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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해 (창 5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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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창 50:15-21)

1995년은 한국 교회에서 희년으로 선포한 해였습니다. 희년은 50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성경에만 있는, 이 세상 어떤 제도와도 비길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지혜를 가르쳐주는 제도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가나안 복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실 때, 7년에 1년을 쉬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 때는 농사하지 않지만 그 땅에서 나는 자연 소산물을 가난한 사람들이 원 없이 가져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 7년에 1년을 쉬었기 때문에 땅의 지력이 회복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농업학자들도 7년에 한번, 정확하게 땅을 쉬게 하면 계속적으로 좋은 땅을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땅을 만드신 하나님은 땅의 성분을 잘 아셨던 것입니다. 7년에 1년씩 쉬는 안식년, 그것이 일곱 번이 지나고, 즉 49년이 지난 다음 50년째 해를 희년이라고 했습니다. 이 희년은 안식년의 뜻을 결론으로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복지 땅을 이스라엘 백성의 각 지파와 개인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그런데 50년을 지나고 나면 개인의 능력 따라 그 땅의 지경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씨앗으로 넓은 땅을 갖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처음에 가졌던 땅을 다 팔아먹어서 이제는 아무 땅도 갖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가하면 심지어는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기 몸을 팝니다. 그래서 종이 됩니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희년의 나팔, 50년 되었다는 나팔이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시작한 희년의 나팔, 그 양의 뿔로 만든 나팔 소리가 온 이스라엘 전역에 울려퍼지면 사람들은 이제껏 잃었던 땅, 자기 선조 대대로 내려오던 땅을 다시 회복합니다. 아무리 넓은 땅을 가진 사람도 그 때는 다 내주어야 됩니다. 아무 것도 없던 사람들도 이제 옛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땅, 하나님께로 받은 땅을 다시 소유하게 됩니다. 종으로 팔려갔던 사람도 그 때 다시 돌아와 사랑하는 식구들을 만나러 줄달음 칠 수 있는 것, 이것이 희년이었습니다. 이 희년은 대 사면입니다. 이 희년은 원상회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1945년 8월 15일날 해방주셨기 때문에 1995년 8월에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통일의 희년을 주시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1995년이 그냥 지나갔습니다. 제 기억에 남는 것은 1995년 6월입니다. 대학생들 7만 2천 여명이 올림픽 주경기장에 모여서 다섯 시간 동안 장대비 쏟아지는 가운데서 예배드렸던 광경 하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났습니다.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 회담의 결과가 드러났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민족의 최대의 분단의 비극인 민족상잔의 아픔 이후 만 50년 만인,

6.25 열흘 전에 하나님께서 이런 낭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희년을 1995년이 아니라 2000년으로 다시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6.25의 비극,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다니던 때였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부지런해서 돈을 열심히 벌었습니다. 또 저희 아버님은 어렸을 때부터 예수 믿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돈 있고 예수 믿는 죄로 저희 가족은

6.25 전쟁이 나자 어느 친척집 토담 속에서 갇혀 지냈습니다. 그 여름, 참 지겨웠습니다. 군인들이 가까운 지경까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들은 탈출했습니다. 저희 가족이 나간 지 한 세 시간 후에 저희의 소재를 정확하게 알고 인민군들이 잡으러 왔었다고 합니다. 이곳, 저곳, 논두렁, 밭두렁, 산과 계곡마다 흩어져있는 시체들, 그 속을 뚫고 한 200여 리를 걸어갔던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도 아주 기분 나쁜 꿈은

6.25 때의 꿈입니다. 생각하기가 싫습니다.

여러분,

6.25 이후 제 고향 근처에는 과부 마을이 생겼습니다. 국군들이 진주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친척들이 인민군들에게 죽은 것을 보고 그 인민군들과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 남자는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면 좋은데 또 전세가 밀렸습니다. 그랬더니 인민군들이 들어와서 살아 남아있는 남자들을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 어린 아이와 과부만 사는 과부 마을이 있었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우리의 아픔입니다.

월남한 한 분이 제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자기 아버지는 일제 시대 대학을 졸업한 분으로 지식분자라는 눈총을 받았다고 합니다. 공산주의는 2대 큰 적을 갖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지주 반동입니다.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반동입니다. 또 하나는 지식 분자입니다. 많이만 알고 입만 가졌지 아무 것도 못하는, 노동력이 없이 입만 살아있는 지식 분자들, 오늘날 대학교수들은 지식분자들입니다. 이것이 2대 적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를 이해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에서 대학 나온 분이 공산 치하에서 살 수가 없어서 남으로 내려왔습니다. 수많은 고생을 했고, 하는 일마다 실패를 하다 하다 그 아버지는 참 가난함 속에 생애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셨다. 그렇지만 우리 아버지가 잘 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다.'

여러분, 우리들은

6.25 때 수많은 비극을 겪었습니다. 북에 고향을 둔 사람들, 열심히 노력해서 살았던 사람들은 그만큼 고통을 더 받았습니다. 그 중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저들과 함께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공산치하에서 5년을 겪고 난 후

1.4후퇴 때 모두 내려왔습니다. 한 5백만 정도 내려온 그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공산주의자들과 화해를 생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사람들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배반하는 사람들이다. 자기 목적만을 성취하는 사람들이다.'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을 좀 두둔하려하면 '당신은 공산주의 몰라, 공산당 몰라.' 그렇게 꾸준히 이야기해왔습니다.

남쪽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공산당들이 준 피해는 이렇습니다.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오늘처럼 주일이었습니다. 자유 세계 국가는 주일날 군인들도 휴가를 줍니다. 일을 쉽니다. 그런데 저들은 아무 준비도 안된 나라를 향해서 총부리를 대고 밀고 내려왔습니다. 문자 그대로 파죽지세였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전쟁터 속에서 60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공산당이 나쁘다, 틀렸다'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아저씨 죽인 나쁜 놈들! 우리 형들이 저들에게 참혹하게 죽었다'고 하면 공산당에 대한 미움은 다 대변됩니다. 60만의 사망자 뿐 아니라 전상자는 얼마나 많았습니까? 가옥은 얼마나 많이 피폐해졌고 많은 재산들이 손실을 입었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은 공산당이라고 하면 악마의 화신이라고 생각하고 자랐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세계 공산 혁명이 일어나면서 소련에서 이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대약진 운동까지 6천 만 명이 죽었습니다. 조그만 나라 캄보디아에서는 인구의 반수에 가까운 300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을 Killing Field라고 합니다. 죽음의 땅입니다. 이 사람들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자기 목적에 반대되는 세력을 죽였습니다. 무서운 살육이 자행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공산당들과 화해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됩니다. 제가 1993년부터 남북나눔운동을 통해 북한 사람들을 만나서 일을 하면서 '저 사람들이 어떤 입장에 섰길래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어떤 것일까?'를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봅니다.

첫째로 저들이 공산주의를 선택한 과정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 나라는 이조시대까지 왕 한 사람 외에는 자유가 없는 봉건왕조를 지내고 일제 36년, 나라도 뺏기고 이름도 뺏기고 재산도 뺏기고 모든 것을 빼앗긴 일제 식민 통치 기간을 지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불연 듯 8.15을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다시 나라를 세워야 됩니다. 당시에 다시 봉건 왕조로 돌아갈 수는 없었겠고 자본주의 제도를 채택해야되는데 자본주의는 당시에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켰습니다. 빈익빈, 부익부로 부자는 계속 부자되고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해졌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산업사회가 될 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람을 물건을 만드는 기계의 일부분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자본주의의 악취들이 세계를 진동하던 때였습니다. 그 때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공산주의는 젊은 사람의 피를 끓게 만드는 멋있는 매혹적인 이론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상주의자들이 북으로 넘어갔습니다. 당시에 생각있게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북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의 선택과정이 사실은 선한 의도였다고 생각될 부분이 많았습니다. 처음부터 '나라 말아먹자, 못되게 하자' 생각해서 공산주의를 택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들은 저들이 전쟁을 먼저 시작했다고 계속 시비를 겁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문서는 김일성이 소련을 설득해서, 당시 황제 같았던 스탈린을 설득해서 전쟁을 일으켰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그렇지만 저 사람들의 전쟁에 관한 견해가 우리와 다릅니다. 그것이 꼭 정의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치워버려야 됩니다. 이것이 혁명사관의 일부입니다. 그러니까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전쟁 먼저 시작한 것에 대해서 죄의식이 없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 더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우리들은 남쪽의 우리들만 피해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쟁의 피해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남쪽은 60만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상자까지 120만 정도 됩니다. 2천만 명 인구 중에서 60만 명 죽었습니다. 그런데 북쪽은 960만 인구에서 170만 명이 죽었습니다.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도시들은 융단폭격으로, 그 무서운 연합군의 화력으로 초토화 되어버렸습니다. 남과 북의 파괴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북은 곳곳에 미군에게 피해 입은 현장들을 지금까지 보존해 놓고 적개심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들에게는 내 형제를 죽이고 내 아버지를 죽이고 내 어머니를 죽인 저 악한 미제에서 구원해준 위대한 김일성 장군입니다. 그러나 남쪽은 군부 철권 통치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김일성 보다 낫다고 생각해서 철권통치를 승인해 왔습니다. 저들은 악마 같은 미국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사람이 김일성 장군이라는 생각으로 뭉쳐 있습니다. 이런 저들의 사고에 대해서 우리들은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이 전쟁의 비극을 만들어낸 저들을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시점에 돌아가서, 저들의 입장에 서서 보면 저들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 만나기 힘든 이 대치상태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우리들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성경의 한 장면으로 눈을 돌리기를 원합니다.

창세기 50장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아무 잘못도 안했습니다. 단지 너무 영특하고 똑똑하니까 아버지께 사랑 받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는 형들에게 타격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계속 당합니다. 그것도 호의로 아버지께서 싸주신 맛있는 음식과 소식을 전달하러 갔던 동생을 죽이려고 들었습니다. 죽이려고 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구덩이에서 꺼내어 저를 팔아먹었습니다. 죽음 보다 더 고통스러운 노예의 삶이 요셉에게 시작되었습니다. 요셉은 그 노예의 삶 속에도 묵묵히 믿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사실 이렇게 원망해야 됩니다. '하나님 안 계신다. 이 온 우주에서 하나님 믿는 유일한 가족이 우리 가족이다. 우리 아버지 야곱은 날마다 제사 드리고 형들도 우리 아버지와 함께 제사드린다. 그런데 하나님 살아계시다면 하나님께 제사하는 그 형놈들이 나를 이렇게 죽이려고 들고 팔아버렸겠는가?' 노예 생활하면서 이를 악물면서 미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흔들림 없는 인생을 삽니다. 그런데 그에게 엄청난 유혹이 기회처럼 찾아왔습니다. 가족을 떠난 외로운 요셉에게 그 집에서 가장 존귀한 여자인 보디발의 아내가 프로포즈를 해왔습니다. 누구든지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가지면 기쁩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서 가장 지체 높은 사람이 나를 사랑합니다. 얼마나 황홀했겠습니까? 그렇지만 '내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여호와의 목전에서 득죄하리요?'하며 그 유혹을 거절합니다. 그랬더니 그가 당한 것은 무엇입니까?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이럴 때 나 같으면 '내가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순종했는가? 그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순종했는데 그 결과로 이 감옥행이라면 하나님 안계신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고통의 세월, 하나님을 붙잡고 모든 일을 견딥니다. 그는 형들이 왔을 때, 그 형들을 받아주고 아버지를 모셔와서 함께 재밌게 살았습니다. 문제는 그 아버지 요셉이 죽었습니다. 장사 지낸 다음입니다.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근심한 형들이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셨다 하라.'라고 어린 동생 베냐민을 통해서 용서해줄 것을 간접적으로 강청했습니다. 여러분, 이 때 요셉이 그 이야기를 듣고 울었다고 말합니다. 형들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왜 그 말을 하는지 알았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마음을 보았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그 죄악의 꼬투리를 보고 그는 울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 눈에도 북한 동포들을 향한 눈물이 있어야 됩니다. '너희들 못된 공산주의 신봉하더니 잘 됐다!' 아닙니다. 눈물을 가져야 됩니다. 저들을 향한 긍휼의 눈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용서에는 이런 눈물이 있어야 됩니다.

형들이 요셉 앞에서 무릎 꿇고 엎드리며 말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들입니다. 살려주시옵소서.' 그러자 요셉은 그 형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려 하셨나니..' 하나님께서 그 악을 선으로 바꿔주신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 망하지 않은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가정을 해보면

6.25라는 참화가 없었더라면 같이 섞여 있다가 남쪽이 쉽게 공산화되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북으로 갈 사람 가버리고 남쪽으로 올 사람 와버리고 공산주의의 아픈 것을 이론적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체험해버리니까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반공국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 나라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되어 저 모양 저꼴이 안되었고 소련이 저처럼 망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민족에게 이런 기회가 있을까요? 5천년 역사 속에 중국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것은 이 때 밖에 없습니다. 우리 나라가 왕을 세울 때도 중국의 허락 받아야 되었어요. 세자 세우는 것도 중국 허락 받아야 되었습니다. 이것이 속국 아니고 무엇입니까? 공산주의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 중국과 소련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유일한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정말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고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역사의 흐름 속에 자기가 당한 고통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손길,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을 늘 믿음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구체적인 결정을 합니다. 21절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용서를 구하는 상대에게 이미 당신을 향한 용서는 끝났고 당신들과 당신의 자녀들의 생계마저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자기 혼자 누리지 않는 요셉을 봅니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이고 이것이 진정한 화해이고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북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저는 우리 시절에 통일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우리 어렸을 때 서울에 친척 하나만 있으면 방이 한 두칸 밖에 안되는데도 사돈의 팔촌까지 머리를 채워 머리만 들어가면 함께 삶을 나누고 공부했던 민족입니다. 이 저력만 가진다면 다른 나라에서 통일 비용으로 몇 천조 든다, 몇 백억 달러 든다 해도 이것을 능히 극복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나라, 기적의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를 영국의 한 종군 기자가 말하기를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우기 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우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그 사람 지금 도대체 무슨 말 한 것인지 자기 비망록을 한번 봐야 됩니다. 제가 학교 졸업할 때 월급을 $17 받았어요. 얼마 전 연해주 갔더니 연해주 우리 동포들이 한 달에 $80만 받으면 자기 목숨 내놓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17 받고 살아낸 민족이예요. 그리고 오늘까지 이만큼 이루어 냈습니다. 이 모든 축복, 이 모든 교훈들은 북한 동포들을 저 어려움에서 넉넉히 끌어 올려줄 수 있는 견인의 줄이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께서 이 땅에 화해의 기운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 요셉이 그렇게 살 수 있었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화해를 이룰 수 있는 축복과 능력을 가지고 삽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4-18)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묶으신 그 하나님, 막힌 담을 허신 하나님, 성령으로 묶어주신 하나님께서 이처럼 50년 동안 나눠져,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돌이킬 수 없는 증오와 상처가 쌓여 있는 이 민족 역사의 그 담을 헐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은 이 정상회담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되겠고 그리고 이제부터 희년을 선포하며 이 나라의 모든 부분이 회복되어지되, 철책선도 무너지고 빼앗긴 것을 다시 찾아내고, 부셔진 것을 다시 고치고, 모자란 것을 다시 채우는 희년의 진정한 축복을 이루어 나가야 될 것입니다. 50년 전 주일날 당했던 민족상잔의 비극이 비극으로만 끝마치면 안됩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아픔을 아픔으로만 떠나보내면 안됩니다. 이 아픔 속에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선을 찾아내야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책임입니다. 아픔은 아무리 반추해도 해결이 안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에 의해서 그 아픔은 넉넉하게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꿈을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통일이 빨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개 북에서 자란 청년들은 공산권 언어를 많이 배웁니다.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등. 그래서 통일된 후 예수 믿고 나서 북쪽의 청년들이 과거 구 공산권 선교사로 떠나는 영광의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꿈이 크다고 세금 내는 것 아닙니다. 꿈은 크게 가지세요. 우리가 자유 세계에서 자유주의 국가의 언어들을 참 많이 배우고 요즘 젊은 청년들도 많이 나갑니다. 통일한국 주실 때, 우리 자녀들이 복음으로 세계를 섬기는 이런 놀라운 영광, 민족상잔의 아픈 비극이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고 세계를 섬기는 영광의 국가로 주께서 다시 한번 회복시켜 주실 역사를 믿음으로 기대해봅니다. 이 꿈 안에서 우리의 생애가 아름답게 펼쳐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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