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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식일의 규례 (레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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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전체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절기를 순서적으로 배열한 목록입니다. 이러한 절기를 지킴으로써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신 여호와의 구원의 역사를 증거했고 그들의 삶이 여호와께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생활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결단을 반복하였습니다. 1년 12달은 그 전체가 역사와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한 증인이었습니다.

1. 절기의 의미 거룩한 날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것은 그가 절기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좋은 날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절기들은 모든 여호와의 잔치이기도 합니다. 절기라는 의미 자체가 잔치인데 그것의 목적은 여호와의 이름에 영광돌리기 위해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어느 특정인에게 국한된 잔치만은 아니다. 모든 백성이 다 함께 참여하는 전 민족적인 행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렇게나 무절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절기가 여호와의 잔치라고 한다면 그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신성하고 엄숙하게 거행되어야 합니다.

2. 안식일의 규례 오늘 본문은 안식일의 여러 가지 규례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안식일에는 모든 세상적인 일에서 손을 떼야 했습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월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3절)는 것이 안식일의 기본적인 규례입니다. 안식일의 유래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의 일을 하시고 제 7일에 쉬신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쉬신 이 날은 이스라엘이 영영히 기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안식일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전념해야 합니다. 그 날은 성회입니다. 그 날이 오면 모두 모여 기도와 찬송과 율법을 읽는 일에 전념해야만 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므로 이 날은 당연히 하나님께서만 영광을 받으셔야만 합니다.

3. 신약의 안식일 구약의 율법에 기록된 안식일은 신약시대에 와서 보다 본질적인 의미로 회복 되었습니다.

(1) 예수와 안식일 안식일에 대한 율법의 규정은 랍비들 손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복잡한 규칙들로 변모되었습니다. 즉 본래적인 의미의 안식일이 하나의 “법규화”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할 안식일의 정신이 안식일의 여러 규칙들에 의해 함몰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안식일에는 죽어가는 사람도 고칠 수가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38년 동안이나 병에 시달린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38년 동안이나 고통스러워 하던 병자를 예수님께서 고쳐 주었습니다. 평소 그를 알던 사람들은 이를 기뻐해 주어야 하는데도 그 사람들은 안식일날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옮지 않다고 그를 나무랐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이러한 어리석음을 예수께서는 잘 아셨기에 예수님은 안식일의 기본정신을 부활시켰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우리 주님이시고 주인이신 주님은 안식일이 규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정신을 지키는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2) 기독교의 안식일 기독교가 새로운 종교로 유대교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자 초대교인들은 예수의 모본을 따라 안식일을 신앙의 증진을 위한 한 방법으로 삼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이 날을 안식일이라는 이름 대신에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주일(Lord's Day)이라고 불렀습니다. 한 때 는 주일과 안식일을 함께 지켰지만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분명히 분리되 면서 주일은 그 나름대로의 특성을 독특하게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A. D. 4C 초부터는 기독교회에 있어서 주일은 안식일을 대신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즉, 신약에 있어서 안식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리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안식일의 정신과 다름없으며 오히려 신약에 와서는 더욱 분명하게 되었습니다.

4. 안식일이 갖는 영적 의미

(1) 인생에게는 반드시 “쉼”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유한합니다. 그러기에 끊임없는 일을 다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되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쉼”의 기간이 확보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병을 않게 됩니다. 이것이 유한한 인간이 갖는 한계 입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안식의 유래는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한 후 제7일에 쉬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는 휴식이 필요없습니다. 그분은 곤비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휴식이 필요합니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이셨기에 인간들을 위해 휴식의 시간을 정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 니다. 휴식 중에서도 우리가 참답게 취해야 할 휴식이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반드시 휴식을 필요로 하듯이 우리의 영혼도 휴식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영혼의 휴식은 제 7일이라는 시간적 개념에는 머무르지 않습니다. 늘상 지치고 피곤하므로 항상 휴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 휴식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에서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일찌기 지쳐있는 우리 영혼들을 위해 이렇게 초청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참다운 안식, 영원한 안식을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십시다. 그 곳은 영원한 안식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2) 안식의 소망이 있기에 오늘의 힘든 생활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살아서도 안식이 있고 죽어서도 안식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안식의 소망이 늘 함께 합니다. 이렇게 안식의 소망이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고난이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처럼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7-18) 성도 여러분은 사도 바울과 같이 영원한 안식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현실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소망을 가진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 연단이 소망을 굳건히 하는 기회로 삼기는 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 다(롬 5:3-4), “생각컨데 현대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는 말씀에서 이 사실은 분명해 집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영원한 처소가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어떠한 고난이나 고통이 없고 영원한 안식만이 있게 됩니다. 영원한 안식이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으니 우리가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에 항상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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