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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규레 (레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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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1장과 22장은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규례다. 그전에는 제사장의 거룩 이렇게 간단하게 붙였는데 그렇게 제목을 붙여서는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그래서 더 구체적으로 붙였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이 규례를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되기 때문에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규례 그렇게 붙였다. 이제 전체적인 요약이다.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규례는 시체와 혼인과 성물을 드리는 것 여기까지는 21장에 있는 내용이다. 성물을 먹는 것은 22장에 있다. 그래서 제사장이 지킬 규례와 그리고 제사장과 이스라엘이 열납되도록 예물을 드리는 규례다. 이것도 22장에 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 앞에 예물 드리는 자가 제사장인데 이런 사람들은 시체와 혼인에 있어서 거룩하게 해야 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먹는 자로서 자신들을 모든 부정으로부터 깨끗케 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드리고 먹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 뒤에 열납되는 예물을 뒤에 붙여서 말씀했다.

핵심 되는 구절은 21장8절 너는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라 그는 네 하나님의 식물을 드림이니라. 너는 제사장을 거룩히 여기라.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는 거룩함이니라. 이 말이 22장 제일 끝에도 거의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금 모세보고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라고 했는데 왜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라 했는가?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는 자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해라. 그리고 모든 백성들은 제사장을 거룩하게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는데 그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 거룩한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자가 제사장이다. 21장2절부터 9절에는 제사장의 거룩이 기록되어 있고 그 다음 10-15절을 대 제사장의 거룩이 기록되어 있고 그 이하에는 여호와께 식물을 드리는 규례가 기록되어 있다.

2-9절 제사장의 거룩이다. 제사장의 거룩과 대 제사장의 거룩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대 제사장의 거룩에서 그 거룩이 강화되어 있다. 읽겠다. 이론 자손 제사장들은 죽은 자로 인하여 더럽히지 말라. 골육지친과 처녀인 자매로 인하여는 몸을 더럽힐 수 있다. 제사장은 백성은 어른인즉 스스로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라. 물론 골육지친 형제나 자매 그렇게 쭉 설명이 되어 있는데 그것은 다 빼고 골육지친과 처녀인 친 자매로 이렇게 줄여서 썼다. 그런데 구약 교훈법은 반복법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요약하면 잊어버리기 쉬운데 골육지친인 형제나 부모나 이렇게 쭉 이어서 쓰고 있으면 읽어보면 그냥 안다. 그런데 자매도 골육지친이지만 결혼해 버리면 그는 아론 가문에 속한 자가 아니다. 그 결혼한 가문에 속한다. 그러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은 친 자매는 골육지친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골육지친을 위해서는 몸을 더럽힐 수 있다. 그 시체를 만질수 있다 그 말이다.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인즉 스스로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아라. 만일에 제사장이 죽은자와 접촉되면 그를 욕되게 하는것인데 무엇을 욕되게 하는가? 백성의 어른으로서 그 자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또 같은 말은 반복해서 설명을 할 것이다. 동심원적인 물결 구조가 항상 있다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골육지친을 위해서는 더럽힐수있다. 그러나 더 크게는 죽은자로 인해서 더럽히지 말아라. 골육지친을 위해서는 더럽힐수 있다. 또 다시 말하기를 백성의 어른인즉 더럽히지 말아라. 이렇게 작은 단락에서도 첫 주제와 뒤에 결론이 맞는 방식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는 설명적인 구조다.

그 다음 것은 이것을 조금더 진행시킨 방식이다. 제사장은 머리털을 밀거나 수염 양편을 깍지 말며 살을 베지 말며 하나님께서 거룩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그들은 화제 곧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지어다. 첫 단락에서는 백성의 어른인즉 거룩해라. 두 번째는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해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백성의 대표로서 여호와께서 식물을 드리는 자인데 앞에는 더럽히지 말아라. 그러나 골육지친을 위해서는 더럽힐 수 있다. 하는 기본적인 단위를 말하고 두 번째는 이제 더럽히는 구체적인 방법이 확대되고 있는데 머리를 밀어서 대머리같이 말고 수염 양편을 깍지 말고 살을 베지 말아라. 왜 하나님께 거룩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아라. 그러니까 이런 일을 안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거룩한 자가 되고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욕이 안되는데 만일에 이들이 머리를 깎아서 대머리 같이 하고 수염 양편을 깎고 살을 베면 하나님께 속한자가 아닌 것 같이된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마 이것은 이방인이 슬퍼하는 슬픈 풍속일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람들 장례법을 잘 모르니까 모르지만 그 당시 가나안과 애굽 배경을 두고 그들이 슬픔을 표현할 때 살을 벤다거나 또 이스라엘 같으면 슬프면 머리는 다 쥐어뜯어서 대머리 같게 되게 하라 그런 말도 있다. 그러니까 아마 이방인들도 머리를 밀어서 더구나 앞대머리가 되게 하던지 수염을 다 뽑는 식으로 양쪽을 다 깎던지 그런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만일에 그들이 그런 식으로 슬픔을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속한자가 아니고 그런 일을 안하면 하나님께 속한자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는 자이니까 이방인처럼 슬픔을 표현하지 말아라 그런 말이다.

제사장은 그 다음 혼인으로 인해서 깨끗해야 한다.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께 거룩함이니라. 결혼을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기생과 부정한 여인과 결혼하면 함께 창기가 되는 것이라고 고전에도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렇게 연합하지를 말아라. 너는 그를 거룩하라. 그는 내 하나님의 식물을 드림이니라. 지금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다. 모세에게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라. 왜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니까 너는 그를 거룩히 여겨라. 나 여호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자는 거룩함이니라. 여기서 다시 거룩에 대한 문제를 첫 시작에서 강조한 만큼 한 번더 크게 강조함으로 단락을 마무리 짓고 있다.

너는 그를 거룩하게 하라. 하나님의 식물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하게 하라. 나 여호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자는 거룩함이라. 그렇게 해서 제일 앞에 거룩하라 한 것을 읽었던 주제적인 것을 다시 한 번 한 단락을 마무리 짓고 있다. 그리고 나서 제사장의 딸이 행음하면 그 아비를 욕되게 함이니 불살라라. 제사장만 부정한 여인과 결혼해서 함께 창기의 몸이 되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제사장의 딸까지라도 그런 일이 있으면 죽이라고 그렇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제사장 가문을 거룩하게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는 시체와 그리고 결혼으로 인한 부정으로부터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것인데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이고 백성의 대표고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는 자이다. 그런데 백성을 대표하는 제사장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소유로 삼으셨고 그리고 그 어른을 불러서 자기 앞에 나와서 식물을 드리도록 했기 때문에 그들은 시체에 있어서도 부정하면 안되고 결혼에 있어서도 부정하면 안되고 심지어 자기 딸까지라도 부정하면 안되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특별히 그들은 이방인처럼 슬퍼해서는 안된다.

지금 본문을 더 요약해서 제가 적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대 제사장의 거룩에 대한 규례인데 형제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예북을 입은 대 제사장은 그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며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하지 말며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성소를 더럽히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위임한 관유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그는 자기 백성중 처녀로 아내로 삼아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 더럽히지 말라.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이 말이 또 끝에 결론적으로 다시 나와 있다. 언약적인 표현법이다.

그런데 대 제사장은 제사장보다 한 등급이 더 높다. 대 제사장은 어떻게 표현이 되어 있냐면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이다.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는 자이다. 그렇게 묘사되어 있는데 대 제사장은 그렇게 묘사되어 있지 않고 기름 부음이 그에게 있고 거룩한 예복이 그에게 있다. 관유로 부은 것은 성령으로 충만케 한 것 생명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고 예복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성소에 위엄을 입고 있는 것이다. 예복은 하나님의 성소의 영광과 같이 되어 있다. 이처럼 대 제사장은 그렇게 되어 있고 그 머리에는 거룩한 관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이방인처럼 대머리 되게 한다거나 수염을 민다거나 그런 슬픈 표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슬픈 표현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때문에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으면 안된다. 왜 그 머리에는 거룩한 기름 부음이 있고 옷은 성소의 영광을 입고 있기 때문에 이것에 어떤 슬픔의 표시를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어떤 시체든지 대 제사장은 접촉하면 안된다. 자기 부모가 죽어도 그렇게 하고 절대로 성서에서 나오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위임한 관유가 그에게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이 성소에 기름을 그에게 부어서 하나님의 성소에서 봉사하도록 했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떤 슬픔도 표현되어 있으면 안되고 자기 아버지가 죽어도 그 죽음에 접촉하면 안된다. 그는 성소에 기름 부음이 그에게 있기 때문에 일체 성소에서 나와서도 안된다.

그리고 아내도 제사장의 결혼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아라 이 정도만 되어 있는데 대 제사장도 그런 말이 함께 쭉 있다. 그런데 특별히 더 강조되기는 자기 백성 중 처녀로 아내로 삼으라 하는 말이 특별히 더 덧붙여 강조되어 있다. 다른 것은 다 빼고 그 쪽만 붙여 놓은 것이다. 자기 백성중 처녀로 아내를 삼아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 더럽히지 말라. 왜 처녀로 삼아야 되고 또 자기 백성중에 해야 되는가? 여기서는 과부나 이혼당한 여인도 안된다고 덧붙여 있다. 그러면 이혼된 여자는 여기서는 자기 죄로 이혼된 여자는 죽지 살아 남지 못한다. 단지 여기서는 수치된 일이 있는 줄 알고 이혼당한 여자지 구체적인 범죄로 이혼당하면 그는 돌에 맞아 죽지 살아 있지 못한다.
그런 항목들이 있는데 다 빼고 여기 대 제사장의 강조된 점만 썼다. 그런데 자기 백성 중에서 얻어야 된다. 여기서 자기 백성은 이스라엘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아론 지파 자기 지파 안에서만 얻어야 된다. 그리고 처녀로만 얻어야 된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대 제사장에서는 그 깨끗함이 한층더 강조되어 있다. 제사장은 자기 백성 중에 얻으라 그런 말이 안나타나 있다. 그러나 아마 제사장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대 제사장은 특별히 명시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지파하고 아론의 지파하고 섞이지 않도록 해라. 만일에 섞어지면 그 백성이 더러워지는 것이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아예 대 제사장은 자기 백성 자기 가문중에 처녀하고 결혼했기 때문에 다른 지파하고도 섞이지 않는다. 뭐 부정한 여자하고 안 섞인 정도가 아니라 다른 지파하고도 안섞여진다. 그래야 그 자손이 더럽혀지지 않는다. 만일에 다른 지파하고 결혼하면 더럽혀 진다 그 말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다음에 이제 제사장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식물을 드리고 식물을 먹는가? 식물을 드리는 것이 21장 후반부에 있고 이제 먹는 규례는 22장에 있다. 아론의 자손중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를 말아라. 흠이 있는 자는 나와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흠이 있은 즉 나와아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요약을 했어도 그 특성을 살리느라고 요약을 했다. 거기서는 흠이 있은 즉 하는 말이 계속 반복된다. 아마 성경 본문을 읽어보면 더 많이 반복되어 있을 것이다.
흠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지 못한다. 요약하면 그 말이다. 그는 하나님의 성물이든지 지성물이든지 먹을 것이나 장안에 들어가거나 단에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이는 그가 흠이 있음이니라. 이와 같이 그가 나의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그런데 그가 흠이 있으니까 하나님 앞에 식물을 드리지 못하는데 먹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하나님 성소에나 단에 가까이 가면 안된다. 왜 그런가? 나의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거룩한 하나님으로 거기 있기 때문이다. 내가 거룩하기 때문에 흠이 있는 자는 내게 예물을 드리지 말아라. 먹을 수는 있지만 절대 나오지 말아라. 나오면 나를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제사장을 백성의 대표로 어른으로 그리고 시체와 부정으로부터 깨끗게 했어도 만일에 제사장 몸 자체에 흠이 있으면 그는 내 앞에 나오면 내가 더러워지니 만나지 말자 그 말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것이 21장에서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규례다.

이제 설명이다. 아론 자손 제사장은 여호와께서 거룩하게 하여 백성의 어른을 삼고 여호와의 화제 곧 여호와의 식물을 드리도록 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소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시체와 혼인으로 인해서 더럽혀서는 안된다. 죽음과 더러움은 성소에 계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다. 성소에서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제사장뿐만 아니라 제사장의 가문 그 딸로 부정하게 되면 죽이라고 그랬다. 그 가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께 거룩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백성의 어른으로 삼으사 성소와 단에 나아와 식물을 드리는 자로 세우신 제사장에게는 백성보다 더한 규례를 주셨고 또 대 제사장에게는 제사장보다 더욱 규례를 주시어 거룩하게 하셨다. 백성은 자기 시체로 인하여 더러워질 수 있다. 그러나 제사장은 골육지친을 인해서는 더러워 져도 다른 사람의 시체를 만지면 안된다. 그런데 백성은 다른 사람의 시체를 만질 수 있다.

그러니까 백성의 거룩 제사장의 거룩 대 제사장의 거룩이 다르다. 대 제사장은 어떤 시체에도 접촉하지도 말며 슬퍼하지도 말며 항상 성소에 있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성소에 속한 거룩한 예복을 입히시고 성소에 관유를 그에게 부으셔서 거룩한 직무를 위임하셨기 때문이다. 항상 성소를 섬기는 직무로 임했기 때문에 성소를 떠나면 안된다.

과부와 결혼하지 못하게 하신 것은 그녀에게도 남편의 죽음에서 죽음의 저주와 권세가 임하였기 때문이다. 구약적인 방식이다. 대 제사장은 자기 백성 곧 자기 지파의 처녀와 결혼하도록 하신 것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아론의 가문을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일반 백성과 혼인함으로 인하여 그 후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다. 아론 자손은 그 성소를 봉사하지만 일반 백성은 성소밖에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성소밖에 있는 일반 백성과 성소를 봉사하는 아론의 지파는 섞지 말아라 그 말이다. 같은 이스라엘인데도 그렇게 구별했다. 그러니까 자기 백성 중 처녀하고만 결혼하도록 했다. 만일에 일반 지파가 성소에 들어오면 죽지요? 그러니까 더럽히지 않도록 했다. 죽음에 접촉한 제사장 뿐만 아니라 신체적 흠이 있는 제사장도 휘장안이나 단에 가까이 못한다. 그리하면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다.

신체의 흠이 있는 제사장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몫으로 주신 식물을 먹을 수 있으나 여호와께 식물을 드리지는 못한다. 백성과 제사장과 대 제사장의 이러한 거룩의 차이는 모세 제도적인 차이 곧 하나님을 섬기면 누리는 관계의 차이다. 그러나 교회 직분자에게 평신도보다 더한 윤리적인 요구를 하신 것은 이런 질에 차이가 아니라 덕을 세우기 위함이다. 구약 때는 아예 거룩의 질적인 차이가 있다. 대 제사장이 누리는 것과 제사장이 누리는 것과 백성이 누리는 것 관계가 아예 다르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런 간격을 두고 교제하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 간격을 넘으면 죽는다. 그러니까 심지어 결혼할 때까지라도 대 제사장의 가문은 일반 이스라엘 백성과 섞이지 못하도록 했다. 왜 그 가문만 하나님의 성소를 봉사하고 일반 가문은 결혼을 통해서도 성소를 봉사하도록 못 들어온다. 그런 직무에로 못 들어온다. 완전히 분리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가 그냥 신약 교회에 적용하면 막 이제 목사부터 적용하기 쉽다. 왜냐하면 목사 장로에게도 그런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불순종하는 자식이 없어야 되겠다. 감독들은 그런 말이 쭉 있다. 그러기 때문에 분명히 직분자에게는 이런 것을 신약에서도 더 요구한다. 그러니까 이것을 구약을 그런 식으로 신약에 막 적용하면 안된다 그 말이다. 신약에서는 직분자와 평신도 사이에 이런 거룩의 차이가 없다. 예수 안에서 다 함께 하늘에 속한 거룩을 누리지 너는 나와 다르다. 우리 섞이지 말라 너는 저 선밖에 서있어라 하는 그런 윤리적인 간격은 없다. 그러니까 초신자나 오래 믿은 신자나 똑같은 윤리적인 관계 하나님과 교제는 그 몸의 관계지 초신자는 그쯤 살고 오래 믿은 신자는 이쯤 살고 하는 것은 성경적인 윤리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구약을 적용하면 안된다 그 말이다. 신약에서 직분자에게 더 거룩한 윤리를 요구한 것은 그것은 먼저 믿는 자들이 덕이 되게 하기위한 것이지 하나님과 누리는 그런 윤리의 질적인 차이를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은 구원의 책이어서 이 구원의 질적인 간격이 예수 안에서 여원히 없어&51275;다. 단순히 제거 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거룩을 완전하게 얻음으로 없어졌다 하는 이것을 말할려고 구약 제도를 말하고 있는것이지 지금도 이것을 그대로 우리 믿는 신자들에게 등급을 나눠어서 연결시키라고 그렇게 읽어서는 안된다. 구약 성경은 그렇게 도덕책으로 풀어서는 안되고 구원의 책으로 읽어야 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교회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성소에 속한 거룩함으로 주셨다. 죽음과 더러움의 권세는 부활하사 하늘 성소에 들어가신 대 제사장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끝났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그리스도의 거룩에 참여한 교회에서 모든 거룩의 관계는 없어졌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셔서 자기 상에서 봉사토록 하신 은혜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성시켰다. 성도끼리 결혼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연합의 비밀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지 목사 자녀들은 목사 자녀끼리 결혼하고 그런 것은 없다 그 말이다. 그러나 성도와 불신자 간격은 여전하다. 그들은 그리스도밖에 있기 때문이다.

구약은 교회안에 있는 거룩을 예표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성도끼리 결혼은 거기서도 조금 봐주는 결혼이 있다거나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의 비밀이 거기서 나타나는 것이다. 교회는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며 그리스도의 상에서 먹고 마신다. 교회는 다 주의 상에서 하늘 성소에서 먹고 마시지 그 성소밖에 있는 자 따로 있는 것 아니고 신체의 흠이 있으니까 먹기는 먹어도 예배하지 말고 그런 것은 없다.

그러면 우리들은 신체적으로 완전해야 전도사도 뽑고 그럴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구약 때 신체적인 흠은 생명의 흠 죄의 권세가 그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지금 신약 교회 신체검사 기준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말하자면 전염병이 있는 사람이 목사 하기 힘들지요? 감기만 걸려서 심방 가도 다 옮겨버릴것인데 그러니까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요새 장애자 목사들도 장애자를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런 관점에서는 많은 봉사를 한다. 아마 서양 같으면 장애자나 정상인이나 그런 의식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나라는 그런 것은 본다. 공부 못한 것은 머리 장애자일까? 아닐까?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은 별로 관계가 없는데 다른 것이 좀 불편하면 도덕적으로 취급을 해버릴려고 그런다. 그런데 우리들이 본래 눈뜨고 보니까 전기불만 나가 버리면 캄캄해서 못 보지만 본래 못보신분은 전기불 꺼져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자기 행동 영역에서 불편이 없을 것이다. 단지 우리와 어울려 행동하는데 불편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그런 식으로 봐서는 안된다.

구약에서는 이방인들의 윤리 의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는 죽음의 권세 죄의 권세가 있는 것은 어떤 것도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 그런데 대 제사장은 성소의 영광의 옷으로 덧입히고 성소의 기름으로 발라 났다. 거기는 어떤 죽음도 손대지 못하도록 해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 식탁에서 봉사하고 내 식탁에서 먹어라. 백성의 대표자인 너희가 그렇게 해라. 그것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규례를 주셔서 이 규례를 지킴으로 백성들이 죄와 사망의 세력으로부터 구별되어서 성소에 계신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누리도록 하신 것이다. 이 일을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하늘에 속한 성소로 완성시키셨다. 이제 그분 안에서는 이런 백성의 어른과 백성 간에 이런 윤리적인 간격이 없다.

이제는 다 거룩하다. 우리는 다 주의 상에서 먹고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린다. 누구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무 간격이 없이 완전한 생명의 교제를 주셨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처녀 총각 결혼은 아주 거룩하고 그리고 재혼한 결혼은 아이코 나도 흠이 많은데 대충대충 그런 개념을 교인들까지 가지고 있다. 이방인들은 그런 개념을 가져도 이해를 하는데 교인들은 그런 개념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런데 교인도 똑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것만 흠이 되고 그 외예는 흠이 될것이 없다. 그러니까 가령 신약 성경은 과부라도 믿는 형제에게 결혼해라.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지만 믿는자에게만 결혼해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처녀 아이들도 똑똑한 총각 만나면 시집간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소와 우상의 전을 함께 합치는 것이다. 빛과 어둠이 함께 하는 것이어서 그것은 도저히 있을수 없다. 구약 같으면 만일 이방혼을 한 사람은 제사장이든 선지자든 그와 관계된 모든 것은 여호와의 장막에서 끊어라. 언약 백성으로부터 죽는 것이다. 배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방인은 하나님께 속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혈통을 따라 속한자가 아니어도 죽어야 되는데 예수의 부활의 영을 따라서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는데 그 확실한 은혜를 거절한 이방인을 자기에게 잘해 준다고 해서 좋게 생각하고 사모하는 것은 결혼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고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소위 구약 식으로 당장에 여호와의 백성으로 끊어 버리는 죽음의 벌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신약 교회는 수찬 정지함으로 그냥 교회 교제로부터 분리시킨다. 그런데 이것은 땅의 성소에서 떡을 먹는 것이 아니라 하늘 성소에 있는 교제의 식탁으로부터 배제를 시키는 것인데도 당장 신체적인 재앙이 없으니까 괜찮은 줄 알고 오히려 교회 안 나오고 편안히 산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연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약처럼 꼭 결혼을 해야 된다는 그런 시대 가운데 있지도 안는다.

여러분이 그런 점을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고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죽으심의 권세로 깨긋게 되어서 이제는 어떤 더러움도 없이 하나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게 했다. 모세를 제도를 통한 깨끗함이 아니라 아들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늘에 속한 성소로 옮기셨다. 여러분이 이 은혜를 깊이 기념하시고 주의 상에서 먹고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기념한 것처럼 우리의 먹고 마시는 모든 구체적인 삶에서도 그 주님을 기억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신령한 제사장으로 우리가 모든 것을 거룩하게 드리고 거룩하게 취하는 그런 예배의 삶을 사셔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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