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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명한 새벽 별 (계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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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거니와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당했을 때 에 기록한 최종의 계시 문서입니다. 밧모섬은 둘레가 60km(150리)쫌 되 는 작은 섬입니다. 사도 요한이 유배 중에 기도하던 중 계시를 받았다고 전하는 계시의 동굴이 있으며 오늘날 그 자리에 성자 요한의 수도원이 세워져서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 듭니다. 유구한 역사적 유서를 간직한 에게해 바다를 끼고 있는 이 밧모섬을 순례하는 사람들은 망망한 바다에 접점이 떠 있는 수많은 작은 섬들이 저녁 황혼에 비취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신비스러운 주위의 경치에 그 옛날 사도 요한이 체험했던 신비경의 묵시를 명상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다가 서머나 교회를 창설하고 목회 중 도미시안 황제의 종교 탄압으로 밧모섬에 쫓겨났다가 계시록 1-2장에서 그가 진술한 대로 그가 친히 보았던 모든 신비경의 사실을 소상하게 기록했습니다. 그가 계시를 보았던 미래의 역사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계와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광명한 세계의 양면이었습니다. 일곱 교회와 일곱 촛대를 필두로 해서 일곱 나팔. 일곱 우뢰, 일곱 대접 등 일곱 수를 가지고 인류 역사의 암흑한 미래상을 예언한 본서의 기록은 이제 그 최후의 장면인 21장부터 22장에 와서 모든 재앙이 다 지나간 다음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질 신천지의 찬란한 역사를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읽어 나갈 패 많은 질병, 전란과 재난 속에서 일곱 천사 가 부는 나팔 소리, 일곱 대접을 쏟을 때의 우뢰 소리, 거기에 사탄을 쉽 쓸어 넣은 무저갱으로부터 치솟는 연기, 마치 폭풍이 지나간 언덕과도 같은 살풍경, 마치 전쟁이 지난 광야에서 화약 냄새를 맡는 것과 같은 장면 이 본서의 인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천상 세계와 지상 세계는 현격한 명암의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네 개 의 영물이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거룩을 찬양하고, 이십 사 장로와 천군 들이 천천만의 성도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국의 영광스러운 광경과는 대조적으로, 사탄의 세력이 아직도 권세를 잡고 있는 지상국가들과 인간 사회에는 전쟁과 자연의 재해가 겹겹이 인간 생활의 기반을 위협하는 암흑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상의 어두운 역사는 1장으로부터 장이 거듭될수록 심각의 도를 더해 오다가 20장에 와서는 최후의 심판인 불못에 던지우는 둘째 사 망으로 그 종장(終章)을 고하고 이제는 마치 폭풍우가 지난 다음 동녘 하늘에 무지개 다리가 찬란하게 장식되고 맑게 개인 하늘에 광명한 태양빛 이 풀잎에 얹힌 물방울을 찬란하게 반사시키는 것과 같이 모든 환란의 구름은 걷히우고 새 하늘과 새 땅의 호화로운 광경이 사도 요한에게 비취어 온 것입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의 과실이 달마다 열리고 다 시는 어두움과 밤이 없는 세상, 개들과 술객들이 없고 행음자와 살인자들 을 찾아볼 수 없고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의 자취도 찾아볼 수 없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세계. 그것이 사도 요한이 본 계시의 종결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한이 보았던 가장 중요한 계시의 내용은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신 예수님의 자아 소개입니다. 광명한 새벽별이란 예수님의 여러 가지 상징적인 명칭 중에 가장 인상적 인 이름입니다. 계 2:28 두아디라 교인에게 이세벨의 유혹에서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함께 새벽별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별에다 비유한 것은 퍽 흥미있는 표현입니다. 그 옛날 발람 선지가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중에 민 24:17에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고 했으며, 마 2:1에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별을 보고 알게 되어 그 별빛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찾아 갔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행사에는 언제나 별이 그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별은 존엄의 상징입니다 역사적으로 고찰할 때 모든 왕관에는 거의 예외없이 별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인생은 별을 권력이나 위력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각 국가의 국기에 별이 있습니다. 미국 성조기, 리베리아, 버마, 칠레, 이스라엘. 파나마, 이라, 브라질. 쿠바, 터키, 뉴질랜드. 유고슬라비아, 필리핀, 그 외 여러 나라에서 별을 표시합니다. 이 모든 것은 권력의 존엄을 상징 합니다. 군 계급에 장성을 별로 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국의 통치권을 장악하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고 했습니다. 우주 만물 가운데 최대의 존엄과 권력을 가지신 분이란 말씀입니다.

2. 별은 인생의 좌표입니다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이 날이 어두워지면 밤 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찾아 갑니다. 물론 현대 과학은 별이 없는 밤에도 방향을 알 수 있도록 모 든 선박에 나침판을 장치했지만 옛날에는 별이 아니면 배들이 그 길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의 좌표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몰라 수다 한 갈림길을 앞에 두고 혜매는 우리들의 영혼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가야 할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생활 가운데 가장 권태롭고 가장 불안한 것은 방향 감각을 상실한 생활입니다. 자기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생활처럼 불안한 생활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나는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우리 인생의 좌표를 되찾게 해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생의 방향과 목적의식이 분명한 법입니다. 좌표를 잃어버린 인 생, 그처럼 불행한 인간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아니하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세대라고 선고하시던 예수님의 말씀 처럼 오늘 이 세대 사람들에게는 모든 생의 방향 감각도 흐려지고 세상에 나 와 관계 있는 것 외는 다 무관심이요 관계 있는 일조차도 무관심합니다. 고속도로에서 버스가 전복하여 50명의 사상자를 냈다 해도 무관심이요, 한 마을이 모두 식중독으로 죽었다 해도 무관심이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습니다. 생의 좌표 없이 되는대로 사는 인생, 그들에게 회개나 반성을 요 구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의 세대는 정치적으로나 정신 적으로 수없이 많은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태에 대해서도 감각을 상실해버리고 그저 목적도 방향도 없는 좌표 잃은 국민의 무 관심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목이 터지도록 외치던 세례 요한의 전도를 비웃던 유대인들이 돌 하나도 돌 위 에 겹놓이지 않고 다 무너뜨리운 가공할 새 예루살렘 성의 파멸을 저희 세 대에 당했던 것을 생각할 때 인간 사회의 가장 큰 고민과 위험은 하나님 에 대한 무관심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광명한 새벽별입니다. 길을 잃고 혜매는 나그네에게 길 을 안내하십니다.

3. 광명한 새벽별은 새 아침의 여명입니다 밤 하늘에 별은 수없이 많습니다. 과학이 최고로 발달되었다고 하는 현 대에도 인간은 아직 저 수없이 많은 군성 (群星)의 신비를 다 알아내지 못 하고 있으며, 그 수가 얼마인지 조차도 아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를 지나간 별들포 많습니다. 공자, 맹자. 석가도 그들 세계에서 는 별같은 존재라 합니다. 현대 청소년의 머리에 투영된 인기 배우를 스타, 즉 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별들이라고 하여 다 같은 별은 아닙니다. 사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여기에 나오는 계명성은 히브리어로 헤일렐(Heilel), 영역으로 루시퍼 (Lucifer)라고 번역되고 있습니다. 즉 마귀를 가리켜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 합니다. 즉 여기 하늘에서 떨어진 별은 하늘에서 떨어진 영인 천사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신 말씀 속에는 주님의 특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두움이 지나고 동쪽 하늘에 새 아침의 연한 빛이 트일 때 새벽 별은 보다 찬란하게 대지를 비추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태양이 떠오르고 천하에 광명이 온다는 뜻입니다. 예수의 구원은 이 땅 위에 다시는 어두움을 초래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내 가정이 예수를 소유할 때 닭아질 것이요, 내 심렬이 그리스도를 맞아 들일 때 우리의 심령은 밝아지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벧후 11:39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주의 하라”고 권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불안합니다.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바라보았던 현실과 미래도 그러했습니다. 요한이 바라본 이스라엘의 미래 는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악마의 세력을 무저갱으로 쓸어 넣는 심판이 있어 그리스도를 믿는 사회에는 광명한 새벽별이 떠오르고 이어서 펼쳐지는 광명한 세계가 나타날 것을 요한은 내다 본 것입니다. 지상 세계는 어두워도 우리는 저 광명한 새벽별을 바라보고 살아갑시다. 10m 아래를 내려다 보는 자는 늘 어지러움을 느껴도 수백 광년 저 멀리 별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불안이 없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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