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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라엘의 구원과 이방인의 구원 (사 45: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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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구원과 이방인의 구원 성경의 중요한 논쟁중의 하나는 이스라엘의 구원과 이방인의 구원이 어떤 관련이 있느냐 입니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평화로우면 세계도 평화롭고, 이스라엘이 전운에 휩싸이면 세계도 전운에 휩싸였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세우시고 나라를 만드신 것은 오늘날의 이스라엘처럼 이스라엘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믿음의 조상으로 주시고 특별히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신 것은 이스라엘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방인을 위한 이스라엘 이런 고귀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나라, 백성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스라엘을 가리켜 선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러운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런 계획과 목적을 망각하고 이방인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적대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공격을 받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많은 나라 중에서 유독 이스라엘만 오랜 세월 동안 백성들이 나라를 잃어버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학살을 당하고 고통을 겪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표적입니다. 왜 그럴까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대로 행동하지 않고 정반대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온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축복의 도구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고난과 수난이 계속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통해 메시야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이 지상에서 가장 메시야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로마서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이방인에게 흘러갔지만 어찌되었든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해답은 회개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메시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특별히 그들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아랍 세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스라엘로 인해 팔레스타인이 구원을 받고 헤즈볼라가 구원을 받고 아랍 세계가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로 인해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뉴스에서 보듯이 이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죽이는 비극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회복되는 열방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고레스 왕을 세워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이 돌아오면서 일어날 세 사건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첫째, 이스라엘이 돌아오면 주변에 있는 열방들이 돌아옵니다. 45장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집트가 벌어들인 소득과 에티오피아가 벌어 놓은 재물이 네게로 넘어오고 스바의 거인들이 네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이 네 뒤에서 터벅터벅 걸으며 사슬에 묶인 채 네게로 넘어올 것이다. 그들이 네 앞에서 절하고 빌면서 ‘틀림없이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그 밖에 다른 누구도 없습니다. 그 밖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 두 가지 요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와 스바의 재물과 소유물과 거인들이 다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정치적인 의미보다 영적인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온 열방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감탄과 감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 진짜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라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개는 모든 열방의 회개로, 이스라엘의 회복은 모든 열방의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로마서와 이사야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사역입니다. 해답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대로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받아들이고 아랍 세계를 섬기고 팔레스타인에게 구제의 손길을 펴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팔레스타인을 감싸서 숨통이 막혀 죽게 만들수록 더 나쁘고 비참한 결과가 생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은 이방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고 다른 민족과 비교할 수 없는 탁월성을 주셨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작은 이스라엘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비극을 막는 방법은 이스라엘이 이방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아랍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상처가 너무 깊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사랑과 용서만이 승리합니다. 끊임없이 복수하고 보복하면 해답은 없습니다. 당하고 또 당하지만 용서하고 또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야 감동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과 이방인과의 구원관계는 오늘 크리스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예수믿고 구원받고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끼리 예수 잘 믿고 축복받고 천국에 가는 것입니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이 세상에 들어가서 빛과 소금이 되는 특권, 영적으로 무지한 그 사람들을 섬기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과 똑같습니다. 크리스천의 본질은 섬기는 것입니다. 모슬렘도, 공산주의자도 섬겨야합니다. 크리스천들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약한 자를 섬겨야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 목적입니다. 우리가 축복받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마약중독자, 알코올중독자, 도박중독자, 성매매 여성들, 게이, 레즈비언 등 우리는 우리와 질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그들에게 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처럼 사는 그리스도인 저는 이번에 수해지역에 하루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은혜를 많이 받고 왔습니다. 제가 굉장히 놀란 것은 봉사하는 목사님과 성도들의 모습이 교회에서 봤던 것과 많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아침 6시부터 삽을 들고 나가서 봉사를 하는데 기쁨이 충만하고 얼굴이 밝았습니다.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이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 마을 주민들이 다들 감동 했습니다. 마을 이장님께 이야기를 들으니까 마을 주민들은 복구를 위해 오전 7시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온누리 성도들은 오전 6시부터 현장에 나타나더랍니다. 그걸 보고 주민들은 ‘이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이름을 내려고 온 사람들이 아니라 진짜 봉사하러 온 사람들이구나’라는 걸 느꼈답니다. 그 사실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본질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신앙은 관념적이요 이론적입니다. 실제 삶이 없습니다. 삶이 없으니까 우리 신앙이 공허합니다. 아는 것도 많고 본 것도 많은 데 실제 우리 손발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날 보니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온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참 보기 좋았습니다. 주민들은 마냥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수해를 입으면서 하늘도 원망하고 정부를 욕하고 싶은데 저희들의 봉사 모습을 보면서 점점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크리스천들이 이 세상에서 할 일입니다. 위대한 일, 큰일은 아니더라도 도와주고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예수를 믿으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그 사람이 예수를 믿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이 이방인을 위해 태어났듯이 크리스천은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특별히 고아, 과부, 나그네, 힘없는 사람, 병든 사람을 품고 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작은 일 하나라도 고난과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방인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또 한 가지, 교회 존재 목적은 무엇입니까? 화려하게 집을 짓고 아름답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까? 교회의 존재 목적은 그 사회와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교회가 우리 민족, 나라, 국가에 덕이 되고 축복이 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온누리교회가 정치에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사회에 도덕성을 높여주고, 모든 분야를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교회는 투자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를 포기하는 영적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교회, 진짜 크리스천의 모습입니다. 15-17절입니다. “구원자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께서는 참으로 숨어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상들을 만든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움을 당하고 모욕을 당할 것입니다. 모두 함께 창피해서 줄행랑을 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영원할 것입니다. 주께서는 영원토록 결코 수치를 당하거나 모욕을 당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이 원리는 이방인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모든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도와줄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은 미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한국을 모델로 삼고 싶어 합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보릿고개 등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살아났기 때문에 도와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도울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주신 부담감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짓 하지 말고 이런 나라들을 도와야 합니다. 돌아오는 남은 자들 둘째, 이스라엘이 돌아오면 남은 자들이 돌아옵니다. 18-20절입니다. “하늘을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신 분, 땅을 지어 만드신 분, 땅을 견고하게 하신 분, 땅을 황무지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사람이 살도록 지으신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여호와다. 나밖에 다른 이가 없다. 나는 어둠의 땅 어딘가에서 비밀스럽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야곱의 자손에게 ‘나를 찾아봤자 헛수고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 여호와는 진실만 말하고 바른 것만 선포한다. 민족들 가운데서 살아남은 사람들아, 함께 모여 오라. 나무로 만든 우상들을 갖고 다니며 구원해 주지도 않는 신들에게 기도하는 사람아,”20절을 보면 민족들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남은 자들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버려야 할 또 하나의 편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 착한 사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만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사람마저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점을 치고, 부적을 달고 다니는 사람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혹시 부적을 갖고 다니시더라도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오십시오. 알코올중독자, 도박중독자,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도 하나님은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형편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 구원하기를 원합니다. 땅 끝 백성들의 찬양 21-23절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드러내 이야기해보라. 함께 모여 의논해 보라. 누가 이것을 오래 전에 말해 주었느냐? 누가 예전부터 이것을 일러 주었느냐? 그것은 나, 바로 여호와가 아니냐? 나밖에 다른 신이 없으니 나는 정의를 세우고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다. 나밖에는 아무도 없다. 내게 돌아와서 구원을 받으라. 너희 땅 끝에 있는 모든 사람들아. 내가 하나님이니 나밖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한다. 내 입에서 모든 공의로운 말이 나갔으니 결코 번복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내게 무릎을 꿇을 것이고 모든 사람이 내게 자기 나라 방언으로 맹세할 것이다.”셋째, 하나님은 땅 끝 백성까지도 회복시키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은 번복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 나라 방언으로 맹세할 것입니다. 이 환상을 생각하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백성들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한국 아닙니까? 100여 년 전 한국은 황무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땅에 복음의 꽃이 활짝 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에 십자가가 너무 많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꽃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국에는 꽃에 활짝 핀 것입니다. 교회가 이처럼 많은 것은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일본을 생각해 보십시오. 동남아시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곳은 교회가 아니라 우상으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지구상의 모든 종족, 모든 언어, 모든 백성들이 품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요 6:37, 마 24:14, 마 28:19, 막 16:15-16) 온 세상을 향한 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이 아랍을 품어야 합니다. 크리스천이 세상을 품어야 합니다. 교회가 민족을 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질이요 사명입니다. 온누리 성도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힘없는 사람, 고아, 과부, 어린이, 장애인, 마약, 성매매 여성들, 사각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특별히 문화의 오염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저는 예술인, 체육인, 연예인 등에게 뜨거운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통해 대중문화가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교회가 좋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책임이 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저는 이런 비전들을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이 동일하게 가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든지 자원봉사를 하십시오. 반나절이라도 좋으니까 무조건 가십시오. 일을 못하면 같이 있기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분들이 격려와 위로와 희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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