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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오미와 마라 (룻 0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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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유대 나라에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에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가 베들레헴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흉년이 들어 이방 모압 땅으 로 이민을 갔는데, 거기서 두 자부를 맞이한 것입니다. 불행하게 앨리멜렉 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모압으로 이민 온지 10년만에 남편과 두 자식을 여위고 두 며느리 즉 세 과부만이 남게 되는 비극을 당한 것입니다. 나오미는 한사코 따르는 룻과 함께 귀향의 길을 떠났습니다. 단신으로 망명의 길을 떠났던 야곱이 하란에서 얻은 많은 처자와 종들과 많은 우양을 거느리고 귀향 장도에 올랐습니다. 그야말로 금의환양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귀향은 그와 정반대로 슬픔과 불행과 실패와 부끄러움과 저주의 귀향이었습니다. 이역 땅에 남편과 두 아들을 매장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 길이 얼마나 슬픔과 불행과 저주의 갈이었겠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보아도 나오미를 조롱하는 것 같고, 땅을 굽어 보아도 비웃는 것만 같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목적지인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나오미를 보는 자마다 “ 이가 나오미가 아니냐? ” 하며 온 성읍이 놀라며 모여 들었습니다. 이때 나오미는 “ 나더러 나오미(즐겁다)라 하지 말라 이곳에서 나갈 때는 풍성하게 떠났으나 빈 손 들고 돌아왔다 ” 고 하며 부끄러움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룻 1:19에 “ 온 백성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 고 하였으니 이 구절을 두고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베들레헴에서 인심을 얻고 칭송을 받으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친애하던 나오마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 이가 나오미가 아니냐 ” 고 탄식을 올린 것입니다. 오래 간만에 돌아오는 나오미를 반가히 환영 하는 인정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들이지만, 땅위에서 인심을 얻고 칭찬과 대접을 받으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100년을 살지 못하는 인생들이 원수를 맺고 인실을 잃고 욕을 먹어가며 사는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둘째, 늙고 초라하게 돌아오는 나오미를 보고 성읍 사람들은 무슨 구경 거리나 되는 것처럼 웃으며 저 혼자 살겠다고 모압으로 가더니 이제 식구 들이 다 죽고 저 혼자 돌아오는 꼴좀 보라고 빈정되는 성읍 무리들입니다. 부끄럽게 돌아오는 한 노파를 두고 온 성읍이 떠들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이 때 나오미의 부끄러움과 슬픔은 더 컸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 이 참상을 당했을 때에는 침묵 중에 눈물로 조문을 하고, 남의 실수와 실패와 불행을 볼 때에는 말없이 동정를 표하는 것이 더욱 고상한 위문이 될 것입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 나를 나오미가 칭하지 말라 마라(괴로움)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음이라 ” 고 했습니다. “ 여호와께서 나를 징계하셨고 ” 라고 하였으니 슬픔과 고통을 당한 나오미는 자기가 당한 재회와 고통을 자신의 신앙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성공하고 존귀에 처해 있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치 아니 하고 교만, 방종하기 쉬우며, 실패하고 비천해질 때에 자기의 죄악을 반성 하지 않고 실망, 낙망, 원망, 저주, 발악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천성의 순례길을 가는 성도 우리들은 불우한 나오미의 귀향을 통하여 배울 것이 많은 줄로 압니다.

1. 나오미가 마라로 바꾸어진 원인은 무엇입니까?

(1) 마음으로 하나님을 등진 이유입니다. 나오미는 형식상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았지만, 마음으로는 하 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가 하나님께 기도한 흔적이 없습니다. 흉년이 들어도, 모압으로 이민을 갈 때도 하 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육신 의 편리를 위해 자행까지 했으며, 외형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었으나 실상 은 하나님을 떠난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 해야 하며 가까이 해야 합니다. 시 73:23에 “ 하나님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를 붙들어 주시며 ” 기적과 이적을 나타내십니다.

(2) 감사가 없었습니다. 나오미는 엘리멜렉이라는 가문 좋고, 부요하고, 신앙 좋은 집에 시집갔 습니다. 그리고 준수하게 생긴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남편의 사랑까지 한 몸에 지녔으나 감사했다는 이야기가 한 번도 없습니다. 감사는 커녕 흉년 에 불만 불평이 가득하여 베들레헴을 버리고 모압 땅으로 이주한 것입니 다. 하나님께 감사를 더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고통스러운 일을 뒤따라 주 셨습니다.

(3) 나오미는 사람의 채찍을 받고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흉년의 매를 맞을 때 하나님의 사람의 매임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2. 나오미 나오미는 참 좋은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 즐겁다 ” 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민생을 기쁘게 살며 남을 즐겁게 해 주는 것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부모는 사랑하는 딸에게 즐거움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을 것이며 그 역시 그 이름을 즐겨 사용했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과연 한동안 그 이름처럼 기쁘고 즐거운 인생을 산 것 같습니 다. 어려서는 사랑하는 부모의 슬하에서 고이 자라났고, 자라나서는 믿음 직한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고, 결혼 후에는 두 아들을 얻어 현모양처로 단 란한 가정을 이룩하여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와 그 의 가정은 그가 살고 있던 베들레헴 애브랏 마을 사람들로부터 선망의 대 상이 되기도 됐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총애를 받은 것 같습 니다.

3. 마라 나오더의 이름은 어제의 이름일 뿐 오늘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기 에 그녀가 모압에서 다시 베들레헴에 들아왔을 때 마을 아낙네들은 “ 이가 나오미가 아니냐 ” 고 놀랐고, 그 자신도 “ 이제부터는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괴로움)라고 불러 주오 내가 곤고한 인생이 되었기 때문이 오 ” 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 마라 ” 는 기막힌 전락입니다. 희락이 고통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모압 지방에서 남편 엘리멜렉을 사별했고 소망을 걸었던 두 아들 말론과 기룐 마저 죽었으니 가산까지 탕진했던 것입니다. 풍족하게 떠났다가 곤 고하게 돌아온 환향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와 마라, 어쩌면 이것이 여 인의 운명 일는지도 모릅니다. 딸로서는 화려 한 꿈을 안고 출발하지만, 머 지않아 결혼하여 아내가 되고 자녀를 낳아 어머니가 되고 보면 거치른 세 파에 시달리고 인생살이에 찌들어 나오미의 꿈은 간 데 없고 쓰디 쓴 마라 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에 룻이 있어서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나오미는 마라가 되어 쓴 잔을 마시고서 참 나오미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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