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시다 (눅 07:1-10)

첨부 1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시다 누가복음 7장에는 네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는 사건,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시는 사건, 세례요한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아가 바로 당신이니까?’하는 질문에 ‘내가 바로 메시아다.’라고 말씀하시는 사건, 한 여인이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에게 붓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공통점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백부장 사건 역시 주인공이 백부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만약 이 내용을 연극으로 꾸민다면 스포트라이트를 백부장에게도 비춰야 하지만 더 크고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예수님께 비춰야 합니다. 백부장의 고민 1절입니다. “예수께서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모든 말씀을 마치고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가버나움은 북쪽 갈릴리 지방의 중심지역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가셔셔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에 대한 기록이 2절에 있습니다. “그곳에는 백부장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신임하는 종 하나가 병이 들어 거의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사람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 직업을 따라 ‘백부장’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부장은 백 명 정도의 군인을 맡고 있는 로마 군대의 장교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중대장 정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부장은 이스라엘의 치안을 유지하고 반란이 일어나면 그 반란을 진압하는 일을 했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악하고 잔인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시하는 지배국가의 장교를 좋아할 리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 사람에 대한 객관적인 일곱 가지 기록이 있습니다. 첫째, 백부장은 삶의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부하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병든 사람도 힘들지만 병든 사람의 가족도 힘든 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라는 불안감과 상실감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크게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신임하는 부하를 잃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부모에게 다섯 명의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는 오분의 일이 아니라 한 자녀가 다섯 명 있는 것입니다. 좋은 리더는 부하 한 명을 전체와 같이 생각합니다. 백부장은 신임하고 믿고 동지애를 느끼는 부하가 죽어가고 있는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둘째,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자신들을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백부장은 당연히 기도할 수 있는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백부장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 장로들을 예수께 보내 자기 종을 낫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님께 부르짖는 백부장 셋째, 백부장은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부하가 병들었을 때 유대 장로들을 예수께 보내 병을 고치려고 했습니다. 부하의 병을 자신의 병처럼 생각하고 고치려고 하는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4-5절입니다. “장로들이 예수께 와서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이 사람은 선생님이 그렇게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우리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넷째, 백부장은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은 잔인하고 포악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지배국인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백부장을 칭찬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은 성실한 군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한참 전에 춘천에 있는 부대에 전도집회를 하러 갔었습니다. 게임을 통해 휴가증도 주고 워십 댄스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대장님이 특송을 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대대장님이 무대로 올라오시니까 마치 유명 가수가 올라오는 것처럼 손을 들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대대장님이 복음성가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모든 병사들이 좋아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곡이 그 부대의 주제가였습니다. 제가 궁금해서 집회가 끝난 후에 병사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병사들이 하나 같이 “우리 대대장님은 진짜 군인입니다. 성실하게 역할을 감당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하니까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이방인인 백부장을 칭찬했습니다. 다섯째, 이 사람은 인격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국수주의에 빠지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당을 지어주고 이스라엘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6-8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 백부장은 친구들을 보내 예수께 이렇게 아뢰도록 했습니다. ‘주여, 더 수고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주를 제 집에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주께 나아갈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저도 상관 아래 있으면서, 제 아래도 부하들이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부하에게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며 하인에게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 여섯째, 백부장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저는 주님을 집에 모실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화가 나 있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몰라본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눈에 눈물이 글썽입니다. ‘자격이 없는 나를 세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백부장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일곱째, 이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저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제게도 부하가 있습니다. 제가 부하에게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옵니다.” 백부장에게 이런 권한을 준 것은 로마 황제입니다. 백부장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황제의 명령을 어기는 것과 같았습니다. 백부장은 이 구조로 하나님과 자연 세계를 이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권세를 주셨고, 예수님께서 자연 세계에게 명령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한 마디만 하면 질병도 예수님께 복종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과연 예수님은 이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입니다. 여기에 오늘 말씀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9-10절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듣고 백부장을 놀랍게 여겨 돌아서서 따라오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스라엘에서도 이렇게 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백부장이 보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니 그 종이 벌써 나아 있었습니다.”예수님은 크게 놀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을 놀라게 하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깜짝 놀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만한 믿음을 이스라엘에서 본 적이 없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은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 주십니다. 백부장에게 있던 문제를 고쳐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있던 그 마음을 위로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오늘 이 사건을 통해 세 가지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마음은 살려주고 싶은 마음, 고쳐주고 싶은 마음, 회복시켜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하인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백부장의 마음을 고쳐주고 싶었습니다. 그의 힘든 부분을 회복시켜 주고 싶은 마음으로 백부장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의 마음입니다. 이사야 42장 3절을 보면 메시아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불길이 약해진 심지를 끄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성실히 공의를 베풀고.”그 마음이 이 사건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선포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고쳐주고 싶고, 살려주고 싶고,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저는 더 나아가서 선포합니다. 그 마음을 당신 마음 가운데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 2장 5-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비행기 일등석에 앉아 가는데 우연히 이코노미 좌석에 있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러면 일등석을 포기하고 그 친구 옆에 앉아 이야기 하며 갈 수 있겠습니까? 기득권을 포기하고 낮아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일등석에서 내려오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하늘을 포기하고 사람이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구약에는 메시아에 대한 두 가지 전통이 있습니다. 하나는 수난의 종입니다. 메시아는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는 종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고난을 받습니까? 살려주고 싶어서 사서 고생하는 것입니다. 죽어서라도,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서라도 살려주고 싶고, 회복시켜 주고 싶은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승리자 메시아의 전통입니다. 그분이 오시면 승리자로 모든 것을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먼저 선포하고 축복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앞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책망하고 질책하고 평가하기 이전에 여러분을 고치고 치료하고 회복시키길 원하신다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철이 듭니다. 철이 드십시오. 영적으로 성숙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예수님의 마음이 다운로드 되기를 축원합니다.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 둘째, 예수님의 능력은 한 마디로 말하면 살리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죽을병에 걸린 사람도 살립니다. 아니, 죽은 사람도 살립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능력입니다. 구약 이사야 35장 5-7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때 눈먼 사람의 눈이 열리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뚫릴 것이다. 그때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하지 못하던 혀가 기뻐서 소리칠 것이다. 그렇다. 사막에서 물이 터지고 강물이 광야로 쏟아질 것이다. 타는 듯한 모래밭이 물웅덩이로 변하고 말라 버린 땅에 샘물이 솟아날 것이다. 자칼이 뒹굴던 곳에는 풀 대신 갈대와 파피루스가 자랄 것이다.”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액면 그대로 모든 사건이 다 일어날 것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있던 분들이 일어나 춤을 출 것입니다. 중풍병으로 누워 계신 분들이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참된 회복축제가 그날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에게 우리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오늘 기도하고 찬양하며 나아가는 자에게 능력으로 임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정신적, 육체적 질환이 나을지어다! 관계가 회복될지어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입니다. 그분은 구약에 예언된 놀라운 능력을 가진 메시아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도 이 능력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말에도, 표정에도 살리는 능력이 있기를 바랍니다.마음은 있지만 능력이 없다면 슬픈 일입니다. 한번은 심각한 바이러스로 인해 갑자기 죽은 자매의 장례식을 집례 했습니다. 결혼을 앞둔 그 자매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분에게는 마음먹은 것을 완벽하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시기로 결정하면 얼마든지 도우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민족 가운데 부흥을 주시기로 결정하시면 얼마든지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 셋째, 예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앞서 말씀드린 백부장에 대한 일곱 가지 내용은 다 중요합니다. 저는 크리스천들이 인격적이고 의리가 있고 성실하기를 바랍니다. 다 중요하지만 예수님은 그것들보다 단 한 가지, 믿음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혈통을 보시지 않았습니다. 직업, 성품을 묻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창15:6, 합2:4) 믿는 자가 의로운 자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입니다. 백부장의 행동 가운데 힌트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믿음은 부르짖는 것입니다. 간구하는 것입니다. 혈통 따지지 않고, 조건 따지지 않고, 형편 따지지 않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윤리란 ‘마땅히 행할 바’입니다. 기독교 윤리란 ‘마땅히 크리스천이 행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독교 윤리가 시편 50편 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통 받을 때에 나를 불러라. 내가 너를 건지겠고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이것이 종교요, 기독교요, 믿음입니다. 백부장이 잘 한 것은 그가 문제를 끌어안고 주님께 나온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어떤 형편이든지 주님께 나아와 도와달라고 한다면 주님께서는 그것을 큰 믿음으로 보십니다. 주님께서 모든 권세를 갖고 어떤 일이든지 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주님께 도와달라고 하는 행동을 믿음으로 보십니다.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무엇을 통해 여러분을 평가하시겠습니까? 저는 이 백부장의 믿음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나아갈 때 예수님은 회복의 능력을 실행하십니다. 할렐루야! 다가오는 약속의 성취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내가 힘들어도 병들어도 이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믿음이 있는 한 사람으로 주님 앞에 엎드리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꿈보다 강력한 것이 약속입니다.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저는 이 민족 가운데,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100% 믿고 인생을 거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고쳐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분에게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을 믿고 주 앞에 엎드릴 때 모든 문제들이 풀려 나가는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