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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식일의 주인되시는 예수님 (눅 0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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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의 주인되시는 예수님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과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과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갈등이 표면화 되어 예수님과 종교지도자들은 자주 논쟁을 벌였습니다. 예수님과 논쟁하는 사람들 누가복음 5장에는 세 가지 논쟁이 나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하신 것에 대한 논쟁입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는데 어떻게 인간이 죄를 용서한다고 하느냐?’가 논쟁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내가 바로 하나님이다’라고 하십니다. 둘째는 세리를 제자 삼는 것에 대한 논쟁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와 창녀를 죄인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삼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는 금식에 대한 논쟁입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신랑의 친구들이 혼인날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굶을 수 있느냐? 지금은 잔칫날이요 때가 되면 나의 제자들도 금식할 때가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종교지도자들 간에 사사건건 논쟁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6장에 안식일에 대한 논쟁이 나옵니다. 이 논쟁이 빌미가 되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이 선포될 때 주일의 본질이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1절입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을 지나가시는데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었습니다.”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밀밭을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그 당시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였습니다. 밀밭을 걸었던 것은 낭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은 것입니다. 왜 먹었을까요? 이곳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마태복음 12장 1절을 보면 ‘배가 고파서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안식일인가 이러한 제자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2절입니다. “그러자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이오?’”바리새파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지적합니다. 당시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사형죄에 해당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말은 ‘당신들 죽을 죄를 지었소’라는 말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일까요? 도둑질을 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신명기와 레위기를 보면 배가 고플 때 이웃의 밭에 들어가서 손으로 이삭을 따서 먹는 것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낫을 대면 도둑질이고 손으로 따서 먹으면 도둑질이 아니라고 신명기 2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한 행동은 도둑질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의 행동은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일까요? 안식일에 노동을 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에 추수 노동과 탈곡 노동을 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손으로 밀을 딴 것은 추수 노동이요, 손으로 비빈 것은 탈곡 노동임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런 비판과 시비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근본 목적과 본질을 3절과 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제사장만 먹게 돼 있는 진설병을 자신이 먹고 또 자기 일행에게도 나눠주지 않았느냐?’”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지적에 즉답을 피하시고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 하십니다. 사무엘상 21장 1절에서 6절에 기록된 다윗이 행한 사건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 놉이란 땅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다윗은 삼일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는데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먹을 것을 달라 하니 ‘그냥 먹는 떡은 없고 하나님께 드렸던 거룩한 떡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그 일행은 하나님께 드렸던 진설병을 받아먹었습니다. 이 일로 다윗은 죽지 않고 후에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예로 드시며 ‘규칙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며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목적이다’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5절입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인식일의 주인이다.’”‘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말의 첫 번째 뜻은 ‘내가 바로 하나님이요 내가 바로 신이다’입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23장 3절에 보면 ‘여호와의 안식의 날’이 나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했고 하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내가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내가 바로 하나님이다’라는 선포입니다. 이 폭탄선언을 바리새인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됩니다. 안식일의 본질과 목적은 무엇입니까? 구약성경 출애굽기 20장 10절을 보면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니… 아무 일도 하지 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하지 말라’가 아니라 뒤에 나오는 말씀이 더 중요합니다. 11절을 보면 “여호와가 6일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안식일에 복을 주고 거룩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하늘과 땅과 별들을 모두 만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 일을 멈추라는 말입니다. 일을 멈추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임을 기억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기 위해서 바쁜 일상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위해 일을 멈추라 더 직접적인 말씀이 신명기 5장 15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던 것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쭉 뻗친 팔로 너희를 거기서 이끌어 내셨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종 되었던 땅에서 구해내셨다는 것을 꼭 기억하기 위해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노동하지 않는 것이 안식일의 목적이 아니라 일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구세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안식일의 목적입니다. 여기서 ‘기억한다’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옛 일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내가 만나는 것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억하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창조주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은 ‘예배를 위해서 일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 27절에 예수님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인간의 육체가 쉬기 위해 안식일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일주일 중에 하루를 불편하게 하기 위해 안식일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주일날 일하면 너 죽어’라고 위협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일날 네가 나를 기억하고 나를 만나면 네가 살 것이다’라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우리는 피조물임을 인정하십시오.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내가 한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일주일동안 열심히 돈을 벌다가 일을 멈추고, 공부하다가 그 일을 멈추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고 나를 지키시고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때 우리에게 축복과 회복이 있습니다. 주일은 복을 받는 날입니다. 축복과 회복의 날 하나님은 안식일을 축복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주신 목적은 회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본질과 목적도 회복입니다. 살리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그토록 바쁜 일정 중에서도 하나님과 만나야 합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주일날 이 예배가 살아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본질을 가르쳐 주십니다. 6-11절입니다.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거기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고 안식일에 예수께서 병을 고치시는지 안 고치시는지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앞으로 나오너라!” 그러자 그가 일어나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과 악한 일을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으냐? 사람을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으냐?” 예수께서는 그들 모두를 둘러보고는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을 펴 보아라!”그가 손을 펴자 그의 손이 회복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화가 나서 예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의논했습니다.”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이 사람의 손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 사건이 안식일의 논쟁 바로 뒤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임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해야 할 일 안식일에 예수님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심으로 안식일에 가장 중요한 것이 회복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6-11절 말씀에서 중요한 표현이 세 가지 나옵니다. 첫째 ‘선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고소할 구실을 찾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해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과 악한 일을 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옳으냐고 질문하십니다. 둘째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사람을 살리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으십니다. 셋째 ‘회복’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그의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정하셨습니까?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 회복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무엇을 기대해야 합니까? 선한 일, 살아나는 일, 회복되는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날 무엇에 바빠야 합니까? 내 일이 아니라 선한 일, 사람을 살리는 일, 회복시키는 일에 바빠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주일날 회복의 역사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주일 동안 살면서 힘들고 낙심한 분들이 예배 가운데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토대로 주일이 회복되고, 주일이 모델이 되어 일주일의 모든 날이 회복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식일을 구별한 것은 하루는 주님 뜻대로 살고 나머지는 자기 마음대로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2장 28절을 보면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안식일뿐만 아니라 나머지 6일도 주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의 비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하루를 구별하셨을까요? 우리는 명절에 부모님과 친척들을 찾아뵙습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명절에는 가족을 찾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구별된 명절을 잘 지키면 부모님과 관계가 좋아지고 평소에도 식구들과의 관계가 좋아집니다. 구별된 안식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날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회복되는 날입니다. 이 날을 모델 삼아 나머지 6일도 안식일처럼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이 나머지 6일도 승리합니다. 주일을 우습게 여기고 주일에 예배도 드리지 않고 마음대로 살면 나머지 6일도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신기한 것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이 날에 인간이 해야 할 본질적 목적 즉,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억하고 예배하면 나머지 날들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날이 온전히 하나님과 교제하는 회복이 있는 날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머지 날들도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정직하십시오. 속이지 마십시오. 거룩하십시오. 주일을 모델삼아서 예배드리는 모습으로 사람을 만나십시오.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삶이 예배가 되도록 하십시오. 소극적으로 노동을 하지 않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회복시키는 일을 하십시오.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찾아가십시오. 전화를 걸고 봉사하고 돈을 쓰십시오.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고아원도 찾아가고 양로원도 찾아가십시오. 적극적으로 회복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십시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지 마십시오. 바로 지금 행하십시오 둘째, 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쳤을까요. 당시에는 안식일에 죽을 것 같지 않으면 다음날 고쳤다고 합니다. 손이 마비되었다고 죽는 것은 아닌데 왜 예수님께서 하필 안식일에 고치셨을까요? 예수님은 종말론적으로 하루하루를 사셨습니다.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오늘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하셨습니다. 그날이 안식일이든 아니든 상관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해야할 일은 미루지 않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배를 드리다가 화목할 일이 있으면 빨리 재물을 두고 지금 가서 화목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일은 기회가 없는 것처럼 오늘 사랑하고, 내일은 기회가 없는 것처럼 회복시키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루지 마십시오. 주일의 목적이 회복이요 나머지 날들의 목적도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기회가 없는 것처럼 돈을 사용하십시오. 오늘 주님을 만나십시오. 오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오늘 하면 내일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마십시오. 주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예배자가 되십시오. 사랑으로 베푸십시오. 다른 사람을 회복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하십시오. 종말론적으로 사십시오. 오늘이 바로 지금 회복의 기회임을 알고 주 앞에 무릎 꿇고 사랑을 베풀며 사는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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