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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내 친구는 떡집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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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잔치는 끝났습니다.
“생일 잔치가 아니라 송년회 같아.”

생일날이 I2월 30일인데다가, 워낙 신나게 잘 놀았으니 그런 말을 할만도 하지요. 이렇게 말하던 친구들도 다 돌아갔습니다. 정작 주인공인 다림이는 허전하였습니다. 아마도 종길이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올 만한 친구들 가운데 종길이만 빠졌습니다.
“걔는 왜 안 왔니? 종길이 말이야.”

끝내 종길이가 나타나지 않자. 어머니는 더 참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사정이 있나보죠.”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다림이는 부끄러웠습니다. 종길이는 지난 봄에 전학 왔습니다. 전학 온 지 며칠만에 생일을 맞았습니다. 초대할 친구를 사귀지 못한 형편이었지요. 짝인 다림이는 좋은 친구들을 데리고 종길이 생일 잔치에 갔습니다.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떡이 떠오를 정도로 떡이 맛있었습니다. 그때 마음에 드는 선물을 사려는 다림이한테 끌려 가게를 여러 번 들락거렸던 어머니가 그 일을 잊었을 리가 없습니다.

저녁에 이모가 오고, 사촌들도 와서 생일 잔치가 또 이어졌습니다. 손님들이 다 돌아간 것은 밤 열 시가 넘어서였습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다림이가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여보세요.”
“다림아, 나 종길이야.”

다림이는 내색은 않았지만 오늘 내내 종길이를 기다렸습니다. 아니 처음에는 종길이를 기다렸고, 나중에는 전화를 기다렸지요. 막상 전화를 받고 보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만큼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반응은 그 반대였어요.
“목소리 듣고 다 알았어. 그런데, 웬일이니?”

다림이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쌀쌀해졌습니다.
“나 지금 너희 집 앞 공중 전화야. 이리 좀 나와줘.”
“어머, 이 밤중에······? 싫어.”
“잠깐이면 돼.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전화가 짤깍 끊어졌습니다. 다림이는 제가 먼저 끊는다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는데. 다시 생각하니 종길이가 먼저 끊은 듯도 했습니다. 다림이는 어쩔까 망설였습니다. 전화를 통해서 들렸던, 쌩쌩 부는 찬바람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아무리 미워도 추위 속에 세워둘 수는 없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다림이는 외투를 걸치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대문을 벌름히 열었습니다. 그 틈으로 얼굴만 빠끔히 내밀었습니다.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습니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더 내밀고 골목 쪽을 살폈습니다. 담 아래에 한 아이가 보였습니다. 그는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재게 뗐다 놓았다 하고 있었습니다.

다림이가 대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아이가 다림이 쪽으로 뛰어왔습니다. 바깥 전등불 아래에 들어오자. 종길이는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머, 눈 왔어?”

다림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어둠 속에서지만 길바닥과 앞집 지붕을 살폈습니다. 눈이 내린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종길이는 머리가 하얗고, 어깨도 하얗고, 눈썹까지 하얀 몰골이었습니다.
“응, 이건 눈이 아니야. 쌀가루야.”
“그런데 무슨 볼일이니?”

다림이는 다시 새초롬해져서 물었습니다.
“정말 미안해. 요즘이 섣달 대목이잖아. 종일 엄마 아빠 일을 거들었어. 네 생일 잔치에 잠깐 왔다 갈까 했는데. 우리 떡집에 손님들이 몰려 그럴 짬이 없었어.”

다림이는 눈보다 더 흰 쌀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는 종길이를 다시 보았습니다. 그 사이에 종길이는 부스럭거리며 점퍼 속에서 비닐 봉지를 꺼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앞가슴이 불룩했습니다.
“자, 이거 ······.”
“뭐니?”
“가래떡이야. 엄마가 너 가져다 주라 하셨어. 너 흰떡을 좋아한다며?”
“어머,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번 내 생일 잔치 때 엄마께서 눈여겨보셨대.”

다림이는 얼떨결에 받아들었습니다. 묵직했습니다. 금방 뽑아왔는지 아직 따끈따끈했습니다. 비닐 틈새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랐습니다.
“자. 이것도”

종길이가 또 점퍼 품에서 무엇을 꺼냈습니다.
“그건 또 뭔데?”
“같은 떡이야. 생일 떡은 나눠 먹어야 제 맛이래. 네 이웃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계신다고 했지? 이 떡을 그분께 보내드려.”

다림이는 그 떡을 마저 받아들었습니다. 종길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하늘의 별같이 맑았습니다. 그제야 종길이가 씩 웃었습니다.
“생일 축하해.”

다림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수없이 연습한 말인데. 멋쩍었습니다. 그 쑥스러움을 숨기려는 듯 종길이는 저쪽 골목으로 냅다 뛰어갔습니다. 언 땅을 콩콩 울리는 종길이 발자국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다림이는 그냥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희망을 파는 자동판매기, 김병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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