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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양대원의 반열 (대상 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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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제사장들의 사역을 수종할 레위 사람들의 반열을 배정하였습니다. 이제 그는 노래하고 연주할 사람들을 배정합니다. 3가족의 성가대가 있었습니다.

1. 노래하는 자들과 연주자들의 반열

(1) 그들의 엄숙한 성별 1절에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라고 했습니다. 논쟁이나 무력에 의한 탈취, 자천, 특혜에 의한 승진은 없었습니다. 각자는 조심스럽게 그 직위와 업무에 임명되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의 가족 및 그를 섬기는 일에 부름을 받는다는 것은 작지 않은 영예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회중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고 민 16:9에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는 것”은 더욱 큰 영예와 책임을 부여하였습니다.

(2) 그들의 거룩한 직분 그 직분은 다양하고 모두 다 요구되는 것이었습니다. 1) 수금을 연주하는 선지자들:-이들은 노래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냈고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작사된 시편들을 노래하였습니다. 악기들이 예언의 정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악기 연주는 흔히 마음을 위로하고 찬양과 기도의 일을 준비시키는 방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악기는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요긴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악기는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령으로 노래하고 마음 깊이 노래하게 하는데 긴요하였습니다. 2) 악기 연주자들:-헤만은 취악기를 관장하였고 여두둔은 수금을 관리하고 규율을 부여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3) 질서의 감독자들:-무리의 인도자들, 다윗을 도와 예배순서를 정하고 감독한 사람들, 그 앞에서 제비뽑기가 이루어진바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의 반열들의 지도자들, 성직제의 통솔자들, 군대장관의 직책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에 지도자들이 되는 것은 더욱 뛰어난 특권이요 영예입니다. 4)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이룩했습니다. 관현악과 성악, 합창단과 그 지도자들은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일을 위해 동원했습니다(3절). 우리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마다 찬양할 새로운 이유를 발견합니다. 다른 주제는 제쳐놓고 하늘의 천사가 찬양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주제만으로도 땅위에서 감사에 넘치는 찬양을 고무하고 지속시키기에 충분합니다.

(3) 성가대의 많은 숫자 각 성가대는 그 지도자와 더불어 12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것이 24반열이었으니 성가대원은 288명이었습니다. 이들이 매주 교대로 봉직하였습니다. 대상 23:5에 이들은 재능과 경험을 겸비한 음악가들로 4천명에 이르는 일반 성가대를 인도하고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찬송에 익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찬송에 익숙해야 합니다. 즉 언제나 그리고 무슨 일에나 찬송하기를 배워야한다는 것입니다.

(1) 득의의 날에 찬송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1) 그것이 정직한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2) 그것이 지혜로운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득의의 날에 그러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 인간 만세를 부르기에 약삭빠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는 배신행위요 자신에게는 어리석은 처사인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은혜를 입고 살아온 인간으로서 또 앞으로 은혜를 입고서야 살아갈 인간으로서 할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일에 성공했던 득의의 날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정직과 지혜를 잊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득의의 날을 당할 때마다 찬송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도 그러한 승리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실의의 날에도 찬송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1)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 때문이요 2)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문이요 3) 하나님의 선을 믿기 때문입니다. 실의란 자기 좌절에서 오는 어두운 감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엄격한 의미에서 실의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며,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평 거리 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일은 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이며 그리고 그것은 완전히 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옥중에서도 찬송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과연 감옥은 빌립보 전도의 종지부가 아니라 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실의에 빠지려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 줄을 믿고 찬송을 잊지 맙시다(롬 8:28).

(3) 죽음의 날에도 찬송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은 가장 비통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죽음은 달리 이해되고 있습니다. 죽음은 천국에의 이민이며, 피곤으로부터 휴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시체를 앞에 놓고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여유를 지닙니다. 그렇다고 하면 남의 죽음 앞에서 그렇게 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찬송하기를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다음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나가셨다고 합니다. 즉 죽음의 날에 찬송을 잊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를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그처럼 해야 된다는 교훈이 여기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불평에 익숙해지면 좋으나 그르나 불평만을 토하게 됩니다. 그러나 찬송에 익숙하게 되면 득의의 날에나 실의의 날에나 찬송이 흘러넘칩니다. 땅위의 생활에도 찬송에 익숙해진 자라야 천국의 생활에도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모름지기 찬송에 익숙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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