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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응답받지 못한 기도 (렘 14: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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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민족으로 선택하여 오랜 구원의 과정을 거쳐 수백년을 지켜오 신 하나님이 갑자기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시려는 몰인정한 상황을 예레미 야는 눈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온전히 버리시겠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예레미야는 절규했습니다. 지금은 평온하나 민족의 운명 깊숙히 찾아드는 미래도 보지 못하여 하나님을 거부해 버리는 이스라엘의 병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예레미야의 목베인 그러나 이 물음 앞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의 약속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침묵보다 더 심한 심판의 경고로 예레미야의 요구를 거절하시고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성서 신앙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불행과 비극을 앞에 두고 간구하는 물음 앞에 즉각적인 해결이나 시원한 대답을 주시면 우리는 쉽사리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의 하나님은 "물음"앞에 응답하시지를 않는다는데 풀리지 않은 비밀이 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것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아들 예수가 "죽음"을 묻는 마지막 절규였지만,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그 때에도 응답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실상은 이순간이야말로 가장 괴로운 순간이며 가장 고독한 순간입니다. 처절한 물음 앞에 아무런 응답도 없는 고독의 순간이지만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 고독한 순간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응답이 없는 물음만이 되풀이 되는 처절한 순간의 계속을, 견디어 내기 어려운 삶의 고독의 순간들을 버리라고 성서는 말하지를 않습니다. 욥의 이유없는 고난이나 100세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민족의 죄를 짊어지고 다시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였지만 그러나 예레미야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1. 기도가 거절 당한 현실 19절에 "주께서 유대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고 좋은 것이 없고 치료받기를 기다려도 놀람을 보나이다"고 했습니다. 본문은 예레미야의 기도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대 백성을 자기 몸과 같 이 사랑하여 하나님께 호소하며 "우리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우리를 치 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시온을 치시고 치료하지 않으시는 것을 예레미야가 볼 때 하나님이 유대를 온전히 버리신 것과 같이 생각되고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받기를 기다려도 놀람을 보나이다"고 했습니다. 유대 백성이 치료받기를 원하며 평강을 원하여도 그것이 오지 않으므로 안타까워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민족의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20절에 "여호와여 우리가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 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백성을 대신하여 그들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 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 나님이 들어주시고 그 상처를 싸매 주십니다. 잠28:13에 "자기의 죄를 숨 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 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자비의 문을 다시 두드려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백성들의 죄를 자기가 짊어지고 하나님 앞 에 서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벽을 허는 일은 죄의 자복 밖에는 없으나 응답의 문이 닫혀 버린 때에는 그러한 기도도 아무런 의미 가 없습니다.

3. 응답을 촉구하는 호소 21절에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위를 욕되게 마옵소서 우리와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의 행한 죄를 보면 마땅히 멸망받아야 되겠으나 주의 이름과 주의 영광과 주의 언약을 보시고 긍휼히 여겨 구원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유대 백성은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하나님의 백성임으로 주의 영광이 달려 있으므로 그들이 잘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들이 잘못하면 하나님 께 욕이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죄 값으로 망하는 것은 마땅하나 하 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하나님의 언약이 폐한 바 될까바 안타까워 하며 구원해 달라고 예레미야는 기도하였습니다.

(1)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은 그 명예와 영광을 의미합니다. 유대는 하나님의 선민이므로 유대의 멸망은 곧 하나님의 명예와 영왕에 흠이 되기 때문에 유대의 죄를 돌아보지 마시고 파멸에서 건져 달라는 애절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주의 영광의 위를 욕되게 마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주의 영광의 위"는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 또는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성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파멸은 성전의 파멸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며 성전 파멸은 하나님이 계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므로 예루살렘 파멸을 면해 달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지나가는 나그네의 비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는 불명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파멸 이전에 이미 우상으 로 찬 예루살렘이므로 성전 안에도 우상이 자리잡고 있으니 하나님이 계실 처소가 이미 없어졌으므로 예루살렘은 멸망 당할 현실에 임했고 이미 영적 으로 멸망되어 있었습니다.

(2) 언약을 위하여 "주의 언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구원의 약속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도는 이기주의가 아니고 하나님 중심의 기도였습니다. 또 주의 이름과 주의 영광과 주의 언약을 위한 기도입니다. 성도는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롬 14:8). 이기주의로 하나 잘 되려고 기도하는 것은 죄요, 악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 씀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나라가 잘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도 록 하는 일에 이용 당해야 합니다.

4. 예레미야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유대 죄를 사할 수 있다 고 기도했습니다 22절에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모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관장하시고 운행하시는 분이시므로 범죄한 유대를 사하실 수 있다는 뜻입 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죄와 혼합되는 일을 하시지는 않습니다. 예레미야의 기도는 유대의 멸망을 유예는 시켰어도 방지할 수는 없습니다. 열방의 허무한 것은 우상을 가리킵니다. 우상이 아무리 많고 크다고 해도 그것은 비를 내리게 할 수 없습니다. 비를 내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천체기상을 주장하지 못한다는 말이며, 영적으로는 신령한 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상은 우리 심령을 살리지도 못하고, 평안도 주지 못하고, 기쁨도 주지 못합니다. 비를 내릴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장하시며 비와 이슬을 내려주셔서 만물을 자라게 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성도에게 신령한 양식을 주시고 참된 위로와 평강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앙망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풍성한 비를 땅에 내려 오곡백과를 주시고 신령한 은혜로 신령한 열매를 풍성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계속 앙망하는 자는 이 모든 것이 점점 풍성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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