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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회를 잃지 않는 지혜 (삼상 2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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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잃지 않는 지혜(삼상25:2-13)지난 한 주간은 온 국민이 엄청난 기장 속에 마음 졸이며 지낸 온 것 같습니다.강원, 경기 북부지역에 홍수로 큰 피해가 발생하였다. 1996년에 이어 같은 지역에서 똑같은 홍수 피해를 당한 것이다.그러기에 그 상처는 더 깊고 아플 수밖에 없다. 수방대책을 좀더 신속하고 꼼꼼히 세웠더라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이번만이라도 수방대책이 제대로 세워졌으면 하는 바램이다.수해복구를 위한 당국의 지원도 좀 신속하고 구체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과거의 경험들을 보면 국민들은 많은 성금을 냈음에도 정작 피해를 입은 가정들에는 지원이 제대로 되어지지 않는 것을 많이 보았다. 모든 국민들이 조금씩이라도 거든다면 수해를 당한 이재민들이 좌절하지 않고 다시 기운을 차리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우리 교회도 수재민을 돕는 일에 참여하려고 한다.재난을 당한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을 역으로 보면 우리 모든 국민들에게 이웃을 돌보고 구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이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감당하게 되면 이 재난이 복이 될 것이다.이 후에 하나님이 우리 나라를 다시금 일으키시는 복을 주실 것이다.할렐루야!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예수님 앞에 나아왔다(마12:10-13).그는 한편 손이 말라 오그라들어 있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 하셨다.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손을 내어 밀었을 때 말라 오그라들었던 손이 펴지고 온전하게 되었다.한편 손이 말라 오그라든 이 사람은 어쩌면 이 시대의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다.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기 때문에 손이 말라 오그라든 것이다.이같은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네 손을 네어 밀라"고 하신다.재난을 당한 이웃들을 향하여 우리 손을 펴야 할 것이다.베풀고 나누어주는 손이 오그라들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손도 없어진다. 이웃을 향하여 손을 펼 수 있어야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손이 있다.그러므로 신명기 15:11에 말씀하기를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고 하셨다. A/성경은 적극적인 구제를 가르치셨다.그리스도인들이 불행을 당한 그 이웃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구제하고 돌아보라고 하셨다.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믿습니까?"오직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6).그러므로 구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약속하셨다. 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약속되어 있다.*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구제의 사람 다비다(행9:36-43).도르가라 불리기도 하는 다비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다.다비다는 1세기 욥바 교회의 유능한 교인이었다.다비다에 대하여 성경은 증거하기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고 하였다(36).욥바에 살고 있던 다비다가 죽었다는 전갈을 받은 베드로가 그 집을 방문하였을 때 사람들은 슬피 울며 그의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애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가난한 과부들이 많았다. 그들은 다비다가 생전에 자기들에게 주었던 옷을 보이며 그가 베풀었던 사랑에 대하여 말하였다.베드로가 여인이 누워있는 다락에 올라가 기도하고 여인을 향하여 [다비다 쿰] 하였다.다비다야 일어나라는 것이었다. 순간 그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하나님이 많은 사람 중에 다비다를 특별히 대우하신 것이다. 특별한 은혜를 그에게 주셨다.그는 구제의 사람이었다.*최대의 구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였다.구제는 긍휼히 여김인데 [긍휼]이란?불쌍히 여기는 정도를 넘어서 대신 짐을 져주는 것이다. 불행을 당한 이웃을 우리가 구제하는 것은 작은 짐을 나누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짐을 몽땅 져주셨다.범죄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난 우리를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셨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주셨다. 이보다 더 큰 구제는 없을 것이다.우리로서는 도져히 감당할 수 없는 죄 문제를 하나님이 그 아들을 통하여 대신 담당해 주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멸망과 심판에서 건지셨던 것이다. 우리를 구제하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최고 최대의 구제를 행하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불행을 당한 이웃을 적극적으로 구제하라 하셨다.B/구제하는 것과 기도의 응답에 관계가 있다고 하셨다.*잠21:13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사58:7-9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 가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그리스도인은 기도의 사람이다.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믿습니까?"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우리는 개인적인 자격이 변변치 못한 사람들일 수 있지만 그럴지라도 우리가 기도하고 구하면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할렐루야!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항상 기도한다.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되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고 우리 기도를 외면하시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도움을 주어야 할 이웃을 우리가 외면하는 때문이다.이사야 58:7-9 말씀에서는 재난을 당하고, 환난을 당한 자, 가난한 자를 돌아보면 우리가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에 여호와께서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고 하셨다.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입기를 바라며 많은 것을 간구하지만 사실 구제하고 이웃을 돌보는 것에는 무관심할 때가 많다.그것은 우리의 기도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력이 넘치는 기도, 하나님이 기쁘게 응답하시는 기도는 구제가 있는 기도다. 할렐루야!C/구제하는 것이 구원받은 증거가 된다고 하셨다.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우리가 무슨 선한 일을 했다거나 의로운 일을 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적인 행위로 구원받을 수는 없다.세상 만민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 그렇지만 진정한 믿음은 사랑의 행위로 그 믿음이 증거되어야 한다고 하였다(약2:22).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그 믿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받는 것이다.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의 모습을 닮게 된다. 그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더욱 예수님을 닮게 되고, 예수님처럼 사랑의 모습을 가지는 것이다.*마태복음 25:32-46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그 영광으로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듯 사람들을 분별하시게 되는데 양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나라를 상속하라 하시고,염소같은 사람들에게는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하셨다.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형식적인 믿음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사랑의 실천이 없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하셨다(마25:42-43).그들은 깜짝 놀랐다. 도대체 어느 때에 주님이 주리셨으며, 목마르셨고 옷을 벗으셨으며, 병들고 감옥에 갇히셨다는 말인가?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여기 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25:45). 그들은 교인이었으며, 나름대로는 믿는 사람들이었다.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진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믿음의 합당한 행위가 없었던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그렇지만 그 믿음에는 사랑의 행위가 따른다.*누가복음에는 불의하고 부정한 사람 세리 삭게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았다는 말씀이 있다. 그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배금주의자였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니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으며, 민족을 배신하면서까지 [세리]가 되었던 사람이다.그는 불의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다. 그런 삭게오가 예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삭게오가 예수님을 영접하였을 때에 그는 고백하기를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과 나누겠으며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하였다(눅19:8).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변화가 일어난다. 믿습니까? 삭게오는 가치관이 변했다. 재물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았던 삭게오가 이제는 생명같이 여기던 재산을 베풀고 나누어 줄 수 있었다. 물질 중심의 삶이 변한 것이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삶이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삶으로 변한다.이 세상의 것을 바라보던 삶이 하늘의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삶으로 변한다. 진정한 믿음에는 이같은 변화가 따른다.D/나발은 기회를 잃어버린 불행한 사람이다.본문의 말씀에 소개되는 이스라엘의 나발이라는 사람은 부자였지만 복된 기회를 잃어버림으로 불행한 종말을 맞았다.나발은 갈멜에서 목축을 하였는데 양이 3천, 염소가 1천마리에 달하는 큰 부자였다. 양털을 깍는 날이 되었다.농사로 말하면 추수하는 날이다. 보통 목축하는 사람들이 양털을 깍는 날에는 그 이웃들을 청하여 음식을 베풀며 함께 즐거워하였다.다윗은 그 때에 사울 왕으로부터 쫓기는 자로서 갈멜에 머물렀고 나발이 양털을 깍는다는 소식을 듣고 몇 명의 종졸을 보내어 얼마의 양식을 부탁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발은 다윗을 모욕하고 조금의 양식도 지원하지 않았다.다윗이 나발을 진멸하려 했지만 지혜로운 아내 아비가일 때문에 화를 모면하였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징계를 받아 열흘 후에 죽고 말았다(삼상25:38).

1.좋은 날에 베풀지 못함(8)그는 1년 동안 목축하여 그 결과를 얻는 좋은 날을 맞았지만 그 좋은 날의 기쁨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지 못함으로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자기만을 위하여 왕의 잔치같은 잔치를 배설하고 혼자만 즐거워하였다(36).보통은 추수하는 날에나 양털을 깍는 날에는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고 그 이웃들로 더불어 나누며 함께 즐거워한다. 하지만 나발은 오로지 자기 혼자만 즐거워하였을 뿐 이웃들로 더불어 나눌 줄 몰랐다.좋은 날, 좋은 때를 그 이웃으로 더불어 나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농부가 농사하여 추수하는 것은 그 혼자만의 수고의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심이니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고, 이웃들의 성원이나 도움이 있었고 그들로 더불어 함께 수고한 것이니 이웃과 그 즐거움을 나누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지금은 의미가 좀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회갑을 맞으면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그것은 60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혼자 살아온 것이 아니고 많은 이웃들로 더불어 살아왔으며 이웃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기쁨을 함께 나누며 이웃들에게 대접하는 기회를 가지는 날이었다.나발은 좋은 날에 그 즐거움을 이웃들로 더불어 나누는 기회를 잃어버렸다.*베풀고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때였다.양털을 깍는 날은 경제적으로 큰 수입이 있는 날이다. 그 날에는 누구든지 마음에 여유가 있고 베풀수 있는 날이다. 봉급을 타는 셀러리맨은 봉급을 타는 한 주간은 마음이 가장 여유롭다. 봉급 타기 전 한 주간은 가장 쪼들린다. 그런 때에 손님이 오면 대접하기가 힘들다. 가장 넉넉한 때에 다윗이 나발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어렵고 힘든 때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면 거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충분한 능력이 있을 때였지만 나발은 선을 베풀지 못한 것이다. 능력이 주었졌을 때 그 능력을 자기 중심적으로 쓰지 말고 선한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성경은 말씀하셨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8-19).

2.구제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앞서서 말씀드린 것처럼 구제는 복된 것이다. 하나님은 구제하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 나발에게 도움을 청한 다윗은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었다. 그는 환난을 당하는 사람이었다.그는 사울 왕에게 쫓기면서 그를 찾아 함께 하는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은 당시 사울 왕으로부터 박해받는 사람들이었다. 만약 나발이 이 때에 다윗을 도왔다면 후일에 크게 갚음이 있었을 것이다.다윗이 그리하지 않았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구제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자신이 망하고 말았다.강원, 경기 북부지방에 엄청난 홍수가 닥치고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송두리채 잃어버린 많은 이재민들이 실의에 빠져있다. 이들은 지금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이같은 현실은 역으로 보면 우리에게 구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복된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선교의 사람 바울이 드로아에서 보았던 환상이 잇었다.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에게 손짓하여 말하기를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 하였다(행16:9). 바울이 보앗던 환상은 오늘 엄청난 홍수와 재난의 현장에서 우리를 향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그들의 손짓이며 음성이다.이제 우리는 그들의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 기회를 잃지 않아야 한다.

3.감사의 기회를 잃어 버렸다(15-16)사실 나발은 다윗에게 크게 감사하고 사례하여야 했다. 나발의 목동들이 갈멜에 거하며 목축하는 동안 다윗과 그의 무리들이 함께 갈멜에 있었지만 다윗은 한번도 그들에게 해를 입힌 일이 없었다.오히려 다윗과 그의 군사들이 나발의 목장을 안전하게 지켜주었다. 당시 양을 치는 곳에는 어디서나 약탈이 일어났다.맹수들의 약탈은 물론이고 이방부족들이 쳐들어와 약탈하여 가는 것이 비일비재하던 때였다. 하지만 용장 다윗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갈멜을 넘보지 못하였던 것이다.그러므로 나발의 목장이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공이 컸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발은 마땅히 다윗에게 감사하고 사례하였어야 한다.그렇지만 나발은 오히려 다윗을 모욕하고 사례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윗은 그에게 말하기를 나발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라고 하였다(21). 그래서 다윗이 크게 분노하였으며 군사를 보내어 그를 진멸하려 했던 것이다(13). 복된 사람은 감사할 기회를 잃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합당하게 감사드리며,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드리며, 이웃의 은혜를 알고 감사드린다. 감사의 기회를 잃지 않는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솔로몬은 그 아비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왕이된 그는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였었다.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그곳에서 은혜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3천 번제를 드렸다. 하나님은 감사의 기회를 잃지 않고 합당하게 감사하는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복을 더하여 주셨던 것이다(왕상3:1-15). 나발은 감사의 기회를 잃어버림으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었다.-결론-무엇 때문에 나발은 선한 기회를 잃어버린 것일까요? 성경은 나발을 가리켜 [완고하고 행사가 악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3). 마음이 완악한 사람, 행사가 악한 사람은 선한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 것이기 때문에 누구와도 결코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내 것]이라는 개념이 더욱 강하다. 어떻게 하든지 내 것을 더 많게 하고,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생각이나 가치가 되어서는 안된다.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청지기 삶을 고백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청지기다.청지기에게 내 것은 없다. 생명도, 가정도, 재물도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바르게 관리하려는 자세,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참여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청지기의 삶이다. 우리가 선한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은 청지기 의식을 상실한 때문이다.청지기 의식이 분명하게 되면 선한 기회를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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