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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사 65: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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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사상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사상 하나를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구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천국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은 오래 못산다는 것입니다. 세상 것들을 모두 놓고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세상을 떠나고 나면 어디로 가는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가. 이것은 모든 인류 초미의 관심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 세상은 끝이 아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때가 되면 누구든지 떠나는 것이다. 그 후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히 9:27) 우리가 세상을 살아온 대로 심판을 받게 되고 천국과 지옥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이사야 65장까지 왔는데 이사야의 클라이맥스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구약적 의미에서의 천국입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비하고 약속하신 것이지만 두 번째는 모든 인류를 위해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다음에 올 약속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을 다 살고 나서 죽으면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당신이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이 땅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아주 독특한 것입니다. 유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하나님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일은 기억나지 않을 것이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다.”(17절) 새 하늘과 새 땅은 사람이 만든 것도 사람이 상상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첫 번째 특징은 창조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번도 상상해본 일이 없는, 한 번도 경험해본 일이 없는, 한 번도 우리가 가져본 일이 없는 아주 새로운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를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 하나님을 만난 순간 제일 먼저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못 느끼는 사람입니다. 눈 뜨기 시작하고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하기 시작하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세상에 없는 평화와 기쁨과 환희와 감격을 죽어서 천국 가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 순간부터 그것이 경험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아주 독특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창조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창조라는 말을 좀 심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창조라는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가 ‘발견했다, 창조했다’라는 것은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한 것처럼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몰랐던 것이고 발견하고 안 됐던 것을 알았을 뿐이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것을 인간이 그 후에 발견했을 뿐입니다. 창조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사(Asa)’라는 단어를 쓰는데 유(有)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입니다. 있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기록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겠다고 할 때 사용한 단어는 우리가 말하는 창조라는 것과 다릅니다. 성경에서 굉장히 독특하게 쓰는 창조라는 단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했을 때 쓰는 ‘바라(Bara )’라는 단어를 씁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셨을 때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창조입니다. 인간이 만드는 창조는 유(有)에서 유(有)를 만드는 창조고 하나님이 만드는 창조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창조입니다. 예를 들면 태초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니까 빛이 생겼습니다. 그 전에는 빛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우주만물 모든 것은 무(無)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해와 달, 우주를 만드신 것입니다. 또 인간도 어떤 선(先) 물질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이 아담과 이브입니다. 항상 새롭고, 새로운 나라 이렇게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천지창조처럼 새롭게 창조하신 하나님만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 때 미리 계시가 있었습니다. “낮에는 해가 더 이상 너를 비출 필요가 없고 달도 네게 빛을 비출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네 영원한 빛이 되시고 네 하나님께서 네 영광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네 해가 다시는 지지 않을 것이며 네 달은 더 이상 기울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네 영원한 빛이 되실 것이니 네 슬픔의 날도 끝날 것이다.”(사 60:19-20)이 세상의 핵심은 해입니다. 해가 없으면 세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해가 없고 밤에 달도 없다고 했습니다. 해가 지지 않고 달이 더 이상 기울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태양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영원한 빛이 된다고 했습니다. 해 아래 있으면 슬픔이 있고 눈물이 있고 고통이 있고 죽음이 있습니다. 슬픔도 고통도 눈물도 죽음도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상해보지 못한,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 그곳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앞에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것은 뜯으면 헌것이 됩니다. 새로울 때는 흥미가 있어도 헌것이 되면 싫증을 냅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은 새롭고, 또 새롭고, 새롭습니다. 항상 새롭습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은 감동입니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계 21:1)요한계시록에서도 핵심적인 말을 하나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전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람이 상상했었던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너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18절에서도 창조라는 말이 또 나옵니다. “그러니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기뻐하고 영원히 즐거워하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의 성읍으로 창조하고 그 백성을 즐거움의 백성으로 만들겠다.”(18절)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나라 두 번째 새 하늘과 새 땅은 기뻐하고 영원히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영원히 기뻐해야 할 것이 있고 영원히 찬양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새 나라인데 거기에 중심 도시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도 두 개가 있습니다. 헌 예루살렘이 있고 새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헌 예루살렘은 지금 이스라엘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이 있다고 했습니다. 신랑을 위해서 신부가 단장을 하는 것처럼 새 예루살렘이 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라가 있고 도성이 있고 그 도성에 사는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백성은 새 백성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새 백성 이렇게 삼박자가 맞춰지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별명이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새 하늘과 새 땅, 기쁨의 예루살렘입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과 싸우는 비극적 예루살렘입니다. 폭탄이 터지고 테러가 일어나는 예루살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만든 예루살렘일까요. 아닙니다. 새 예루살렘은 그런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살롬의 예루살렘입니다. 거기에는 기쁨이 있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예루살렘을 보고 기뻐하고 내 백성을 보고 즐거워할 것이니 울음소리와 절규가 그 안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이다.”(19절)세 번째 새 하늘과 새 땅은 아비규환이 없는 곳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눈물과 통곡과 슬픔과 절망이 없는 곳입니다. 상상만 해도 전율이 올만큼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자녀로 삼아주시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기막힌 축복입니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나라 “거기에는 며칠 살지도 못하고 죽는 아기가 더 이상 없고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노인도 없을 것이다. 100세에 죽으면 ‘아주 젊을 때 죽었구나’ 하고 100세도 채우지 못하고 죽으면 ‘저주를 받았다’라고 말할 것이다.”(20절) 이 말은 새로 창조된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생명이 충분히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충분히 보장될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는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어린 아이, 노인, 백세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계시의 관점에서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영원이라는 설명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우리는 병들고 여러 가지 재앙과 재난으로 인해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사람들마다 자기가 지은 집에서 살고 자기가 심은 포도원에서 열매를 따 먹을 것이다. 자기가 지은 집에 다른 사람이 살거나 자기가 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먹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백성은 나무처럼 오래 살겠고 그들이 손수 만든 것을 닳을 때까지 쓸 것이다.”(21-22절) 다섯 번째 새 하늘과 새 땅은 안녕과 안정과 번영이 약속된 정직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는 불법의 나라입니다. 다 안 그런 척하고 살 뿐입니다. 정도 차이만 있고 모두 비슷합니다. 잘 사는 사람은 상상하지 못 할 만큼 잘 살고 가난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이 가난하게 살고, 억울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이 억울하고 악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이 악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람마다 자기가 지은 집에서 자기가 산다고 했습니다. 대개 세상에서는 자기가 집짓고 자기가 못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자기가 지은 집을 적군이 와서 빼앗아 가지 않고 전쟁이 없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자기가 농사지은 것을 자기가 먹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심은 포도나무를 내가 따 먹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백향목과 상수리나무와 같이 잘 뻗은 나무처럼 쑥쑥 뻗은 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불행의 씨앗이 없는 나라 이제 하나님의 나라의 여섯 번째 특징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헛고생을 하지 않을 것이고 불행의 씨앗이 될 자식은 낳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백성이 되고 그들과 그 자손도 그렇게 될 것이다.” (23절)사람들은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행복한 결혼을 하고 행복한 자식을 낳기 원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안 생겼습니다. 죄악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아비규환의 세상이고 불합리와 부조리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이 오면 헛고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불행의 씨앗이 될 자식을 낳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지나온 삶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나라가 당신에게 임하는 순간 불행의 씨앗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복 받는 백성이 되고 그들과 그 자손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저주가 없고 불행이 없고 실패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축복의 자식입니다. 축복의 도구입니다. 이제부터 나로 말미암아 내 인생과 내 후손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주는 끝났습니다. 불행은 끝났습니다. 이 세상의 불행의 파도를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막아 주셨습니다. 사탄을 뿌리째 뽑아 주신 것입니다. 기도는 응답되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대답하고 그들이 아직 말하고 있을 때 내가 들어주겠다.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짚단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을 것이다. 그들이 내 거룩한 산 어디서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없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24-25절) 24절에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으면 기도는 이미 응답됐고 응답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대답하고 여러분이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대답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신비스럽습니까. 세상은 늑대가 어린양을 잡아먹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늑대와 어린양이 함께 풀을 뜯어먹는다고 했습니다. 사자는 고기를 먹지 풀을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되면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먹는다고 했습니다. 죽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뱀이 흙을 먹을 것이다’는 뱀은 파충류이기에 닭도 잡아먹고 개구리도 잡아먹고 다 잡아먹는데 그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 거룩한 산 어디서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비규환, 생존경쟁 속에서 서로 죽이고 먹고 먹히는 비참한 살육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이 세상은 서로 음모를 꾸미고 사기치고 속이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도덕과 윤리를 말하면서 안 그런 척하고 삽니다. 인간의 속은 전쟁입니다. 인간의 속은 이미 죽음입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외롭습니다. 절망적입니다. 인간은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 불안하기에 눈을 뜨고 죽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고 인간의 모습입니다. 구원과 회복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하나님의 나라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려지기를 바랍니다. 경험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승리하면서 살고, 웃으면서 살고, 사랑하면서 살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죽이고 미워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면서 살고, 베풀면서 사는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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