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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사장의 위임식 (레 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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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8장 9장 10장은 대 제사장의 대한 여러 규례가 기록이 되어 있다. 그 중 8장은 위임식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위임식은 출애굽기 28장-29장 특별히 29장에 있다.
28장에는 제사장에게 영광스러운 옷을 입히는 이야기가 있고 29장은 위임식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레위기의 기록은 이전에 있었던 출애굽기의 명령을 이제 실행하라는 의미로 다시 기록된 것이 아니라 각각의 문맥에서 말씀을 하신다. 출애굽기 29장에도 위임식이 있고 레위기 8장에도 위임식이 있는데 이것은 출애굽기 28장에 산에서 명령했던 것을 드디어 이제 레위기에 와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즉 시행한 것이 아니라 출애굽기는 출애굽기로서 문맥이 있고 레위기는 레위기로서 문맥이 있다 그런 말씀이다. 그러면 거의 비슷하게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두 위임식을 비교해 보면 출애굽기의 위임식의 의미와 레위기의 위임식의 그 문맥적인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언약 체결이 주제다. 그러니까 위임식도 거기에 맞추어져 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중에서 택하는데 모세의 혈족이다. 네 형 아론 이스라엘 중 네 형 아론을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제사장이 입은 거룩한 옷은 성소 속한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이라고 28장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위임식은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기 위해서 거룩하게 하는 것이며 아론의 거룩한 옷은 그 아들들에게 돌리며 칠일 동안 위임식을 행하며 단을 속하며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한다.

제사장과 단을 거룩하게 하고 제사장은 이 단에서 매일 여호와께 예물을 드린다. 이것이 출애굽기 29장에 있는 큰 흐름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언약 체결이 중심이니까 하나님께서 성소를 지어라 하고 나서 제사장의 위임식 규례가 나오고 그 다음 이 제사장이 봉사하는 향단에 대한 문제가 나온다. 출애굽기가 그런 순서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제사장이 누구냐? 위임할 때 보면 28장에는 옷을 아름답게 해 입히는데 그것은 성소에 속한 아름다움이고 그 옷을 입혀서 위임식하는 위임식이 29장에 있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 특징이 무엇이냐면 처음부터 위임을 해라하고 위임식을 해라는 말이 처음부터 나온다. 출애굽기 29장은 그런데 위임을 하는데 어떻게 위임을 하냐면 제사장은 이스라엘 중에서 택하는데 모세의 형님 그러면 그 모세는 누굽니까? 언약 중보자로 서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해서 친밀한 교제 언약 체결에다가 강조를 두고 있고 그리고 위임식은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인데 칠일동안 위임식을 행하는데 단을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한다. 그러고 제사장을 위임하는데 강조점은 아론에게 옷을 힙히고 아론의 옷을 후손에게 입히고 대대로 제사장직을 행한다 하는 것이 강조점이다.

그러니까 모세 혈족 중에 아론 그 아들들에게 영화로운 옷을 입히고 그리고 대대로 그 옷을 입게 하고 그리고 칠일 동안 행하는데 단을 깨끗하게 하고 그 단에서 제사장이 날마다 번제를 지내고 그런 문제가 출애굽기 29장에 큰 흐름이다.

레위기는 그런 흐름이 아니라 이제는 언약 체결이 되어 있는데 언약의 하나님이 성소에 함께 계시면서 내 앞에 들어와 예물을 드려라 하는 친밀한 교제가 강조 점이다. 자기 백성 삼으시는 언약을 맺는데 강조 점이 아니라 친밀한 친교가 레위기의 강조 점이다.

레위기는 언약 백성에게 허락하신 거룩한 친교가 주제이다. 위임식은 회막 문 앞에 모인 회막 앞에서 행하며 이 앞에는 이스라엘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불러라. 그랬는데 레위기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회중들을 전부 회막 앞으로 불러야 된다. 그리고 네 형 아론 그렇게 말하지 않고 아론과 그 아들들 그 회중 앞에서 위임을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위임식은 회막 문 앞에 모인 회중 앞에서 행하며 단과 제사장을 관유와 피로 연합시키기 위해서 제사장을 속하다. 칠일 동안 위임식 기간동안 회막문에 거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레위기는 언약 백성에게 허락하신 거룩한 친교 즉 성소안에 친교가 주제다. 그러면 위임식을 레위기에서는 어떻게 행하냐? 온 회중을 회막으로 모이고 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을 이것 이것 가지고 오게 해라. 그렇게 해서 온 회중앞에서 행하는 것 회중의 대표로서 행한다는 것이 강조고 출애굽기는 모세 혈족 네 형님 이스라엘 중 네 형님 아론과 그 아들들 왜냐하면 모세가 언약 중보자로 서 있거든요. 레위기 지파에 대한 문제가 거기 있는데 레위기는 그것이 아니라 온 회중을 모으고 아론과 그 아들들로 이것 저것 가지고 오도록 해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회중의 대표로서 제사장 그 제사장에게 허락하신 성소에 있는 친밀한 교제 그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깨끗케 하는 것도 출애굽기는 죄를 속한다 했으면서도 속한다 하는 문제는 제일 뒤에 나오고 강조 점은 아론이 입은 옷을 제사장 그 후손들이 대대로 입는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자다. 그렇게 되어 있는데 레위기는 그렇게 되어 있지를 않고 깨끗게 하는데 관유와 피로 연합시킨다. 관유와 피로 연합시킨 것이 핵심이고 칠일동안 위임식 기간도 칠일동안 정결케 한다는 그런 의미보다는 칠일동안 회막에 거해라 그것이 내 부탁이다. 칠일동안 회막에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언약 백성 삼으신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것은 피와 관유로 성소에 속한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시킬 뿐만 아니라 성소에서 일주일 내내 산다. 칠일은 하나님의 사역의 완성기간 동안이다. 절대로 문밖에 나가지를 말아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출애굽기는 매일 속죄 제물을 드려서 정결케 해라. 왜냐하면 언약을 체결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속죄제를 칠일 동안 드려서 정결케 해라. 그런 말로 칠일 기간이 설명이 되어 있는데 레위기는 칠일동안 내 뜰에 거해라. 그러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서로 비교해봐야 출애굽기는 출애굽기대로 강조점을 잡고 풀수가 있고 레위기는 레위기의 강조점을 잡아서 풀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 문단을 나누면서 설명을 하겠다.

1-9절까지는 위임식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가 있다. 실은 이것이 총 핵심이다. 그러면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비교해 보면 출애굽기는 위임하라 그런 말로 시작되어 있다. 한 마디로 이것이 위임식이다 하는 선언이다. 그렇게 되어있고 예물의 다양한 종류가 있다. 거기서는 레위기의 예물과는 다르게 소제물에 대해서 여러 가지가 있다. 다양한 예물의 종류가 있고 그리고 옷을 입히고 관유를 부어 거룩하게 하는 것이 있고 아론의 아들들도 거룩한 옷을 입혀 대대로 제사장 직무를 행하라. 그것이 출애굽기에서 위임식을 행하라 하는 그 구성 요소들을 구성하는 문단의 내용들이다. 거기보면 다양한 예물의 종류와 그 예물의 특성을 강조하여 대대로 예물을 드리는 직분을 강조한 것이 위임식의 핵심 요소다. 29장에 있는 첫 문단에 있는 내용들이다.

그 예물을 보아도 가령 흠 없는 숫 송아지로, 그리고 예물에 대해서도 기름 바른 무교전병 특성들이 있다. 그래서 예물이 얼마큼 다양하고 풍성한가 흠 없는 것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데 레위기는 8장에 보면 그런 말이 없고 예물의 종류만 단순하게 있다. 레위기 8장 처음을 보면 2절에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과 그 의복과 관유와 여기 보면 속죄제의 숫 송아지 속죄제란 말이 강조되어 있다. 수양 둘 무교병 한 광주리 이런 말만 있다.

그런데 출애굽기 29장을 보면 1절에 제사 직분을 위임하라. 할 일이 이러하니 젊은 숫소 하나 흠 없는 수양 둘 무교병과 기름 섞은 무교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전병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고 그것을 한 광주리에 담고 광주리에 담은 체 송아지와 두 양과 함께 가져오고 여기 보니까 제물이 다양하게 나오고 제물이 특징들이 강조되어 있다.

레위기는 그런 말이 없고 속죄제로 수송아지 하나와 그리고 나머지는 이것 이것 몇 마디로 되어 있다. 그런 기록들이 그 장에 전체적인 주제에 맞추어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출애굽기 29장에서는 제사 직분을 위임하기 때문에 제사직분은 제사지내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예물이 강조되어 있다. 언약 체결이니까 그런데 레위기는 언약의 친교가 강조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와 백성들을 위해서 제사 지내는 자로 레위기는 되어 있다. 8-9장을 보면 그런데 여기서는 친밀한 친교가 강조인데 다양한 제물이 강조가 아니라 친교가 강조인데 그 친교를 보니까 속죄제로 숫송아지 제물은 너무 단순하게 나오고 강조되어 있다면 속죄제만 나와 있다. 이 숫송아지도 출애굽기에서는 흠 없고 젊은 숫소 그렇게 되어 있는데 거기는 속죄제 숫소라 그렇게 되어 있지를 않고 레위기는 속죄제로 숫송아지 그리고 나머지는 제물을 간략하게 그렇게 언급되어 있다. 그러면 여기서는 무엇인 눈에 띄는가? 속죄제가 눈에 빨리 띈다. 그렇게 특징이 있게 기록이 되어 있다.

출애굽기는 속죄제 니 그런 말이 없고 제물의 다양한 종류와 힘있고 풍성한 것 흠 없고 기름지고 이런 말만 강조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말이 아니라 속죄제가 더 강조되어 있다.
그러니 출애굽기는 다양한 예물의 종류와 그 예물의 특성을 강조해서 대대로 예물을 드리는 직분으로서 제사장 직을 강조한다.

레위기는 의복과 관유와 그 다음 속죄제와 예물을 이끌고 회막문 앞으로 나와 회막 문 앞에 모인 회중 앞에서 거룩한 옷을 입히고 행한다. 여기서는 속죄제 예물이 강조되 있고 문 앞에 모인 회중이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는 제사장이 회중의 대표인 것과 속죄제로 깨끗케 됨을 강조한다.
지금 강조 점만 비교해보는 것이다. 출애굽기는 다양한 풍성한 예물을 드리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대대로 드린 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처음 첫 문단을 보면 그런데 레위기는 속죄제 예물을 드린다는 것이 강조다. 회중의 대표로 드린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그 다음 10-13절은 관유를 성소와 제사장에게 부어서 거룩케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기에서는 관유는 아론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부어졌다. 관유를 성소의 장막에 뿌리고 단에 뿌리라 그런 말은 없고 아론에게 붓는 다는 말만 되어 있다. 그런데 레위기는 관유를 장막과 그 안에 모든 것과 단에 일곱 번 뿌리고 단에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고 아론의 머리에 부어 거룩하게 한다. 아론의 아들들도 거룩한 옷을 입혔다. 그것이 이 문단에 나오는 강조 점이다. 출애굽기에 관유는 아론을 거룩하게 하는데 쓰고 레위기의 관유는 장막에 뿌리고 장막 모든 것에 뿌리고 단에는 일곱 번 뿌리고 단에 모든 기구에 뿌리고 그냥 장막과 단을 거룩하게 하고 그러면 좋겠는데 이 문장 특성을 보면 알겠지요. 문장 특성을 보니까 장막에 뿌리고 장막의 모든 기구에 뿌리고 단에는 일곱 번 뿌리고 단의 모든 기구에 뿌려 거룩하게 하고 그런 말이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아론의 머리에 부어 바른다. 거룩하게 하고 그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아론이 아들들과 거룩한 옷을 입혔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아론과 제사장을 함께 거룩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출애굽기는 아론을 거룩하게 했는데 레위기는 장막과 아론을 함께 거룩하게 하고 이어서 아론의 아들들도 거룩한 옷을 입어라 해서 연결을 시키고 있다. 이것은 거룩한 연합이 더 강조가 되어 있다. 관유는 거룩한 생명의 능력을 상징한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성소에 속한 거룩한 능력으로 성소와 제사장을 연결시키는데 특별히 뿌린데 강조 점이 단에는 일곱 번 뿌려라 그렇게 되어 있다. 아직은 못들어 온다 하는 지성소 이야기가 아니라 단에는 일곱 번 뿌려라 그런다. 그 단은 백성이 나와서 제사장을 통해서 제사할 수 있는 곳이다. 성소는 제사장만 들어오지만 단은 백성도 뜰에 들어와서 제물을 잡으면 제사장이 거기다가 예를 한다.

그렇게 해서 자기 백성의 대표로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언약의 친교를 말했을 때 단을 거룩하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 같으면 금상이나 금 향단을 거룩하게 하면 좋겠는데 단에다 일곱 번 뿌려라. 휘장 앞에다 일곱 번 뿌려라 그 말이 아니라 단에다 일곱 번 뿌리고 발라라. 왜 단이 회중의 대표로서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친밀한 친교를 나누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백성과 연합되어 있는 곳이다.

14-17절을 보면 속죄제를 드리라고 나와 있다. 18-21절은 번제를 드린 이야기 22-29은 위임식의 수양을 드리는 이야기가 나와 있다. 이 세 가지 제사는 출애굽기에도 똑 같이 나온다. 그런데 레위기에서는 속죄제 수양은 이야기해도 나머지는 번제로 무엇을 가져오고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속죄제만 전부 나와 있었고 출애굽기는 제사의 이름을 아예 없고 예물의 종류만 다양하게 나와 있었다. 그리고 기록 방식을 보면 출애굽기를 보면 제사법이 앞서고 제사의 이름은 끝에 언급을 한다. 레위기는 그와 반대이다. 출애굽기는 이렇게 이렇게 지내라 이것이 속죄제 니라. 번제를 쭉 지내고 이것이 번제니라. 이런 말로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런데 레위기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속죄제를 드렸는데 이렇게 이렇게 쭉 드렸다. 번제를 드렸는데 이렇게 쭉 드렸다. 위임식의 수양을 드렸는데 이렇게 드렸다. 먼저 제사의 이름이 나오고 제사지내는 법은 그에 따라 있다. 반대로 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알수 있을까요? 출애굽기는 제물이 강조다. 예물을 드림이 강조다. 그러니까 제사의 이름은 간략하게 언급이 되어 있다. 그런데 레위기는 항상 앞서는 것이 강조이니까 제사 이름이 강조 되어 있고 제사지내는 법은 뒤에 따라 있다.
그러면 그 제사 지내는 법들을 해석해 보면 이 제사로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대표자로 자기 백성을 연합시키는가 친밀한 교제문제가 기록이 되겠지요? 속죄제물도 출애굽기에서는 회막문 여호와 앞에서 잡고 피를 단에 드린다 그렇게 되어 있다.

레위기는 피를 단에 뿌려 단을 거룩하게 함을 강조한다. 출애굽기는 어떻게 속죄제물을 지내냐면 여호와 앞에서 번제물을 잡는데서 속죄제물을 잡아라. 하나님 앞에 드림이 속죄제의 강조다. 그런데 레위기는 그렇게 하지않고 피를 단에 뿌리고 단을 거룩하게 한다. 하는 정결법이 강조다. 왜냐하면 출애굽기는 제사장 직을 위임하는 것이라 하나님 앞에 제사 지내는 친교 즉 언약 체결을 강조하는데 레위기는 연합 모든 부정으로부터 깨끗게 하고 성소에 속한 연합을 주는 것 그 친밀한 교제가 강조점이기 때문에 속죄제물을 그 강조점이 단을 깨끗하게 한다 하는 것이 강조다.

가령 14절을 보면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피를 단 네귀퉁이 단의 뿔에 발라 단을 깨끗하게 하고 그 피는 단 밑에 쏟아 단을 속하여 거룩하게 하고 그렇게 되어 있다. 그것이 레위기에서 속죄제물의 강조법이다. 그런데 출애굽기29장을 보면 회막문 여호와 앞에서 송아지를잡고 잡는 장소가 나오고 피를 단 뿔들에 바르고 피를 전부 단 밑에 쏟고 그리고 깨끗하게 하고 하는 이야기는 출애굽기에는 없다. 드림이 강조다.

그런에 레위기는 속죄제물을 드려서 깨끗하게 해라 하는 것이 강조다. 왜 그러냐면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해서 하나님의 단에 속한 연합을 줄려고 하니까 그런다. 그러나 출애굽기는 제사를 지내는 직무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직무 언약의 체결이기 때문에 그것은 예물 드림이 강조지 깨끗하게 하고 하는 것은 강조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레위기는 하나님의 깨끗함이 제사장에게 있다. 부정하면 전부 쫓아낸다. 그런것이기 때문에 속죄제물도 ㄷ을 거룩하게 한다 하는 것이 강조가 되어 있다. 이렇게 똑 같은 사실도 비교해보면 그냥 양쪽에 특징들이 드러난다. 그렇지 않고 이것만 한참 읽으면 강조점을 잡기 어렵고 비교해보면 잡기 좋다.

그리고 죄를 속하려고 성소에 피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제사장의 속죄제물을 진 밖에서 불사른 것은 성소를 봉사하는 제사장의 직분 때문이다. 이것은 출애굽기나 레위기나 같다.
속죄제물은 성소에 들어가서 일곱 번 뿌린 것만 진밖에 나가서 사르는데 이 속죄제물은 단 뿔에 바른다. 단 밑에 쏟고 단을 깨끗하게 하고 아직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 안했다. 그런데도 먹지 말고 진 밖에서 불살라라 하는 것은 제사 직무가 실은 단에서 드린 것은 먹어야 한다. 성소에 가지고 들어간 것은 못먹고 그런데도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 안했는데도 먹지 못하게 한 것은 이것은 제사장의 속죄제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제사장의 속죄제물은 아직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 다음 18-21절을 보면 번제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리는 내용인데 이것은 출애굽기나 레위기의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번제는 깨끗케 하는 것이 강조가 아니라 드려서 헌신한다는 것이 강조점이다. 그러면 출애굽기도 하나님 앞에 예물드리는 직무이기 때문에 드려서 헌신한다는 말이 강조점이고 그리고 여기 레위기도 그렇게 되어 있다. 출애굽기하고 그런 차이점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깨끗하게 한다는 속죄제물 성격보다는 드려 헌신한다는 강조점이기 때문에 드리는 직무인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차이가 없다.

그 다음 22-29절을 보면 위임식의 수양을 드리는 기사기 있다. 실은 이것이 위임식의 핵심이다. 그런데 위임식의수양은 제사직문을 위한 화목제물이다. 특징은 그 피를 제사장의 몸의 오른쪽 지체들에 바르고 또 그 피를 단에 뿌리는 것이다. 이것은 제사장의 전 몸을 단에 임하신 하나님과 한 피로 연합시키는 거룩이다. 이것이 출애굽기나 레위기의 공통적인 성격이다. 그런데도 이 성격을 어떻게 서로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위임식의 제사의 화목제는 다른 화목제하고는 다르다. 일반 화목제는 하나님의 상에서 먹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가슴과 뒷 다리를 드리고 제사장이 그것을 먹고 임자도 이틀까지 먹을 수 있고 화목제가 그것이 특징인데 제사 직분을 위해서 드리는 화목제는 그런 문제보다도 강조점이 피로 연합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화목제의 피를 제사장의 오른 쪽 엄지 발가락 손가락에 바르고 그리고 단에 뿌려야 된다. 마치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할 때 피를 반을 하나님의 단에 뿌리고 반을 백성에게 뿌렸던 것처럼 그렇게 연결을 시킨다.

그런데 그 지체의 대표기관인 오른 쪽 귓 부리들에 바르고 있다. 그것은 전지체를 하나님의 성소에 있는 피와 연합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피로 연합을 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제사장의 화목제물의 특징이다. 제사장은 특별한 친교로 화목제물을 드리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면 출애굽기에서는 단위의 피와 관유를 제사장과 옷에 발라 거룩하게 하며 모세와 제사장의 영원한 몫을 강조한다. 레위기에서는 모세의 음식만 말하고 관유와 피로 거룩하게 하는 것은 후에 언급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출애굽기는 처음에 위임식 수양을 드리는데 제일 처음 나오는 것이 무엇이냐면 단위에 피와 관유를 제사장과 그 옷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그리고 나서 무슨 말이 나오냐면 제사장과 모세의 영원한 분깃이 쭉 기록이 되어 있다. 가슴은 제사장몫이고 뒷다리는 모세의 몫이고 그리고 이 가슴과 뒷다리는 너희의 분깃으로 주었느니라 그 말이 강조되어 있다. 출애굽기29장을 보면 그렇게되어 있다.

그런데 레위기는 이 피를 오른 쪽에 바르고 그 피를 단에 바르고 하는 문단에 출애굽기에서 처럼 제사장의 영원한 몫이 강조된 것이 아니라 모세의 몫만 약간 기록이 되어 있다. 다리는 너 가져라 그 말이 있고 아론의 가족들이 이런 것을 먹어라 하는 말은 안나온다.

그리고 관유와 피로 거룩하게 한다하는 말도 위임식 수양을 드린다 하는 그 문맥에는 안 나온다.그 뒤에 문단에 가서 나온다. 그러니까 순서도 다르다. 출애굽기에서는 피와 관유로 되어 있고 레위기는 관유와 피로 되어 있다. 순서도 바꿔져 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내는 직무를 위임하는 것이다. 그 직무는 하나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는 직무다. 그러니까 피를 바른 이야기가 함께 나와서 그 전몸을 하나님의 단에 있는 피로 거룩하게 해서 연합시키고 그 연합은 제사장의 음식 먹는 몫에서 강조된다. 그래서 그슴과 뒷다리는 하나님의 것인데 모세와 아론이 대대로 먹어라. 그 말이 바로 연결이 되어 있다. 제사 직무가 그 직무다. 예물을 드리고 그 예물을 먹고 마시는 것이 제사 직무다.

그런데 레위기에서는 수양의 제사를 지내라. 이렇게 이렇게 피를 여기 저기 발라라 그 말이 있는 문단에 무슨 말만 있냐면 모세의 몫이 이것이다. 오은 쪽 뒷다리는 약간 나오고 그 다음에 먹는 이야기도 강조가 안 되어 있고 더구나 관유와 피로 거룩하게 하라는 말도 처음에 위임식 수양을 드리는 그 문단에 나와 있지를 안는다.

레위기 8장22부터 보면 위임식 수양을 드릴 때 여기서 위임식이란 말이 나온다. ㅇ렇게 안수하고 모세가 피를 여기 저기 발랐다. 또 24절에 피를 단뒤에 뿌리고 그리고 이제 속죄제의 기름을 드리는 이야기 무교병 드리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다 불살랐는데 29에게 보면 이것이 모세의 응식이라 아론의 응식은 안 나오고 그 다음 30절을 보면 모세가 관유와 단위에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여기 저기 뿌렸다. 이렇게 뒤에 나온다. 그리고 나서 먹어라 하는 이야기기 31절부터 나온다.

그런데 출애굽기 29장19부터 보면 여기서는 위임식 수양이라는 말은 안 나오고 너는 다른 수양을 취하여(출애굽기는 제사법법이 항상 뒤에 가 있다.)아론이 안수하고 그 다음 피를 여기저기 뿌리고 바르고 21절 단위의 피와 관유를 취하여 아론의 옷과 그 몸들에 쭉 바르고 22절에 이는 위임식의 수양이며 이렇게 되어 있다. 관유와 피를 바르는 것이 위임식 수양에 나와 있다. 그리고 나서 드리는 이야기와 먹는 이야기가 쭉 나오는데 26절을 보면 가슴은 네것이다. 그리고 위임식 수양은 가슴은 거룩하고 넓적다리는 거룩하게 하고 28절을 보면 아론과 그 자손에 영원한 분깃이요 하나님 앞에 거제로 드린 것은 전부 아론의 것이니라 그 말이 나온다. 그리고 29절에 보면 아론의 옷을 후손에게 돌려서 칠일 동안 입게 하라 옷 입는 이야기가 나온다.

레위기는 피와 관유로 옷을 거룩하게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출애굽기는 옷 입는 이야기가 그렇게 나와 있다.
그러니까 이런 배열된 구조가 다르다. 이것은 함께 엮어서 하면 어떤 것이 맞겠어요?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것은 각자 레위기는 레위기의 문맥이 있고 출애굽기는 출애굽기의 문맥이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는 제사장으로 위임하는데 강조가 있고 레위기는 그 깨끗함 하나님의 성소에 깨끗함 친밀한 친교 그것이 강조되어 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는 대대로 옷을 입어라 하는 이야기가 강조되어 있고 레위기는 옷을 정결케 하는데다가 더 강조가 되어 있다. 속죄제물도 출애굽기는 예물 드림이고 레위기는 깨끗하게 함에 강조가 되어 있다.

30-36을 보면 관유와 피로 제사장의 옷을 거룩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어서 먹는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 있다. 관유와 피로 제사장과 옷을 거룩하게 하는 것을 출애굽기는 피를 몸에 바르는 것과 예물을 드리며 가슴과 뒷다리는 응식으로 제사장에게 주는 것을 함께 언급했다. 그런데 레위기는 제사장이 회막 문에서 먹는 것과 함께 언급한다. 관유와 피를 옷에 발라라 하는 이야기 뒤에 너희들은 먹을지니 31절에서 먹는 이야기가 나와 있다.

출애굽기 같으면 이것이 앞으로나와 있는데 레위기에서는 뒤 쪽으로 돌려져 있다. 먹는 이야기가 나와 있다. 그것과 함께 언급한다. 그러니까 피와 관유로 바르는 것도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 앞에 드리고 먹는 이야기가 강조되어 있고 그것과 함께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옷을 대대로 입어라 그것과 함께 연결되어 있다. 여기 레위기에서는 그것과 함께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거룩하게 하고 그 다음에 먹으라 이렇게 나와 있다.

그리고 먹는 것도 32절에 보면 고기와 떡에 나머지는 불사를지며 간단하게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출애굽기는 먹는 것도 복잡하게 되어 있다. 제사장이 먹고 뜰에서 먹는데 나머지는 다음날 까지 먹고 불사르고 제사장외에 다른 사람이 먹으면 벌받을 것이고 이런 강조점이 되어 있다. 제사장이 백성이 대표로 제사하는 직무로 위임받았기 때문에 그들만 백성들로부터 취하고 그들만 먹고 제사직무에 설별 구별이 강조되어 있다. 백성으로부터 구별이 강조되어 있다. 그런데 레위기는 그것보다는 오히려 함께 머무르고 하나님과 함께 연합하는 것이 더 강조가 되어 있다. 그래서 레위기에서는 광유와 피를 뿌려 거룩하게 하라는 위치에 출애굽기서는 아론의 옷을 그 아들들에게 입혀서 칠일동안 위임하라는 명령이 있다. 즉 레위기는 피와 관유를 뿌려 거룩하게 하게하는 위치에 출애굽기는 대대로 옷을 입어라 그 말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레위기는 피와 관유로 깨끗하게 함이 강조고 출애굽기는 위임된 제사직분을 대대로 행할지니라 하는 제사 직무가 강조점이다.

먹는 것도 출애굽기는 그들은 위임하고 거룩하게 한 속죄제물이 제사장이 그날에만 먹는다. 날에 강조되고 제사장만 먹어라가 강조되어 있다. 레위기는 관유와 피로 몸과 옷을 거룩하게 함을 얻은 제사장들이 위임식 예물을 먹는데 남은 것은 불사른다. 위임식 예물을 먹는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불사른다고 단순하게 되어 있다. 출애굽기는 속죄제물을 먹는다고 되어 있다. 속죄제물을 먹는 것이 제사장이다. 왜냐하면 죄를 속함받은 결과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제사장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위임식 예물을 먹는데 남은 것은불살라라 그렇게 되어 있고 레위기의 위임식은 칠일동안 회막문에서 나가지 않는다. 칠주야를 회막문에서 거하라는 것이 여호와의 부탁이다. 출애굽기는 칠일동안 피와 기름으로 제사직분의 죄를 속한다. 출애굽기 29장을 읽어보면 그렇게 되어 있다. 칠일도안 매일 속죄제물을 드려서 속해야 한다. 그런데 레위기에서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칠일동안 나의 뜰에 거해라. 이것이 나의 부탁이다 이것이 거듭 강조돠어 있다.

그래서 출애굽기는 언약 체결이 강조인데 제사 직분은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것이다. 속죄제의 결과 먹는 것은 속죄제의 결과다. 속죄제물을 먹어라 그 말은 속죄제의 결과다. 그것은 칠일동안 죄를 정결케 해서 그렇게 되어 있다. 죄의 정결이 제일 끝으로 돌려져 있고 예물드림이 앞에 나와 있다.
그런데 레위기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처음부터 속죄제물과 이러이러한 예물을 준비해라. 속죄제물을 드림으로 단을 거룩하게 한다. 만일에 그 단이 거룩하지 안으면 제사장은 못들어간다. 왜 깨끗한 연합, 깨끗한 친교가 강조이니까? 그렇게 되어 있고 그리고 위임식도 칠일동안 내 뜰에 거해라. 나가면 죽는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끝에 보면 나와 있다. 출애굽기는 속죄제로 말미암은 친교인데 여기 하나님의 성소안에 있는 교제다. 칠일동안 내 뜰에 거해라 그렇게 강조가 되어 있다. 교리적으로 보면 다 속죄제가 토대고 또 목표는 친교이지만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강조점들이 다르다 그 말이다.

레위기는 성소안에 친밀한 친교 정결한 친교가 강조다. 그래서 레위기는 거룩이 주제라 하는 말이 그런 말이다.
레위기에서 제사장의 위임식은 제사장을 회중의 대표자로서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게 한다. 그것은 제사장에게 관유와 피로 하나님께 속한 정결함을 주어 하나님과 하나된 생명을 누리며 봉사케 하시는 친교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하늘 성소에서 봉사케 하신 대 제사장이시다. 그는 십자기에 죽으시고 부활하사 성령으로 교회와 함께 하신다. 말하자면 예수는 위임된 대 제사장이다 그 말이다.
아론의 반열을 따른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라서 위임된 대 제사장이다. 그분은 자기 피를 속죄제물로 드려서 정결케 했고 구약 언어 개념으로 하늘 지성소를 거룩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는 피와 관유로 몸과 옷에 뿌린 것처럼 그는 부활하셨다. 성령으로 부활하셨다. 그것이 그의 생명과 직무의 영광스러움이다. 그는 죽음에 매인 제사장이 아니라 피와 관유를 몸과 옷에 뿌린 것처럼 그는 하나님의 성령ㅇ로 부활하셨고 하나님께 속한 거룩함으로 봉사하는 제사장이다.
칠일동안 머무르라고 그랫다. 칠일은 하나님의 사역의 완성을 말한다. 그는 출애굽기로 하면 칠일동안 깨끗함을 얻은 자이다. 칠일동안 반복해서 예물을 드리는 자요 칠일동안 완전히 깨끗함을 받은 자이다. 그는 영원히 하나님의 성소에 계신 대 제사장이다. 그는 그 친교로 친히 교회에 함께 하신다. 왜 그는 교회의 대표이니까 그러니까 교회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으로 교회에 함께 하신 예수 안에서 신령한 제사장으로 위임된 것이다.
우리가 위임되신 그분안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것이다. 회중의 대표자로 위임되니까 우리는 하늘 보좌에 취임되신 그분안에서 하늘 보좌에 있는 신령한 교제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산다. 그것이 레위기 8장을 교회가 읽는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전에 칠일동안 내 뜰에 거하고 나가지 말아라 얼마큼 친밀하신 말씀이요. 그런데 목사가 당장에 되냐? 칠일은 훈련을 해야 팔일날 제사를 지내지 팔일날 자기와 백성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거든요? 그래가지고 개인 도덕으로 푼 것이다. 바라 이렇게 하고 나서도 아론의 두 아들이 제사 지내다가 10장에서 죽어 버렸잖냐? 그런데 우리는 몇 년이나 연습을 해야 되겠냐? 이렇게 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의 완성 제사장을 자기 성소로 부르시는 친교를 일주일 동안 주신다. 너는 칠일 동안 내 뜰에 거해라. 부탁이다. 나와 함께 하자 그렇게 되어 있다. 그 기간에는 절대 나가지를 말아라. 왜냐하면 친밀한 친교로 주셨기 때문에 그렇다. 그 일이 하늘 보좌에 취임하신 예수 안에서 영원히 완성된 것이다. 그는 하늘 보좌로 위임된 대 제사장이시다.

그전에 모세는 40일동안 산에 올라가서 굶었다. 물도 주지 안았다. 그런데 제사장을 위임할 때 보니까 칠일동안 내 뜰에거 거해라 하면서 가슴과 뒷다리를 준다. 그리고 그는 영화로운 옷만 입은 것이 아니라 단위에 뿌린 피와 함께 연결이 되어 있다. 단과 제사장이 기름과 피로 연결이 되어 있다. 완전한 생명의 풍성함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구별이 없다. 그것이 예수안에서 영원히 성취된 것이다.
구약의 제사는 칠일동안 위임한 것 뿐이다. 날짜를 따라서 그렇게 했는데 예수님은 칠일동안이 아니라 영원히 위임된 대 제사장이시다. 예수는 성령으로 우리안에 거하셔서 신령한 교제를 나눈다. 그분이 누리는 위임된 교제를 우리도 누린다.
만일 예수의 부활하심이 없으면 칠일동안의 위임을 풀 방법이 없다. 그러면 땅에 속한 장막에서 칠일동안 위임한 것밖에 더 이상이 아니다. 그 때는 아직 백성은 들어가지도 못한다. 그들만 들어간다. 만일에 예수님이 오시지 안했으면 이것은 신약 교회의 책으로 읽어 들어올수가 없다. 백성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지 먹지를 못한다. 이제 우리는 예수께서 위임되신 그것으로 우리도 참여한다.

질문이 없는 것이 맞다. 내가 성경을 잘 가르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바르게 증거되면 질문이 없다. 낮에 설교한것처럼 구약 처럼 가나안 땅으로 무엇을 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가 안한가 자꾸 계산이 가능한데 하늘에 속한 것으로 주면 땅에 것으로 계산이 불가능해서 어두운데를 볼데가 없다. 먹고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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