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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창 11:2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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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창세기 12장을 공부하게 됩니다. 1장부터 11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많은 실수와 시련을 거쳐 하나님의 비전을 이룰 사람이 되었을 때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이름도 바뀌어 지기를 바랍니다. 이름이 바뀌지 않더라도 의미가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영적인 사건입니다.

이 아브라함으로부터 구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에 대하여 성경에서 몇가지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10장 21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셈의 후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셈의 후예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벽돌을 발견한 인간들은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께 도전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온 세상에 내고 싶어 했고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인간중심의 사회, 문화를 가르켜 ‘바벨문화’라고 말합니다.

셈의 7대손 가운데 데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1장 24-26절을 보십시오.
나홀은 이십구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데라는 칠십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데라의 아버지는 나홀이었습니다. 데라는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입니다.

죄악세상 속 구원의 혈통
이 말씀에서 인간의 수명에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최초의 인간을 만드셨을 때에는 죽음이 없이 영원히 사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인간에게 들어옴으로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인간의 평균수명은 9백세 내외였습니다. 그런데 셈대에 들어오면 4-5백년대로 줄어들고 아브람과 나홀대에서는 2백년내외로 더욱 줄어듭니다.

편을 보면 모세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 기도에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라는 말이 나옵니다. 인간의 수명이 칠십에서 팔십정도로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줄어든 이유는 죄가 관영했기 때문입니다.
데라와 그의 가족은 갈대아 우르라는 곳에 살았습니다. 데라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막내 아들인 하란은 일찍 죽었습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갈대아 우르라는 지역은 지금의 후세인이 통치하는 남부 이라크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당시 정치, 경제, 권력이 집중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역이 인도까지 이루어졌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갈대아 우르를 중심으로 살았습니다.29-30절을 보십시오.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죽은 하란에게는 세명의 딸 사래, 밀가, 이스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아브람과 나홀과 결혼했습니다.

30절을 보면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사래가 아이가 없었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사래는 결혼할 때 부터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불임녀였습니다. 우리는 나중에 사래가 이삭을 낳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사래에게 ‘네 몸에서 아들이 있으리라’고 전해 줍니다. 그때 사라는 ‘내가 경수가 끊어진 이 나이에 무슨 아이가 있겠는가?’라고 마음속으로 비웃었습니다. 사라가 나이가 들어 경수가 끊어지기도 했지만 임신을 할 수 없었던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시는 분입니다. 나이가 들었을 뿐만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에서도 구원의 완성을 위해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와 그의 가족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땅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메시지를 주십니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을 믿는 일이 보편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백성에게 음성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믿음은 과거를 떠나는 것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살던 곳, 자신에게 익숙한 곳을 떠난다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고 지방에서 서울로 옵니다. 아브람은 정치와 경제, 모든 문화의 중심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 다른 민족에게로 떠난다는 사실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민족과 고향을 떠납니다. 마치 이민을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이란 떠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주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23번 정도 이사를 했습니다. 1년에 한번 정도 이사를 한셈입니다. 이사를 간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하게 말년을 보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움직이기를 원하고 떠나가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하고 모험을 하기 원합니다.

여러분,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지 아니하면 새 사람의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떠나지 않으면 시작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신앙의 갈등은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않고 새사람이 되려는데 있습니다. 떠나지 않고 출발하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믿음의 세계로 가려는 것 보다는 현재의 삶이 부서지지 않게 하려는데 신앙의 목적이 있습니다. ‘내 자녀, 내 사업을 도와 주십시오.’ 그것을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이란 출발함에 있습니다. 예수믿기 전,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과거의 쓴뿌리들이 나를 붙들어 놓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 두지 않고 출발을 시키셨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약속한 땅, 믿음의 땅이 아님으로 새로운 세계로 가기위해 기득권과 옛사람을 벗어버리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떠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두번째, ‘그들은 가나안 땅, 약속의 땅으로 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신앙이란 ‘-부터-에게로’입니다. 떠나는 것이 있어도 목적이 없으면 방황하게 됩니다. 떠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느날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데라의 가족이 가려고 했던 곳인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의 땅으로 가는 과정에서 하란에 이르러 거기서 거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에 가다가 휴게소에 내려서 그 곳에서 기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휴게소에서 살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목적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두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 마라톤과 같습니다. 끊임없는 경주입니다. 항상 평탄하게 갈 수만 없습니다. 때로는 힘이 들고, 목이 마르고, 지치고, 쉬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뒤돌아 서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할 곳은 골인지점입니다. 주변에 아무리 좋은 환경이 있고 안락한 곳이 있다고 해도 그곳에 머무르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곳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땅에는 기근이 있었습니다. 또 그곳에는 이미 일곱족속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환경은 좋았지만 그 땅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적인 전쟁을 해야 했고 옛사람을 몰아내야만 했습니다. 결코 신앙생활은 뜬구름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고,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고, 귀를 의심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계속 가는 것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데라는 이백오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데라는 끝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약속의 땅으로 가지 못하고 하란에서 죽었습니다. 데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사람은 시작할 수 있지만 끝을 맺지 못합니다. 힘들고 어려우면 도중에 포기하고 맙니다. 끝까지 어떤 고난이나 위험도 무릅쓰고 약속의 땅을 향해 가야하는 동기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환경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데라가 칠십세에 아브람을 낳았고 창세기 12장 4절을 보면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칠십오세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때 데라의 나이는 약 1백 45세쯤 이었을 것입니다. 데라는 하란에서 머무르기를 주장했겠지만 아브람은 하란을 떠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아브람은 부인과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지만 데라는 하란에서 그의 인생을 마칩니다. 비전을 가진 자와 비전을 가지지 않은 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은 자의 차이입니다.

여러분도 예수 믿고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위해 하나님이 필요한 것인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전을 위해 내 삶이 쓰여지는지 심각한 영적투쟁을 하셔야 합니다. 적당히 살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직업을 가진 이유가 무엇인지, 결혼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면 후에는 비참한 결론을 맺게 됩니다.

여러분이 가고 있는 길은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길입니까? ‘너는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듣고 아브람은 믿음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믿음의 행진 쉬지 말아야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도중하차입니다. 잠깐 쉬어야 할 일을 영원한 것처럼 여기고 가는 목적을 잃어버리고 변경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데라와 아브람의 차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데라와 같이 살다가 죽습니다. 데라는 하나님이 원하는 곳에 가지 못하고 도중하차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죽지 않는 한 새사람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과거가 단절되지 않는 한 미래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지 않고 부활하려고 합니다. 자존심도 상하지 않고, 옛사람의 모습도 가지고 있으면서 새 세상을 원합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죽지 않으면 새 사람은 절대 태어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고 부서지고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부도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부도로 인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기회를 가질수 있습니다. 두려워만 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거기에 소망과 희망과 기대와 새로운 출발이 있습니다.

12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드디어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장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결정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불교나 유교를 만났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우상숭배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점을 치고, 하나님이 아닌 거짓신에게 절하며 인생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12장 1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람을 만나는 사건을 보게 됩니다. 이 사건은 복의 사건입니다. 아브라함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자녀들과 온 인류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을 받게 되는 사건입니다.

12장 1절에서 발견하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첫번째, 아브람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가셨습니다. 믿음은 내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날 아브람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대담하게 버리라, 기득권을 버려라, 지금까지 설계해온 인생을 포기하라. 그러면 진정한 복된 나라, 약속의 땅을 보여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여행은 내가 떠나지만 그 여행을 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비밀을 하나씩 발견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를 이세상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부모를 이용해서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조상은 중요합니다만 숭배할 대상은 아닙니다. 조상이 여러분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당신을 보내시고 약속의 땅을 약속하시며 기득권과 인간중심적인 것을 버리고 출발하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안될 일도 불확실한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히브리서 12장 2절을 보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0장 31절과 시편 62편 1-2절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하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이 길을 걷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영광가운데 우리를 두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내 손에 잡히지 않는 뜬 구름같은 일이라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길을 가십시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택하심
두번째, ‘하나님이 아브람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입니다. 12장이후에 나타나는 아브람의 행적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가 택함을 받을 만한 탁월함이나 믿음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우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하고 실수가 없어서 택한 것이 아니고 믿음이 있어서 택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도 아니고 즉흥적인 선택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여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택해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믿음없음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무조건 사랑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는 조건이나 이유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데는 조건이 없습니다.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보상할 수 없는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때려서라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사랑’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한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원망이나 불평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말이 있다면 ‘황송합니다. 죄송합니다.’이런 말뿐일 것입니다. 그리고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남을 가르칠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 자격도 없는 나를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형제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고난의 흔적만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입니다. 이 말씀속에서 또 한가지 발견하는 사실은 믿음은 확실한 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증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이 아니라 ‘지시할 땅’입니다. 참된 믿음은 내용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명령을 내렸든지, 성경이 어떤 사건을 기록했든지간에 그 말씀을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죽지 않고 다시 사는 법이 없고 떠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법도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을 갖기 원한다면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옛 모습을 버리지 않고 새 믿음은 생길 수 없습니다. 과거를 포기하지 않고, 과거의 거미줄을 끊지 않고서는 탈출할 수 없습니다. 과거를 청산하십시오. 새로 출발한다는 것에는 참으로 많은 모험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우리의 시작은 미숙합니다.

‘과연 가능할까?’ 새출발은 멋지게 시작되지 않습니다.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여러분은 바른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늦게 가든 일찍 가든 그 길을 곧바로 간다면 영광스러운 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넘어지고 깨어져 힘들지만 믿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떠나 미래로 가고,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죄를 떠나 거룩으로 갑니다. 이것이 믿음의 여행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믿음의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서 발목이 잡힐 뻔 했지만 그는 믿음의 행진을 계속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가고 있는 그 길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원하는 그 길입니까? 아니면 도중하차해서 쉬고 계십니까?

여러분, 아무리 멋있고 화려한 유혹이 있다고 할지라도 빨리 그 길을 벗어나 고통스럽고 힘들지라도 그 길을 가십시오.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화려한 땅은 아닙니다. 전쟁과 개척을 거쳐야만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힘든 상황이 있고 손해보고 생기는 유익이 없어도 여러분이 그 곳에 있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우리는 그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있는 곳이 모든 것이 풍성하고 좋은 곳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뜻이 아니거든 그 자리를 떠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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