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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70인을 세워 보내시다 (눅 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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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인을 세워 보내시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3년 동안 천국복음을 증거하셨고, 병자를 고치셨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자 이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 70명 을 파송하시는데, 이 사건을 통해 쓰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파송의 의미와 특권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제자들을 보내시는 예수님 그 후 주께서 다른 70명도 세우시고 예수께서 친히 가려고 하신 각 마을과 장소에 둘씩 짝지어 먼저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께 추수할 밭으로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라”(1-2절)이곳에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70명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70명을 예수님께서 친히 가려고 하셨던 곳에 둘씩 짝지어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70명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열두 제자 보다 덜 훈련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했습니다. 예수님께 직접 말씀을 들었고, 수없이 많은 기적을 보았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것을 목격한 12명의 제자들도 어설프고 부족했는데 70명은 어땠겠습니까? 또 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치 양들을 이리 떼에게로 보내는 것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양은 절대로 이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양이 이리 떼에게 가는 것은 자살 행위와 같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보내셨을까요? 첫째 다급하고 시간은 없는데 일꾼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들은 어설프고 보잘 것 없었지만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가려고 하셨던 곳으로 보내졌습니다. 누가복음 9장을 보면 ‘예루살렘으로 가실 것을 굳게 결심하셨다’는 말이 나옵니다.(51절) 이제 갈릴리지역으로 다시는 못 올 수도 있는 극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가려고 하셨던 장소로 70명을 파송하신 것입니다. 그런 중요한 장소로 어설픈 사람들이 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험한 곳에 보내놓고 ‘나 몰라라’하지 않았습니다. 매순간 함께하셨고 도와주셨습니다. 양이 이리 앞에서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은 빨리 목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목자가 이리를 물리치고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양을 보호해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약할 때 강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평화를 빌면 그대로 될 것이다” “지갑도 가방도 신발도 가져가지 말고 가는 길에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 어느 집에라도 들어가면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라. 그곳에 평화의 사람이 있으면 네 평화가 그 사람에게 머물 것이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4-6절)이것은 12제자를 파송하실 때와 같은 말씀인데, 덧붙이신 말씀이 있습니다. ‘가는 길에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 길에서 인사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전파의 긴급성을 가르쳐 주십니다. 인사할 시간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무례한 사람이라고 오해를 하더라도 상관하지 말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가서 평안을 빌라는 것입니다. 이 인사는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였습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먼저 인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화, 성령충만, 기쁨 등으로 축복하십시오. 그것을 받을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축복의 통로로 이 사람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마을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환영하지 않으면 거리로 나가 이렇게 말하라. ‘우리 발에 붙은 너희 마을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고 간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 소돔이 그 마을보다 견디기 더 쉬울 것이다. 고라신아! 네게 화가 있을 것이다. 벳새다야! 네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에게 베푼 기적들이 두로와 시돈에서 나타났다면 그들은 벌써 오래 전에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심판 날이 되면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더 쉬울 것이다. 그리고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높아지겠느냐? 아니다. 너는 저 음부에까지 내려갈 것이다!”(10-15절) 종들에게 주신 특권 평화를 전하면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거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전해지지만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특정 지역을 지칭하면서 꾸짖으십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특별한 기적을 베푸신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네가 이런 기적을 체험하고도 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느냐?’라는 안타까움이 담긴 메시지입니다. “너희 말을 듣는 사람은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배척하는 사람은 나를 배척하는 것이다. 또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그분을 배척하는 것이다.” (16절)우리는 본문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70명의 제자들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이 복음을 전하고 평화를 전한 결과는 예수님이 전할 때와 동일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받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70명의 제자들이 전한 메시지는 곧 예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어둠에서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메시지, 홍해를 가르신 능력의 하나님의 메시지가 부족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선포된 것입니다. 이들이 행한 일이 천국과 지옥,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영광스러운 특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놀라운 책임과 특권이 저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두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임박한 구원, 애태우시는 하나님 이들이 돌아와서 예수님께 한 말이 17-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70명이 기쁨에 넘쳐 돌아와 말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을 대니 귀신들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능력을 이길 권세를 주었으니 그 어떤 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귀신들이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들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17-20절)제자들은 흥분했습니다. 귀신들도 복종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기뻐하시면서 “귀신들이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들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훈련을 마치고 준비가 끝났을 때만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부끄럽고 연약해도 순종만 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가 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더 귀하게 쓰이기를 원하십니다.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아직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추수할 것이 많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시고 쓰임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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