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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지도자의 헌신 (벧전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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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지도자의 헌신(벧전5:1-5)오늘은 우리 수원교회가 74주년을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수원 교회를 세우신 까닭은 수원의 영혼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심으로 계획하신 일들을 행복하게 감당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그 크신 사랑으로 여기에 모인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받은 자여라."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저는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세상에서 불러내어 모인 무리가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74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아침에, 교회의 머리되시고 목자장이 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수원교회 성도들과 모든 직분자들 위에 놀라우신 축복과 은혜를 내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베드로는 누구보다도 교회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도입니다. 주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기뻐하신 후,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이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시었습니다. 또 베드로가 디베랴 바다에 고기잡으러 갔을 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치라"고 세 번이나 부탁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핍박받는 교회들과 고통당하는 교회지도자들에게 서한을 보낸 베드로 전서를 읽고 그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 베드로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진실이 있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가득찬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 마지막 종결부문인 5장에 가서 베드로는 '교회에 장로들에게' 특별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한 가문이나 지파의 어른을 장로라고 했고, 신약에서는 감독들과 목자들이라는 용어와 장로라는 말을 교체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파마다 신약에 나오는 장로들에 대하여 해석이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장로교회에서는 성경의 장로들에 대하여 목사와 장로 모두가 장로라고 합니다. 목사는 가르치는 장로이고 장로는 치리하는 장로라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와 장로가 함께 모이는 장로회의에서 교회를 이끌고 나간다고 해서 교회 이름을 장로교회라고 합니다. 감리교회에서는 사도직을 계승하는 것은 목사이고, 목사를 감독이라고도 하며, 감독들중의 감독을 선출하여 오늘날까지 감독이라는 직분이 살아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회를 대표하는 감독들이 있고, 전체 감리교회를 대표하는 감독회장으로서의 감독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독이 다스린다는 뜻으로 감리교회입니다. 감리교회에서는 장로는 교회의 중요한 직무를 맡기기 위해서 평신도 중에서 장로들을 임명했습니다. 침례교회에서는 교회는 단지 목사와 집사들로 구성된다고 주장하며 장로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장로들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것인데, 단지 교회의 어른들이라는 뜻이고 교회의 직분 명칭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결교회는 장로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결교회는 본래 감리교회에서 웨슬리의 정신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감독정리를 하였으므로 오랜동안 장로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 선교부 사정이 어려워져서 교회가 재정적으로 곤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교회지도자들이 우리나라의 장로교회가 장로들을 세워 그분들이 헌신적으로 교회를 이끌고 재정에 대하여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을 보고, 성결교회도 재정적인 자립책의 일환으로 장로제도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는 교회역사도 어리고 신자들도 대부분 가난하여 장로님들이 교회 재정의 상당 부분을 책임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결교회는 직제에 있어서 필요성에 따라서 감리교회의 제도를 따르다가 장로교회의 제도로 정책을 바꾸었으며, 단지 모든 치리회의의 장은 목사도 한다고 규정하여 감독제도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교파마다 성경에 나오는 장로직에 대한 해설이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지도자들이라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베드로는 1절에서 자신을 "함께 장로된 자"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사도는 특별히 구별된 직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사도 자격이 있느냐 하는 문제가 끊임없이 시비거리가 되었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직은 최고의 권위를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직접 따르던 분들이고 예수님께 친히 배웠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어떤 직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도중의 사도가 "나는 너희와 함께 장로된자이다"라고 했으니 장로직에 대한 이견이 생긴것입니다. 장황했지만 이렇게 정리할려고 합니다. 현재 각교파의 장로직은 종교개혁 이후 약 3세기 간에 걸쳐서 제도화 된 것이고, 그 이전에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타난 장로는 교회 지도자들 전체를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본문을 잘 살피면 "-하지 말고 오직-하라"라는 구문이 세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지말고"의 교훈을 뽑아보면 부득이함으로 하지말고, 더러운 이를 위해 하지말고,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말라고 하였습니다. "오직-하라"의 교훈을 뽑으면, 자원함으로, 즐거운 뜻으로,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지도자는 교회를 위해, 양들을 위해 봉사하고 사역하되 대가나 권리에 대하여 불만스러워 하지 말고 '오직 나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큰 일을 맡기셨나' 감격하여 행복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목자는 양들을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목사님들로 전도사님들도 장로님들도 안수집사나, 권사님들도, 교회의 모든 지도자는 성도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즐거움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억지로 체면 때문에, 불행한 봉사를 하면 모두가 헛수고입니다. 그날에 주님께로부터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 가정에서 속상한 일이나 직장에서 어려운 일 당한 것을 가지고 교회에 짜증을 내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수고하여도 대가를 받지 않는다고 자랑하며 속으로는 불평스러워 하기도 합니다. 또 교회에서 자기가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면 속상해 합니다. 한마디로 행복하지 않은 지도자의 봉사는 교회를 시험들게 하고 모두의 사기를 꺾게합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고서는 남을 행복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지도자는 죄에서 해방되어 구원받은 사실을 인하여 감사하고 행복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같은 것을 교회의 지도자로 삼으신 것을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목사나 장로나 기타 교회 지도자도 불평 많이 하고 짜증내고 비판 많이 하는 사람을 시키면 안됩니다. 잘 웃고, 욕먹어도 비판받아도 빙긋이 웃고, 언제나 감사하고 언제나 즐거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따지지 않고 충성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내가 그 사람 몫까지 해야겠다고 하는 우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사람은 언제나 공격적입니다. 누군가를 물고 때립니다. 자기의 힘이 약한 것을 늘 서러워 하니까 불행합니다. 그래서 기회만 주어지면 권리를 주장합니다. 주장하는 자세로 합니다. 그러나 그게 잘 안됩니다. 내 맘대로 사람들이 내 권세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인권사상이 발전했습니다. 파출소에 끌려가 사람이 경찰에게 난동하는 세상인데 누가 누구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합니까? 아무도 복종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식이 자꾸만 못된 짓을 하여서 아버지가 매질을 해서 고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심한 정도로 매질을 합니다. 처음에는 "아이구, 아이구"하더니 계속 매를 맞다가 "나 죽는다, 나 죽는다"하다가 벌떡 일어나서 "마음대로 때려! 네 아들 죽지. 내 아들 죽냐?"하더랍니다. 자식도 말을 안 듣는데 누가 때린다고, 책망한다고 들겠습니까?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하십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억지로 섬기지 말고 행복한 마음으로 섬기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아내에게 꽉 쥐어 산다고 놀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가정이 제일 행복하더랍니다. 쥐어 사는게 아니고 아내를 섬기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섬기고, 남편은 아내를 섬기는데 왜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행복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꽉 쥐어 산다고 놀리면 대수입니까? 서로 쥐어 살지 않고 권리를 주장하면 이혼 밖에 더할 것이 있겠습니까? 교회지도자들은 성도들에게 쥐어 사는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어려운 시대입니다. 지도자들은 즐거움으로 교회를 섬기고 섬길 때만 주께서 상주시고 성도들은 존경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교회지도자들을 괴롭게 하는 자들이 되지 말고 겸손으로 허리를 굽히고 순종하여 아무쪼록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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