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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사 49: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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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약속을 잊은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상처는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고통과 시련가운데 그대로 두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 꿈을 잃어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약속이 있었지만 현실의 고통과 시련에 짓눌려서 무기력해지고 꿈을 잃어버리고 마음에 좌절을 갖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14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시온은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셨구나. 주께서 나를 잊으셨구나.’”여기서 ‘시온’은 시온의 백성들 곧 이스라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에 대한 약속이 있었지만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있는 현실 앞에서 좌절감을 맛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잊으셨다’는 절망적인 언어로 미래에 대한 좌절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4절은 13절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13절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희망찬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4절에는 절망적인 신음으로 가득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희망찬 메시지를 선포하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절망의 신음소리를 내기 원하십니까?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말을 했습니다. 미래의 문을 스스로 닫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현실의 고통과 슬픔과 아픔 앞에서 좌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정적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죽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희망을 붙들고 죽으십시오. 그것이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통과 시련 앞에서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미래는 닫힙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나아가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뀝니다. 죽음이 생명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사랑 ‘너를 잊지 않겠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절망과 좌절의 말 다음에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15절입니다. “어머니가 자기의 젖먹이를 어떻게 잊겠느냐? 자기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떻게 가엾게 여기지 않겠느냐? 혹시 그 어머니는 잊어 버려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하나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어떻게 어머니가 젖먹이를 잊겠느냐”는 것입니다. “자기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떻게 가엾게 여기지 않겠느냐? 혹시 잊어버릴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랑은 남녀의 사랑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입니다. 특별히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사랑하는 때가 젖먹이일 때입니다. 아이가 크면 혹시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젖먹이일 때는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약 열왕기하 6장 28-29절을 보면 부모가 자식을 죽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배가 고파서 자기 아이를 삶아 먹은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절대적이지만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혹시 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젖먹이 아이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억 만 분의 일이라도 버리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너무 살기 힘들어서 엄마가 아이와 동반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를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인간의 부모는 혹시 버릴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릴 확률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약속을 흔드는 의심 신앙생활에서 가장 큰 위기는 의심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면, 말씀을 의심하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왜 의심할까요? 고난을 겪으면 의심합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이 들면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의심이 없기를 바랍니다. 의심이 오는 통로를 보면 첫째 마귀의 역사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인간과 하나님의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지도 않고 믿지 못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마귀는 “정말 이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라고 작은 의심을 주었는데 아담과 하와가 이것에 걸려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의심이 올 때 영적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사람에게 온 것인지 마귀에게서 온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둘째, 무지입니다. 성령을 알지 못하고 막연한 추측과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의심이 생깁니다. 성경과 하나님을 오해하게 됩니다. 셋째, 상처입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의심합니다. 옳고 그름은 상관없습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 때문에 일단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상처가 있으면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넷째, 자존심과 잘못된 고집입니다. 잘못된 성격이 있으면 믿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조건 반대부터 합니다. 어떤 사람은 믿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제가 보니까 믿지 않는 것도 믿음입니다. 믿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보다는 의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 안에 있는 자존심, 고집, 무지, 편견, 귀신의 세력이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말씀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미래가 열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절대 미래를 만들지 못합니다. 저는 온누리교회 모든 성도가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의심과 편견과 비판이 없기를 바랍니다. 인내로 맺는 열매 마태복음 14장 31절을 보면 물 위를 걷다가 물에 빠진 베드로를 보며 예수님께서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했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을 보았을 때는 물에 빠졌습니다. 여러분은 물 위를 걸을 수도 있고 물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갖느냐, 어떤 긍정적인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은 두 가지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물 위를 걷는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야고보서 1장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나무를 심으면 한 자리에 오래 두어야 합니다. 나무를 심어놓고 마음이 급해서 옮기고 또 옮기면 결국 나무는 죽습니다. 한 곳에 나무를 심었으면 물과 비료를 주고 기다려야 합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믿음에는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씨를 뿌렸다면 열매가 열릴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열매가 맺힙니다. 성경에는 의심하지 말라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요 14:1, 사 41:10) 우리에게 의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예가 출애굽기에 있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애굽을 빠져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했는데도 3일 후 물이 떨어지자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또 2달 후 먹을 것이 떨어지자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바위에서 샘이 터져 나오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홍해를 가르신 분이 물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는데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다 주십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원수가 너를 떠날 것이다” 16절입니다. “보아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이 언제나 내 앞에 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젖먹이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리고 16절에는 손바닥에 새겼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요즘 많이 하는 문신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이름을 손바닥에 새긴 것입니다. 문신을 볼 때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잊지 않으십니다. 또한 네 성벽이 언제나 내 앞에 있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을지라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희망과 믿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러면 부활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약속, 축복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귀에 들리지 않아도, 손에 잡히지 않아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가십시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환상을 17절부터 보여주십니다. “네 자녀들이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그리고 너를 무너뜨리고 꼼짝 못하게 했던 사람들은 너를 떠날 것이다.”하나님께서 앞서 세 가지 이야기로 우리를 잊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이후에 새로운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네 자녀들이 돌아오고 있고, 너를 무참하게 짓밟은 세력이 떠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곧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곧 떠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그들은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축복의 세력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북한, 일본 등의 세력이 떠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축복의 세력이 오고 있음을 믿습니다. 현상이 되는 환상 이것을 이사야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직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사람들은 이것을 봅니다. 이 사람들이 본 환상이 무엇입니까? 18절입니다. “눈을 들어서 사방을 둘러보아라. 모두들 모여서 네게로 오고 있다. 여호와께서 맹세코 말씀하신다. 너는 그들 모두를 장신구처럼 주렁주렁 달아 입고 신부처럼 그들로 온 몸을 꾸밀 것이다.”17절은 괴롭히는 세력이 떠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은 신부처럼 그들을 장신구로 꾸밀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조금 더 구체적인 환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약속을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의 축복의 그림자가 조금씩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문이 열립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생각이 열립니다. 인생이 열립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았다면 이미 축복이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왔을까요? 19절을 보십시오. “보아라. 네가 버려져서 쑥대밭이 됐고 땅이 폐허가 됐지만 이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땅이 비좁을 것이고 너를 집어삼킨 사람들은 멀리 떠나가 버릴 것이다.”이런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을 견딜 수 없었던 그들에게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대한민국 땅에도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임할 줄 믿습니다. 말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환상을 보는 것입니다. 이 환상을 본 사람들은 고통에 짓눌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이 환상을 본 사람들은 그 기간을 쉽게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환상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 기간이 지겹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인생이 광야에 있을지라도 신이 납니다. 불안과 절망 속에 있지만 광야의 생활이 흥분이 되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열방에서 돌아오는 자녀들 여러분,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법은 광야 속에서 환상, 비전, 꿈을 봅니다. 이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기가 막힌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홍해가 갈라지게 하시고, 샘이 터지게 하시고,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20절입니다. “잃은 줄로만 알았던 네 자녀들이 네 귀에 대고 말할 것이다. ‘이곳은 내게 너무 좁습니다. 내가 살 만한 더 넓은 곳을 마련해 주십시오.’”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신약 시대에 나오는 교회의 부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을 통해 복음이 왔습니다. 2천 년이 지난 이후 한국에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남미에서, 아프리카에서, 러시아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사야가 봤습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는 흰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이 거대한 환상을 보십시오. 이것을 보는 사람은 이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는 사람은 이 세상의 어떤 악의 세력도 이겨 내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이 이 환상을 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군대, 하나님의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광야 같은 이 세상도 축복의 동산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예비된 약속의 성취 21절입니다. “그러면 너는 속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자식을 잃고 더 낳지 못하는 몸이 됐는데 누가 내게 이 아이들을 낳아 주었을까? 포로로 끌려가서 버림을 받았는데 누가 이 아이들을 키웠을까? 가만 있자, 나만 홀로 살아남았는데 이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내가 낳은 것도 아니요, 키운 것도 아니요, 불러 모은 것도 아닌데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방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 앞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먹을 것이 없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업이 부도가 나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환경이 불행한 것은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환상, 비전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암에 걸려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북한의 핵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강대국의 물리적인 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걱정해야 할 것은 이 비전, 환상,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던 저주의 세력은 떠나갈 것이며 축복의 세력이 임할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흔들리지 마십시오. 그 길을 계속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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