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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로의 하나님 (고후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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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한 현 세상을 살다 보면 고난도 박해도 시련도 겪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어려움을 겪을 때, 자신의 편이 되어 주고, 자신을 위로해 줄 누군가를 찾기 마련입니다.그래서 자신의 어려움이나, 시련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해 주는 그 누군가에게 사람들은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우리나라는 정신과 의사에게 가는 것을 '정신병'으로 생각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은 정신과 의사에게 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그들은 조그만 일에도 정신과 의사를 찾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신과 의사의 위로의 말 한마디에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인은 어떻습니까? 죄악의 세상을 사는 나그네 생활, 타국 생활 속에서 여러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위로의 말을 해 주는 그러한 위로자를 갖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쉽다고 말씀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경건과 박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딤후 3:12 [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후 4:17은 "이는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리스도인도 힘든 생활 속에서 위로가 필요하고 박해나, 고난과, 치열한 영적 전쟁 속에서 위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과연 그리스도인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존재는 누구이겠습니까?오늘 본문에는 "위로"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 7절에 이르는 짧은 구절 속에서 '위로'라는 단어가 9번이나 나옵니다.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을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잡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여러분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그리스도인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오늘 설교의 결론은 이미 났습니다. 위로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한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어떤 상황이나 여건도 그리스도인을 위로해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주는 위로는 거짓과 위선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여 사람을 신뢰하게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위로를 받기 위해서는 위로의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우리는 먼저 사람의 위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람의 위로우리는 욥의 친구들을 통해 사람의 위로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욥 2:11 [....그들이 서로 약속을 하고 욥과 함께 슬퍼하고 그를 위로하러 왔더라.]욥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려고 왔던 것입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욥의 마음에 상처를 주려 하거나, 욥에게 없는 죄악을 찾아내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그들의 의도는 분명히 함께 슬퍼하고 욥을 '위로'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위로는 결국 욥을 향한 공격이었으며, 결론적으로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욥 42:7-9 찾아 읽을 것.왜 욥의 친구들이 위로 대신, 아픔을 주었겠습니까? 그들은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욥의 친구들은 욥의 상황을 영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았고, 육신의 판단으로만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욥에게 위로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아픔만을 가중시켰던 것입니다.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시각을 가져야 하며 영적인 판단을 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판단하게 되면, 위로가 아닌 아픔만을 가중시키게 되는 것입니다.이처럼 사람의 위로는 신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기 때문입니다(영적인 어루만짐이 없이 육신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을 위로하려 하기 때문).저는 98년에 상담자에 대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설교했던 설교의 일부를 그대로 읽어보겠습니다.'많은 조언자들을 두고 성경적인 조언을 듣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마귀는 그러한 인간 상담자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인간 상담자들을 자꾸 신뢰하다보면 결국 속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실수하는 것 중에 하나는 기도하지 않고 서로의 문제를 상담하려하는 것입니다. 그 상담의 주제가 무엇이었던 간에, 주관자는 주님이 되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논리나 이성, 신앙연륜이 주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제나 상담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 할 수 있고, 성경을 펼 수도 있지만, 이미 시작이 인간적인 시작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누가 권면을 많이 해주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신앙 상담자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를 최우선으로 두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역교회의 목자로써 여러분의 신앙상담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시 한 상태에서 저와 교제하고 상담한다면 저와 여러분 모두는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바보가 아닙니다. 저나 여러분보다 최소한 5천 9백년이상 살아온 괴물입니다. 그의 속임수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밖에는 없습니다.'여러분은 지금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까?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혹시 자신의 문제로 인해 위로 받기 원한다면 과연 누구로부터 위로 받기를 원하십니까?성경은 "사람에게 신뢰를 두기보다 주를 신뢰하는 것이 더 나으며"라고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사람의 위로는 거짓이며 위선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위로하시는 분이 있다고 제시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위로는 자칫 욥의 친구들처럼 실패한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죄인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있는 그런 분이기 때문입니다(히 4:15).진정한 위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이끌어 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의 길입니다(이 부분은 그리스도인의 위로를 다룰 때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2. 위로하시는 분(4절)바울 사도는 육신적인 교회인 고린도 교회에게 위로의 하나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말 그대로 육신적인 교회는 육신적인 판단들과 육신적인 일들에 치중했을 것이고, 육신의 열매들을 맺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이 교회에도 환난과 고난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고난과 박해 속에서 위로의 주 하나님을 잊고 인간들의 위로를 원했기 때문입니다.육신적인 사람의 특징은 영적인 문제를 육신적인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닙니다. 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난과 고통과 시련 속에 있는 그 사람을 즉시로 위로자에게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불길 가운데서 타 죽어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사람의 위로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톱으로 팔 다리가 잘려 나가는데, 사람의 위로가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잇는 유일한 분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형제님의 어려움을 나도 이해합니다. 힘든고 어렵죠? 제가 도와드리죠.."가 아닙니다."형제님 주를 바라보십시오. 주님께서 형제를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성경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성경은 위로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요 14:26 [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시리니,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들을 가르치시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들을 생각하게 하시리라.]오순절 이후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 안에 내주하시며, 지속적으로 위로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제시한 분명한 위로자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여러분이 처한 상황과 여건이 어렵고 힘듭니까? 그렇다면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기 원하십니까? 바로 그리스도인 자신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위로를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 없이 인간들이 주는 약간의 위로의 말에 안주하려 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진정한 위로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만이 진정한 위로입니다.또한 "모든 환난"이라고 했습니다. 한 두 개의 환난이나, 여러 개의 환난이 아닙니다. 또한 대부분의 환난도 아닙니다. '모든 환난'입니다. 성경은 '모든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저와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난과 환난과 어려움과 시련이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그 모든 환난에 대한 위로자는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신 주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위로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그런 분이십니다.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위로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다름 아닌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주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만 나아가면 완벽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며, 사그라졌던 소망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 23:4 [정녕, 내가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악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이는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위로하심이라.]

3. 그리스도인의 위로(4절)그리스도인의 위로는 사람들의 위로와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4절 본문은 "우리 자신이....위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위로할 수 있느냐 하면,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입니다.하나님의 위로가 근거가 되기 때문에, 위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인은 근거가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근거가 있기 때문에 죄들의 용서함을 받은 것이며, 주님의 희생의 제사가 근거가 되기 때문에 더 이상 행위가 필요 없는 것이며. 주님의 부활이 근거가 되기 때문에 성도들의 부활도 가능한 것입니다.또한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위로가 근거가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사 40:1 [너희는 위로하라.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그리스도인이 다른 그리스도인을 위로하는 것은 나 자신의 어떠함 때문이 아닙니다(나 자신이 영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위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위로함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여러분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위로를 근거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십시오.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위로가 필요한 그 사람을 주님께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나 역시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누군가를 위로하려 하다면 욥의 친구들의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성경에서 세워 준다는 말씀은 바로 주님 앞에 세워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주님께로부터 고난 중에 위로를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고난 중에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십시오. 그러나 나의 위로가 아닙니다. 기록된 말씀으로 위로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로부터 "모든 환난" 가운데서 위로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자신이 이미 주님께로부터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그리스도인도 위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이러한 사실을 잊고 인간적인 위로로써 접근하게 되면, 욥의 친구들의 위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동병상련"(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동정한다는 뜻으로, 처지가 같은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긴다는 말이다)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러한 뜻일 것입니다.그리스도인 역시 동일한 한 가지 병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의 성품' 곧 '죄의 성품' '육신의 성품'입니다.이 병은 몸의 구속을 입기까지는 지속적으로 우리 자신을 괴롭힐 것이며, 바로 이 병으로 인해 우리는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단 한 순간만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지속적으로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그 위로로써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나의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의 고난(5절)그리스도인의 위로가 넘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5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난과 위로는 연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이 클수록 위로도 크기 때문입니다.이 세상에서 편히 산 사람과 진짜 어렵게 산 사람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감기로 고생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과, 암으로 투병중인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분명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전 생애를 바치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과 자신만을 위해 살다가 엉겁결에 휴거된 사람과는 분명히 주님의 위로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100평 짜리 아파트에 사는 그리스도인이 하늘나라의 저택에 대해 기대하는 것과 10평 짜리에 사는 그리스도인이 바라는 하늘나라의 저택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지속적으로 고난과 박해를 받는 사람이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것과 이 땅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이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는 사람이 바라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의 동참자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을 넘치게 받았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참으로 깊고 넒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성경은 고난과 위로를 같은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병으로 아파 보지 못한 사람은 병자에게 위로할 수 없습니다. 가난으로 어려워보지 못한 사람은 굶주린 사람에게 위로를 줄 수 없습니다. 만약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써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해 위로하신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주님께서는 인간으로써 이 땅에 오셨고 시험을 받으셨고, 슬픔과 죽음 등 인간들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동정하시고 위로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히 4:116 [이는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없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자. 이는 우리가 자비를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발견하기 위함이라.]본문 5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치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겪는 고난은 오히려 넘치는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에 동참자가 된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는 더욱 더 넘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위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7절에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고난에 참여한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참여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께로부터 오는 위로를 더욱 넘치게 받기 원한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의 동참자가 되면 됩니다. 고난이 넘치면 넘칠수록 위로 역시 넘치게 될 것입니다.결론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이 주는 어떤 말로 위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은 기록된 소망의 말씀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 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을 뿐입니다.롬 8:16-17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거니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들이니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공동상속자들이니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받은 것은 함께 영광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5:58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라. 흔들리지 말라.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아니할 줄을 너희가 앎이니라.]고후 4:17 [이는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이 우리를 위하여 훨씬 뛰어난 영원한 영광의 비중을 이루어 가기 때문이라.]여러분은 성경으로부터, 또한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끼리 서로를 위로해야 합니다.인간의 말의 위로는 순간적이며, 육신적인 위로의 말이 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만일 지금 여러분이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누군가로부터 위로 받고자 하신다면, 즉시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위로하시는 분에게 위로를 구하십시오. 주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오늘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에게 위로를 주시기 원하십니다.복음을 위해 힘들었다면, 위로의 주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세상의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견디기 어려웠다면, 주님께 나아가십시오.치열한 영적 전쟁의 포화가 무서웠다면, 주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그리스도의 고난의 동참자로써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위로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내어 좇지 않습니다.돌아온 탕자를 향해 두 팔을 벌여 맞으신 그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하십시오. 탕자의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았습니다.눅 15:21-24 찾아 읽을 것.아버지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위로의 하나님께 나아가 위로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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