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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의 근원이 되라 (창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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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읽은 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의 고향과 그의 친척을 떠난 일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축복입니다. 본래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고향을 떠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아니합니다.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만 옛날에는 낯선 곳에 간다는 것은 하나의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옛날에는 교통 수단이 좋지 못해서 먼 곳과는 문화와 풍습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낯선 곳에 가서 산다는 것은 어려움과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의 평균 수명이 요즘보다 긴 것은 사실이지만 75세를 청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장년기에 고향과 친척을 떠나 정처 없이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은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긴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결단입니다. 아브라함은 큰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약속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놀라운 믿음의 행위는 그가 믿음의 조상이라고까지 불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옛날 아브라함을 향해서만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성도를 향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죄악된 세상에서 분리되어 살아야 한다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됩니다. 배가 물을 떠날 수는 없지만 물 속에 잠기면 배 구실을 못합니다. 물론 이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불경건한 사람들 속에 섞여 살면서 경건하게 처신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불교의 승려나 수도원의 수도사나 수녀의 생활이 아닙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그들이 사고 방식대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생활처럼 살지 아니하고, 골로새서 3장의 말씀처럼 위엣것을 바라보며 위엣것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했습니다.
이것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인데 이 싸움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신 것을 보세요. 그가 세상과 분리되어 사셨다고 해서 옷을 다르게 입고 다니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잡수시고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의 눈으로는 죄인의 친구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럽지 아니하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서 분리된 삶을 살라고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은 만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단순히 외모로 분리되기보다는 실제 생활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어야 하고 하나님 안에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대로 사느냐 하는데 따라서 오늘 주신 축복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여기 분명히 보세요.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무조건 떠나라. 그리하면 내가 네 갈 길을 지시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는 고향과 친척을 떠나갔습니다. 친구들이 만나서 그에게 물었을 것입니다. “아니, 자네 지금 어디 가나?” 아브라함은 대답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지시하실 땅을 향해 가네.” “이 사람, 그 땅이 어딘데?” “나는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나 지시하신다고 하셨어. 그래서 여기를 떠나가네.” “아니, 행선지를 모르고 길을 떠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자네 정신이 나갔나?” “하나님이 지시하신다고 하셨으니 나는 그 말씀을 믿고 가네.” 아마 이런 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지 아니하였을 때는 그만큼 축복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가 애굽에 내려가서 그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겪은 고충을 여러분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만일 그가 구별된 생활을 하였다면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부끄러운 일을 당했고, 그랄의 왕 아비멜렉에게서부터 의로운 책망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을 돌이켜 볼 때 차라리 좀 외롭더라도 하나님 앞에 살 때는 그에게 축복이 임했지만 세상과 짝해서 살 때는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 임하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괴로운 문제에 직면하곤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주님과 가까이하며 주님의 말씀 안에 살 때 주님이 주시는 무한한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 사람들처럼 행동하며 산다면 하나님의 채찍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과 분리되고 구별된 생활을 할 때 약속하신 축복인 것입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여기 하나님의 축복은 먼저 개인에게 임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지 못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의 근원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내 떡그릇이 비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떡을 나눠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여러분 자신부터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라는 말씀이 있기 전에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슨 축복을 주셨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살았던 것처럼 우리가 살고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처럼 우리가 믿을 때 임하는 축복입니다.



1. 아브라함은 안식을 축복으로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거처는 장막이었습니다. 장막 생활은 불편하고 안정되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떠돌아다니는 생활입니다. 그에게 소유권이 있는 땅이라고는 한 평도 없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육신적으로 보면 불안정한 생을 영위하였지만 사실 아브라함처럼 평안하게 산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산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했기 때문에 언제나 조용하고 고상한 인품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솔직하고 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면 아무런 이의 없이 따랐습니다. “네 친척과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은 즉시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라 하시니 그저 가고 있는 것뿐입니다. 왜 가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도 갔습니다.

그가 가는 곳에는 가나안 원주민이 있는데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아브라함은 두려움 없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길을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 하시니 그는 자기가 거기에 거할 권리가 당당히 있는 것으로 생각한 것뿐입니다. 그는 어디에 있어도 만족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유일한 삶의 법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위인처럼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고 살면 그는 우리에게 강물 같은 평안을 누리며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따라 축복해 주십니다. 크게 믿으면 큰 축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큰 믿음으로 살아 크게 축복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약속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성실하게 대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우리 인간에게 끼치는 해독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거듭거듭 나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애를 주관하실 때 이 약점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두려움에 싸여 비겁한 일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가 거하는 땅에 가뭄이 들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었습니다. 애굽 왕들은 후궁이 많았고 자기 아내와 처첩을 택하는데 결혼한 여자건 안한 여자건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겁이 났습니다. 자기 아내가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으려고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에게 “당신은 내 누이라고 말하라. 그러면 내가 안전하고 당신 때문에 내가 살게 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사라의 아름다운 모습이 애굽 왕의 눈에 띄게 되었고 왕 앞에 불려 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녀의 오라비라고 생각하는 왕은 그에게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하나님의 벌을 받고서야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죄를 모면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두려운 생각 때문에 그들은 결국 거기서 쫓겨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방인의 나라에서 몹시 창피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점점 주님에 대한 은혜와 지식이 자라감에 따라 변화를 받게 되었고 자기 자신의 모든 생각을 포기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만을 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여러 가지 방법을 쓰신 끝에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면 알수록 그만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깊어지고 두려움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가장 큰 상급이니라.”
처음에는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자신의 보호자로, 최대의 상급으로 여기는 일에 주저했습니다. 그 대신 그는 인간적인 해결책을 강구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방법을 따라 할 때 그는 실패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약속을 따를 때 하나님은 그에게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기적을 불러일으킵니다.



2.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 아브라함은 싸우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싸우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는 열과 성을 다해 싸웠으므로 대적이 물러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7절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33절 이하에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했습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언제나 승리했습니다. 세상에서 지식 많은 사람, 경험 많은 사람, 돈 많은 사람, 권력 있는 사람이 다 실패했지만 믿음 있는 사람은 승리했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승리합니다.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능력을 주신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온전히 그만을 의탁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서명 날인만 해 놓은 백지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서명 날인한 백지 위에 우리가 기록한 대로 하나님이 다 보증해 주시니 이 얼마나 귀한 특권입니까?”
여러분, 이런 축복을 다 받으셨습니까? 이 놀라운 축복을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도 믿음을 가지면 바로 그때 우리의 필요에 따라 우리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각자에게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어떤 시련도 견디어내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이 많아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은 문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죽은 자 가운데서도 이삭을 살리실 수 있을 것이라고 꼭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두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대로 순종한 것뿐입니다. 이 커다란 시련이 있은 후 얼마 있지 않아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시련을 겪은 순간은 그의 긴 생애 가운데 잠시였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했고 실제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감당키 어려운 시련을 만납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으로 살면 우리의 생이 끝날 때 이런 기록이 남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축복하셨습니다. 시련 가운데서도 그를 축복하셨고 견디기 어려운 가난 속에서도 축복하였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말한 것처럼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가는 길에는 언제나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시련과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기고 나면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사람을 축복해 주실 때 축복 받는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넣어서 그로부터 생명이 나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이런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볼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 뿐만이 아닙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여호수아도 그렇습니다. 엘리야도 엘리사도 그렇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습니다. 성 어거스틴이 그런 사람입니다. 디엘 무디 같은 사람, 빌리 썬디 같은 분, 찰스 스펄전 같은 분은 다른 사람에게 많은 축복을 안겨 준 분들이 아닙니까.

어떻게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삶이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므로 다른 사람을 축복합니다. 성 프랜시스가 앗시시성에 살면서 아침에 제자들과 같이 거리를 걷고 돌아왔습니다.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이렇게 거리를 지나오며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선생님이 왜 한 마디 말씀도 안하십니까?” 그때 프랜시스의 대답이 “여보게, 내가 말하기 전에 벌써 다른 사람이 축복을 받을 수 있어야지.” 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런 훌륭한 모범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들은 그들의 기도를 복의 근원으로 삼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매일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많을 때 이것처럼 큰 축복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데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인색하지 맙시다.
요한 낙스의 기도는 스코틀랜드를 구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한국을 구원하고 이 조국을 축복해 줄 그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가장 큰 복의 근원은 다른 심령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그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없는데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심령들에게 생명의 주님을 소개하여 구원받게 하십시다.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도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의 신앙과 순종을 본받아 하나님의 위대한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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