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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용서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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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예수님이 꿇어앉으신 것처럼 우리도 꿇어앉아, 꼼짝없이 매인 사람들(제자들)의 더러운 부분을 만져주고(발을 씻겨주고) 사랑 없는 그들을 사랑으로 씻어주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썼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하지만 나는 잘못이 없어. 속인 건 내가 아니야. 거짓말한 건 내가 아니야. 잘못한 쪽은 내가 아니란 말야.”

당신은 말할 것이다. 과연 당신 잘못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도 잘못이 없었다. 그 방에 있던 모든 이들 중 다른 사람으로부터 발 씻김을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발을 씻어 주셨다. 마땅히 섬김 받아야 할 분이 오히려 다른 이들을 섬기셨다. 예수님의 모본의 진수는 화해의 가교를 잇는 짐이 약자의 몫이 아니라 강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잘못 없는 사람이 손 내미는 자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옳은 쪽에서 먼저 나서서 잘못된 쪽의 발을 씻기면 십중팔구는 양쪽 다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피차 발을 씻기게 되는 것이다. 반드시 알아야 한다. 관계가 성공하는 것은 죄 있는 쪽이 벌을 받아서가 아니라 죄 없는 쪽에서 베푸는 긍휼 때문이다.

최근 친구들과 식사를 함께 한 일이 있다. 한 부부가 자기들이 겪고 있던 폭풍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는 10년도 더 된 남편의 외도 행각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줄로 잘못 생각하여 비밀로 했다. 그러나 결국 밝혀졌다. 말할 것도 없이 아내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상담자의 조언을 받아 이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며칠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도망갈 것인가, 싸울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그래서 이들은 기도했다. 얘기했다. 걸었다. 생각했다. 이거야말로 아내가 분명히 옳은 경우였다. 아내는 남편을 떠날 수도 있었다.

그보다 덜한 이유로도 많은 여자들이 그렇게 해왔다. 아니면, 그냥 부부로 남아 남편의 삶을 생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는 여자들도 있다. 그러나 아내는 다른 반응을 택했다. 여행 열흘째 되던 날, 남편은 자신의 베개 위에 놓여 있는 카드 한 장을 보았다. 카드에는 이런 문구가 인쇄돼 있었다.

“당신 없이 무엇을 하기보다는 당신과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

그리고 그 문구 밑에 아내의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당신을 용서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계속 함께 걸어요.”

카드는 대야였고 펜은 물을 담는 바가지였다. 거기서 순결한 자비가 흘러나왔다. 그 자비로 아내는 남편의 발을 씻었다. 어떤 갈등은 이렇게 대야의 물로만 풀 수 있다. 당신의 삶 속에 당신의 자비를 목말라하는 관계가 있는가?

당신의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 중에 당신의 은혜의 확신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랑이 조금도 의심가지 않게 해 주셨다. 당신도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맥스 루카도, 예수님처럼, 복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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