합니다. 잠 14:32에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시 116:15에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사후에 들어가는 세계는 왜 행복된 세계입니까? 1) 하나님과 예수가 함께 거하실 처소이므로(계 3:4) 2) 의인들만 거하기 때문에 (히 12:22-24) 3) 천사돌이 영광 중에 성도를 수종들기 때문에 (히 12:1-5) 4) 생명수와 생명과가 있기 때문에 (딤후 4:8) 5) 우리 앞서간 친구를 만나볼 수 있으니 (눅 16; 19) 6) 그곳은 사랑이 충만한 곳이므로(고전 13:13) 7) 죄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계 21:27) 8) 그곳은 쉬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섬길 수 있기 때문에 (계 22:3) 우리 주님 모신 곳에 주님과 함께 하며 그를 붙들고 놓지 않을 그곳이 하늘나라, 사후의 우리가 사는 영생의 세계입니다.

(3) 헛되지 않은 삶 13절 하단에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이 행한 대로 상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수고스럽게 행한 업적이 영원히 남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침몰되는 조약돌 같고 행위도 인생이 침몰될 때 같이 없어진다고 하며 인생의 허무함을 탄식하지만 악에 항거하고 추하고 불의 한 것에 대항하며 주 안에서 행동한 인간의 품성은 영원한 언덕에서 헛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난 모든 행위가 지옥에서 불 탈 때 주 안에 있던 인간의 행위는 영원한 안정 속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루살이 같고 우 리의 영혼의 세계는 유령 같고 희망 없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소멸되지 않고 영구적인 우리 자신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것 입니다. 성도의 선한 행위는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으로 채울 것입니다. 구원은 선한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얻어지나니 우리의 행실이 구원 문제까지 관련된 것은 아닙니다. 구원 얻은 성도가 구원에다 상급까지 얻게 된다면 이에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읍니까? 믿고 선을 행함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의 선행이 그의 구원 공로는 못되나 내세에 반드시 상 받음의 영광 을 얻을 것입니다(졸업식 때 졸업장 외에 상장을 또 타는 사람이 있습니다. 졸업장은 누구나 탑니다. 거기에 우등상, 논문상, 개근상 등을 탑니다). 성경에는 행한대로 보상한다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전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마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했습니다(롬 2:6, 고전 3:13, 고후 5:10, 히 9:27을 참조).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