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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 (눅 07: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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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거리에는 캐럴이 울리고 사람들은 왠지 흥분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탄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름없는 여인의 방문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만난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명은 바리새파 사람 시몬이요 다른 한 명은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여인입니다. 이 여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여인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여인이 향유를 붓는 사건은 사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 기록된 사건은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마리아라는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누가복음은 앞서 사건이 일어난 지역과 다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처음 사역을 시작하셨던 가버나움이라는 곳에서 있었고, 이 여인도 마리아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사건은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시작됩니다. 시몬이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한 것입니다. 당시 부유한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서 말씀을 듣곤 했습니다. 시몬은 당시 유명했던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했고,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시몬의 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중에 한 여인도 같이 있었습니다. 37-38절입니다. “그 마을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었는데 예수께서 그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는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그 발에 자신의 입을 맞추며 향유를 부었습니다.”여기 앞서 말씀드린 이름 없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37절을 보니까 ‘죄인인 한 여자가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죄인인 여자라고 말할 때는 곧 창녀를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여기 등장하는 여인이 창녀였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따가운 시선을 그녀에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옥합을 깨고 향유를 붓다 이 여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은 예수님의 발에 떨어졌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머리를 풀어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당시 결혼을 한 여인들은 반드시 머리를 묶었다고 합니다. 머리를 풀어 헤친다는 것은 자신에게는 수치요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은 머리를 풀고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 같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이야 어쨌든, 이 여인의 모든 관심은 예수님께 맞춰져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길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오직 예수님만이 중요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발에 입을 맞추는 것은 존경의 표시입니다. WEC이라는 선교단체가 있습니다. 이 선교단체는 C.T.스터드라는 사람이 창립했는데, 이 사람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대학생 때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중국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그는 허드슨 테일러를 만나 중국인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중국에 있을 때 그는 부모로부터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습니다. C.T. 스터드는 자신의 결혼을 위해 일부를 남겨두고 나머지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과 선교사역에 기증했습니다. 그런데 약혼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결혼을 하는데 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남겨둔 돈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래서 C.T. 스터드는 무일푼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합니다. 그가 53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중국에서 아프리카로 선교지를 옮깁니다. 그리고 콩고에서 지금의 WEC을 창설합니다. 이 WEC의 가장 중요한 선교 정책 중 하나가 ‘어떤 경우에도 재정 지원을 호소하거나 부탁, 암시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께만 구한다.’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가지 아이러니 오늘 이 여인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바리새인도 당황했습니다. 39절입니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새파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저 여자가 누구며 어떤 여자인지 알았을 텐데, 저 여자는 죄인이 아닌가!’”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초대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었지만 정작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한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지만 그것은 호기심 수준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인 이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죄를 사해주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누구나 의인이라고 생각했던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깨닫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고, 성 프란시스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나보다 더 가련하고 비참한 죄인은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숨기고 거룩한 척 할수록 더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데도 말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속마음을 아시고 41-42절에 50데나리온과 500데나리온 빚진 자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1데나리온은 장년 1명의 하루 품삯입니다. 다시 말해 50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은 50일을 일해야 갚을 수 있고, 500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은 거의 2년 동안 일을 해야 갚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똑같이 빚을 탕감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더 감사와 감격이 크겠습니까? 예수님은 이것을 상기시키십니다. 시몬이 간과한 것 용서는 빚을 탕감 받는 것과 같습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이 여인은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감동하지도, 감격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리새인에게 자신의 의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높인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예수님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배웠고, 더 좋은 곳에 살고, 더 형편이 낫다고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예수님께서 들어가실 만한 공간이 없는 것입니다. 하덕규 집사님이 지은 노래 중에 ‘가시나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혹시 우리의 마음이 이 노래와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들어오고 싶어 하시지만 내 속에 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들어오실 수 없지는 않습니까? 바리새인 시몬의 마음에는 예수님께서 계실만 한 곳이 없었습니다. 자기 의, 자기 고집이 센 사람들은 자기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시몬은 구약을 배우면서 구약의 위대한 사람들을 닮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율법을 배우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위대한 왕이 되고 싶어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몬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하나님 앞에서 고통스러워했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잘못된 시몬의 관심사 시몬은 율법적으로 완벽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초대했음에도 그는 예수님을 형식적으로만 만났을 뿐입니다. 그가 얼마나 예수님을 형식적으로 대했는지 44-4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돌아보고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보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신의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인은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내 발에 입 맞추고 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지 않았지만 이 여인은 내 발에 향유를 부어 주었다.’”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손님이 오면 세 가지 일을 했습니다. 첫째, 입을 맞추었습니다. 평안을 비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몬은 예수님께 입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께 다가가 입을 맞추었습니다. 둘째, 손님에게 발 씻을 물을 주었습니다. 당시 길은 먼지가 많았고 신발은 밑창에 가죽끈으로 묶은 것이었기 때문에 외출을 하면 발이 먼지 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손님에게 발 씻을 물을 주었던 것입니다. 시몬은 예수님께 발 씻을 물을 주지 않았지만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셋째, 손님에게 향유를 발라 주었습니다. 향유는 오랜 여행으로 지친 손님에게 쉼과 여유를 주고 머리와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죄인인 여인이 자신의 가장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을 뿐입니다. 이것을 보면 시몬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도, 랍비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한 자입니까. 그는 예수님을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호기심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했으면서도 아무런 대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소문으로만 들었던 기적의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예수님을 통해 유명 인사 행세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유야 어쨌든 그는 예수님을 만났지만 회개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도 아무런 감동이 없고, 예수님을 만났지만 변화가 없다면 우리가 하는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과 용서의 관계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7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말한다. 이 여인은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것은 이 여인이 나를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이 여인의 죄가 왜 사함을 받았을까요? 이 여인이 예수님께 입을 맞추고, 눈물로 발을 씻기고, 향유를 부었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여인은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죄용서를 받았습니다. 이 여인은 용서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자신의 빚이 탕감 받는 것이 용서라는 것을 깨달았고, 자신의 모든 죄가 예수님을 통해 사함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예수님께 자신을 드려 감사의 표현을 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번 성탄절에 예수님께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여인처럼 옥합을 깨뜨려 여러분의 일생을 헌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감사를 표현해야 할 사람을 찾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용서를 받아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는 이 바리새인과 여인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 한편에는 이 여인처럼 예수님을 만나고 싶고, 예수님께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오랫동안 습관처럼 해왔던 대로 살아가고 싶은 바리새인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내 고집, 내 생각, 내 의를 드러내고 싶은 충동이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된 자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참된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마지막으로 48-5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들이 용서받았다.’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군데 죄까지도 용서한다는 것인가?’ 예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거라.’”예수님은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심판한 부정한 여인을 변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용서를 확정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구인데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느냐?”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임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거라.”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는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죄책감에 빠져 살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데 모든 생각을 집중하십시오.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마십시오. 습관적으로 탈영을 하는 한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 부대를 책임지고 있던 장군은 이 병사를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다 지쳐서 결국 이 병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구나. 네가 변하지 않으니 군법에 따라 사형시킬 수 밖에 없다.” 그때 다른 병사가 말했습니다. “장군님, 우리가 아직 해보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병사를 용서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장군을 비롯해 전 장병들이 그 탈영하는 병사를 용서하기 시작했고, 용서를 받은 그 병사는 일평생 그 장군에게 충성하는 부하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용서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용서를 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 그 사람이 변화되는 축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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