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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울 왕의 죽음의 교훈 (대상 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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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울의 죽음

(1) 가드의 수도에서의 광경들(7-10절) 1) 왕의 가족의 죽음의 소식 전투 다음 날이 밝아왔을 때 블레셋 사람들은 아버지와 3아들의 죽은 시체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소식이 수도에서 이야기 되었고 아스글론의 거리에 선포되었습니다. 2) 승리한 군대에 대한 환영 저주받은 종족의 딸들이 기뻐하였고 그들의 승리한 군대를 환영하였습니다. 그들의 최고지도자의 쓰러짐에 대하여 보상이 왔습니다. 3) 전리품들은 신들의 신전에 매달아졌습니다. 이것은 관습이었습니다. 골리앗의 머리와 검이 성소로 옮겨지듯이 사울의 머리는 잘리워져서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신전에 매달았습니다. 사울의 창과 검은 그들의 축제에 구경으로 보내졌고 후에 그들 신전에 안치되었습니다. 그 성문 앞 많은 사람들이모이는 곳에 사울과 아들들의 시신들이 벌거벗기우고 잘리워져서 내걸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치욕적인 패배와 굴욕에 관한 지속적인 기념입니다.

(2) 바쳐진 성읍(11-12절) 1) 그 성읍의 애국심 요단 저편의 성읍들은 몰락한 가문에 충성하였습니다. 길르앗 야베스가 특별히 헌신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할례받지 못한 자들에 의해서 욕을 당한 이스라엘의 왕관을 위해서 염려했습니다. 2) 그 성읍의 열심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20km의 먼 거리를 달려갔습니다. 밤에도 위험하였고 고지통로를 지나서 가야했으나 그들은 사울과 아들들의 시신을 탈취하여 매장 장사지냈습니다. 3) 그 성읍의 감사 사울의 부자들의 장사는 엄숙한 가운데 금식과 슬픔 중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이 행위는 다윗에 의해서 칭찬을 받았으며(삼하2:5) 요세푸스에 의해서 언급되었습니다. 곧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보상받을 것입니다.

(3) 사울의 죽음의 교훈(13-14절) 1) 화려 한 시작이 두렵게 끝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이 인간들의 죄를 덮습니다. 3) 민족적 자만으로 인해 경건한 자들이 경건치 못한 자들과 함께 고난을 받습니다.

(4) 사울의 범죄 1) 그는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왕이었습니다(삼상 15:17-23). 2) 그는 진실하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사울은 나쁜 마음과 거짓된 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갈의 부와 사무엘의 축복을 탐냈습니다. 하나님제서는 거짓된 자를 드러나게 하십니다.

(5) 잃어버린 왕국 위대한 사람들이 거꾸러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계자를 정하십니다. 하나님제서는 지극히 힘드는 의무들을 위하여 사람들을 세우실 수 있습니다. 1) 사울의 오만 불순종의 죄로 이스라엘 나라는 망했습니다. 2)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계셔서 사울의 왕국을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습니다. 왕권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지 못하며 권력도 하늘에 대하여 방어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2. 용서받지 못하는 죄 성경에는 용서받지 못하는 죄악은 없다는 것이 구원의 원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원칙에 예외가 있어 용서받지 못하는 죄도 있는 것입니다.

(1) 신학적인 원리에서 1) 알고 짓는 죄는 용서받지 못합니다(히 6:5-6, 10:26). 지옥이 있는 줄 알면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마귀의 자식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됩니다. 2) 성령모독죄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성령 모독이란 예수를 모독하는 죄를 말합니다. 교회모독죄, 예수의 종을 모독하는 죄를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천대하는 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심을 부정하는 죄를 말합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죄요 신약시대와서는 예수믿지 않은 죄입니다. 교회가 우습게 보여지고 교직자란 사람들도 여러모로 자기보다 못한 자로 형편없으니 교회 가봐야 그렇고 아무 필요성이 없다고 하면서 예수믿지 못하는 죄는 성령모독죄요 이것이 신학원리에서 볼 때 구원 불가능의 죄악인 것입니다.

(2) 세속적인 생사의 차원에서 1) 사울의 경우(대상 10:13-14) 사울의 용서받지 못한 죄를 짓게 됨은 그가 블레셋과 전쟁을 하면서 이기겠는가? 패전하겠는가? 알고 싶어 신접한 여자 무당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죽을 죄요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 무서울진저 하나님 앞에 있던 사람이 타락하는 것과 무당을 찾는 일은 용서받지 못하는 죄악입니다. 인생의 흥망은 하나님께 있는 것인데 하나님께 묻지 않고 신접한 여자에게 묻는다는 사실이 곧 죽는 죄악이요 용서받지 못하는 죄악입니다. 2) 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의 죄 (왕하 1:2-4). 북조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의 아들 아하시야가 등극한지 얼마 안되어서 궁궐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었습니다. 아하시야는 사자를 보내어 내 병이 낫겠나? 어떻게 되겠나? 를 에그론의 신 바알세불에게 물어보라 하였을 때 엘리야 선지자는 그 사자를 도중에서 만나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에그론 바알세불에게 묻느냐? 그런고로 네 주인에게 돌아가 내 이르는대로 이르라.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으리라 하라”고 꾸짖어 보냈습니다. 결과는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이 급하다고 해서 무당에게 묻는다는가 다른 방법을 구하면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자됩니다.

(3) 국가적인 측면에서(왕상 13:33-34) 북조 이스라엘을 창건한 여로보암은 남북간 동족사이에 국경아닌 국경을 만들어 놓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남조 유대 땅! 특히 예루살렘에 못가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드리게 되여 민심이 남조에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산에 신당을 만들어 놓고 여기서 제사드려도 한 가지라고 홍보활동을 정부차원에서 선동을 하고 제사장을 레위 지파 사람도 아니요 아론의 후손도 아닌 어떤 사람이고 원하기만 하면 제사장을 삼아 제사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로보암 집에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3:33-34). 하나님의 심판은 여로보암의 집을 지면에서 끊어서 멸망케 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종교를 자기에게 유익하도록 악용하면 그 정부는 망하고 맙니다. 독일 나치스 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할 때 군목한 사람을 어용으로 만들어 독일 사랑과 같은 혈통이기 때문에 예수를 죽인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하면서 600만이나 학살했습니다. 일본이 망할 때에도 신사참배는 국민의례이고 종교의식이 아니라고 속이며 탄압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무당들을 다 모아놓고 국립국장과 단성사 앞에서 대일본 제국 황군의 승리를 위해서 굿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도 안 망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은 자에게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교회를 조롱하고 교직자를 헐뜯고 믿는 자를 멸시하는 자에게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이 모두 용서받지 못할 성령을 거스리는 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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